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모습으로 대중을 홀린 테크노 여전사의 데뷔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새로웠으며, 특별했다. 과거의 가수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접한 적이 없었다. 1996년 개봉한 영화 <꽃잎>으로 얼굴을 알린 이정현은 1999년 가수로 데뷔했을 때에도 <꽃잎>에서와 마찬가지로 광기 어린 퍼포먼스를 벌여 보는 이를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독보적인 아티스트의 출현이었다.
데뷔곡 '와'의 안무는 사실 그다지 과격하지 않다. 하지만 전주의 리듬이 나오자 무언가에 홀린 듯한 눈빛을 지으며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작이 이정현의 무대를 인상 깊게 만들었다. 후렴을 부를 때 표독스러운 표정을 띤 채 양옆으로 몸을 흔드는 것도 강렬했다. 종종 음악방송에서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틀었던 앨범 1번 트랙의 이상한 언어로 된 내레이션 또한 이정현을 독특하게 느껴지게끔 해 줬다.
의상과 소품도 이정현이 독자성을 띠는 데에 한몫 단단히 했다. 댄스 가수들은 대부분 헤드셋 형태의 마이크를 착용하지만 이정현은 새끼손가락에 마이크를 달아서 참신함을 뽐냈다. 중국 무협 영화에서 보던 고전적인 옷, 정수리 부분만 틀어 올린 머리, 한쪽 눈만 그려진 커다란 부채 등을 통해서도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는 전자음악의 하위 장르인 테크노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사이버 문화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는 세기말을 앞두고 생긴 뒤숭숭한 마음을 현란하고 빠르며, 때로는 음울한 테크노 음악으로 달랬다. 테크노를 골격으로 하는 '와'도 이 흐름을 타고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더불어 반주에 동양적인 선율을 얹어 서정미와 친근함도 확보했다.
2001년에는 이탈리아 댄스음악 그룹 반디도(Bandido)가 '와'를 표절한 'Vamos Amigos'를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 작곡가가 외국의 노래를 모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에 '와'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반디도 측이 표절을 시인하고 음반 크레디트에 최준영을 작곡가로 기재하면서 시비는 일단락됐다. 외국 뮤지션이 베껴서 내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와'가 매력적인 노래임을 일러 주는 사례다. 우리 대중음악이 팝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는 사건이었다.
서울신문X멜론 '케이팝 명곡 100'
https://www.melon.com/kpop100/detail.htm?detailSong=85258
https://www.youtube.com/watch?v=v1pfRJy5r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