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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Sep 28. 2020

이하루 [문제의식], 사회문제를 꼬집는 힙합

요즘 시대에 볼 수 없는 귀한 앨범

뮤지션 당사자에게 연락을 받지 않았다면 이 앨범을 영영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내 음원사이트에는 음반이 등록되지 않았다. 밴드캠프, 사운드클라우드, 유튜브에만 게재했다. 이들 플랫폼에서 입소문을 타고 뜨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그런 인물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전혀 생소한 무명 음악가가 큰 관심을 이끌어 내기란 매우 어렵다. 그 사정을 알기에 듣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총 아홉 곡으로 구성된 이하루(Haru Lev)의 데뷔 앨범 [문제의식]은 힙합을 골자로 한다. 밴드캠프 페이지에 달린 '피아노'라는 태그가 일러 주듯 대부분 수록곡에 피아노가 리드 악기로 쓰였다. 우 탱 클랜(Wu-Tang Clan) 'C.R.E.A.M.', 몹 딥(Mobb Deep) 'Shook Ones (Part II)', 빅 펀(Big Pun) 'Still Not a Player', 투팍(2Pac) 'Changes' 등 피아노가 등장하는 힙합 노래는 많지만 기존하는 곡의 피아노 연주를 장착한 경우가 태반이다. 반면에 이하루는 샘플링 대신 창작 멜로디로 꾸며 신선함을 꾀했다.


피아노가 전반에 자리하니 서정적인 기운이 나타날 법한데, 노래들은 또 다른 태그 '멜랑콜리'가 부연하는 대로 하나같이 우울하다. 앨범 타이틀이 함축한 것처럼 제재들이 무거운 까닭이다. 게다가 '탯줄을 자른 손', '여중생 K' 등에서는 옅게 울리는 전자음을 넣어 한층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하루 [문제의식] 앨범.

피아노 연주 자체는 비교적 사뿐한 '탯줄을 자른 손'의 화자는 현실을 절망적이라고 여기면서 태어난 것을 원망한다. 여기에서는 피임을 하지 않아서 하게 된 임신, 제왕절개도 언급돼 듣는 이로 하여금 그런 문제도 생각해 보게끔 한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연재된 네이버 웹툰 <여중생A>의 주인공을 모티프로 삼았을 '여중생 K'는 '탯줄을 자른 손'과 일정 부분 연결된다. '여중생 K'의 주인공은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린다. 보통 산부인과에서는 산모의 남편에게 탯줄을 자르라고 권하곤 한다. "탯줄을 자른 손이 나를 때리네." 이 가사는 생명의 근원이었던 한 축이 자기를 짓밟는 모습을 압축적으로 묘사해서 강렬하게 다가온다. 2분 6초쯤 불협으로 흐르는 피아노는 화자가 처한 위태로운 상황을 긴장감 있게 서술해 준다.


이외에도 인간의 입장만 중요시한 채 자행되는 동물학대를 조명하는 'Bloody Rain', 자본주의, 외모지상주의,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일부 몰지각한 언론, 들개 떼처럼 먹잇감을 노리는 네티즌들 등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꼬집는 '헬조선'으로 이하루는 일관되게 사회비판적 태도를 내보인다. 'Y에게'는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헤어졌음에도 집착하는 폭력을 담아낸다.

앨범이 등록된 밴드캠프 페이지.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질 노래는 가사의 지향이 명확한 '묻지 마'가 아닐까 싶다. '묻지 마'는 여성에게 몸매가 드러나는 옷이나 치마를 입기를 강요하는 직장, 외모와 몸에 대해 얘기하는 회사 사람들의 성희롱, 완강하게 저항하지 않아서, 욕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옷을 입어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여기는 사회의 그릇된 인식, 데이트 폭력 등을 다루며 여성에게 가해지는 불합리한 일들을 지적한다. 타악기 연주를 강조해서 이 노래는 수록곡들 중 가장 리드미컬하다. 보컬은 내레이션 스타일이다. 이 두 사항은 타악기 반주에 높낮이와 빠르기 정도만 바꿔 가며 노래하는 래핑의 기원 '스포큰 워드'를 의도했음을 짐작케 한다.


사회 현안들을 소재로 무게감을 갖춘 점은 특별하다. 하지만 앨범은 아쉬운 면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래핑의 플로는 노련함이 깃들지 않았고, 객원 가수와 래퍼의 기량도 달린다. 레코딩, 믹싱 기술이 부족해 사운드가 전반적으로 불안정하다. 아마추어 티가 많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문제의식]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얘기하고, 그런 문제에 대해 고민을 나눈다는 점에서 멋지다. 돈 자랑, 자본주의적 성공, 허세에 힙합의 콘텐츠가 경도된 비참한 시대인지라 이 어두운 내용이 오히려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앨범 제목은 자극과 천박한 사고만 넘쳐 나는 오늘날 힙합에 대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투박하지만 분명 근사하다.


유튜브 https://youtube.com/c/HaruLev

밴드캠프 https://harulev.bandcamp.com

사운드클라우드 https://soundcloud.com/harul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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