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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Aug 25. 2022

춤을 부르는 국악, 국악과 만난 춤

국립국악원이 3월부터 [생활음악 시리즈] 21집에 수록될 노래들을 공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립국악원은 캐럴, 창작 국악, 학교에서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 등 다채로운 양식을 [생활음악 시리즈]로 선보여 왔다. 이번 앨범은 이한철, 정진우, 최고은 등 대중음악 뮤지션들 위주로 협업하는 노선을 택했다. 이들을 통해 전통음악을 향유하는 범위를 확장해 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6월에는 래퍼 김심야와의 힙합 듀오 XXX로 유명한 프로듀서 FRNK(프랭크)가 제작한 싱글이 나왔다. '길'과 '춤'으로 구성됐으며, 타이틀곡은 '춤'이다. 제목이 말해 주듯 '춤'은 실로 '댄서블'하다. 댄서들이 관심을 보일 만하다.

많은 댄서가 음악을 듣고 발굴하는 데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음악을 많이 알아 둬야 배틀을 할 때 유리하며, 좋은 음악이 퍼포먼스를 더 돋보이게 해 주기 때문이다. 브레이크댄싱이 2024년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으며, 최근에는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비 엠비셔스>, JTBC <쇼다운> 등 스트리트 댄스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춤이 활황을 맞은 이때, 댄서들이 국악도 많이 찾길 바라며 춤추기에 좋은 국악, 국악과 춤이 만난 사례를 꼽아 봤다.


FRNK '춤'

디제이 겸 프로듀서 FRNK는 정식 데뷔 전인 2015년 f(x)의 '4 Walls' 공식 리믹스 버전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XXX로 활동하면서 전자음악에 바탕을 둔 차가운 톤, 변칙적인 비트의 음악으로 힙합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요즘 가장 인기가 높은 힙합 프로듀서 중 하나이기에 국립국악원의 초청이 수긍될 수밖에 없다.


음반 소개에 따르면 '춤'은 옛날 광대들의 춤놀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겠다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대금이 루프로, 장구가 비트로 흐르다가 차츰 리듬이 추가되고, 약 37초부터는 강한 신시사이저가 등장해 곡은 전면적으로 댄스음악의 태를 낸다. 이후 사람의 노랫소리 같은, 실제로는 해금의 소리를 가공했다는 짤막한 연주가 반복적으로 깔려서 곡은 묘한 기운을 분출한다.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무렵에 나오는 온화한 사운드의 신시사이저는 팽팽함을 잠시 풀어 주는 동시에 곡에 다시 추진력을 주입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국악과 FRNK의 조합은 생경하지 않다. 그는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2018년 우리 전통악기를 현대적으로 풀이하는 레드불 뮤직의 송캠프에 참여한 바 있다. 같은 해 송캠프를 통해 완성된 작품들로 구성한 컴필레이션 앨범 [레드불 뮤직 서울 소리]가 출시됐고, FRNK는 한 소녀가 무당이 되는 얘기를 그린 2014년 영화 <만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같은 제목의 곡을 담았다. '만신' 역시 기괴했고, 탄탄했으며, 댄서블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y-Rc3LHH78


비단 '성웅의 아침'

2014년 데뷔한 여성 퓨전 국악 그룹 비단은 이름처럼 참 예쁜 팀이다. 이들의 이름 로고 아래에는 '한국의 보물을 노래하다'라는 모토가 적혀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선전하겠다는 뜻이다. 상업성, 대중성을 우선에 두거나 본인만의 음악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국악인은 많다. 하지만 전통 유산을 모티프로 삼아서 음악 팬, 청중에게 우리 고유의 것을 곱씹게 하는 음악가는 얼마 없다. 태생의 기획을 여전히 유지한다는 점도 훌륭하다.


데뷔 미니 앨범의 첫 번째 트랙 '성웅의 아침'은 댄서들이 퍼포먼스 배경음악으로 쓰기에 좋다. 비단의 제작사는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이 곡에 대해 "전장의 아침, 지휘선의 뱃머리에 서서 부하들을 이끌고 적진으로 향하는 이순신 장군의 결연한 각오와 충정이 담겨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짧은 설명만 봐도 굳건함을 내비칠 것이 예상된다.


크게 울리는 북소리와 해금 연주로 문을 여는 '성웅의 아침'은 전자음악의 하위 장르인 브레이크비트를 뼈대로 둔다. 곡에 사용된 타악기들은 서양 드럼보다 울림의 폭이 커서 곡이 내내 강건한 기운을 퍼뜨릴 수 있게끔 한다. 또한 타악기 없이, 혹은 타악기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가야금이나 해금 솔로 연주를 들이는 슬기로운 편곡이 완급을 뚜렷하게 나타내 준다. 퍼포먼스 용도로 딱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eBXkhqHRQeI&t=290s


양양(Yangyang) '매화'

브레이킹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다운>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큰 인기를 얻은 진조 크루는 이미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팀이다. 현재까지 <UK 비보이 챔피언십>, <R16 코리아>, <배틀 오브 더 이어>, <레드불 BC 원>, <프리스타일 세션> 등 세계 5대 메이저 브레이크댄싱 대회를 모두 석권한 팀은 진조 크루가 유일하다. 멤버 개개인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이들은 재킷 루틴, 모자 루틴 등 창의적인 퍼포먼스로 수많은 비보이, 비걸을 매료했다.


진조 크루는 한국의 멋을 알리는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국악에 맞춰서 한복을 입고 춤을 추곤 하기 때문이다. 이때 사용하는 음악 중 하나가 [레드불 뮤직 서울 소리]에 수록된 양양의 '매화'다. 브레이크댄서들이 퍼포먼스 음악으로 흔히 택하는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이지만 국악기와 타령 보컬이 들어가 있어서 무척 이채롭다. 이 덕에 진조 크루의 춤도 관중에게 한층 인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양양은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 '매화'로 존재를 알렸다. 곡은 장구와 꽹과리로 구성한 비트, 베이스 기타 역할을 하는 거문고 루프가 다이내믹함과 묵직함을 연출하는 가운데, 가야금 연주를 추가해 고전적인 선율을 들려준다. 여기에 경기민요 '매화타령'의 일부분을 추출하고 이어 붙여서 무속의 분위기도 풍긴다. 한국적인 색채, 경쾌함과 야릇함을 한자리에서 나타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_nseqahP4g


프리지본 'Onestep'

힙합 마니아들이라면 낯익을 얼굴이 보인다. 2015년 Mnet <언프리티 랩스타> 첫 번째 시즌에 출전해 인지도를 높인 래퍼 타이미가 프리지본에 속해 있다. 더불어 래퍼 겸 프로듀서 사포, 보컬리스트 황아영과 치비, 비트박서 겸 래퍼 투탁 핀셔, 비트박서이자 프로듀서 루팡이 함께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힙합 그룹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프리지본은 브레이크댄싱 팀 플로우 엑셀의 에프이, 가야금 연주자 박선주도 동반해 특색을 띤다.


래퍼와 비트박서가 다수이기에 힙합이 주력 장르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발표한 데뷔 미니 앨범 [THE FREEZYBONE]의 몇몇 곡은 요즘 트렌드를 따라 전자음을 장착했다. 이것으로 그치면 평범했겠으나 프리지본은 가야금 연주를 루프로 내세워 한국의 빛깔을 간직한 힙합을 선보인다. 미니 앨범의 타이틀곡 'Onestep'은 전주에서 우선 전기기타로 루프를 들려준 후, 가야금 루프를 배치해 대비되는 톤으로 가야금의 매력을 전달한다. 또한 간주는 가야금 솔로로 채워 우리 전통악기가 래핑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자리를 만들었다.


강한 비트의 곡은 아니더라도 'Onestep'은 귀에 빠르게 익는 훅과 악기들의 말랑말랑한 사운드 덕에 흥겹게 느껴진다. 뮤직비디오 중 가야금 솔로 부분에서 계속해서 다른 동작의 프리즈를 잇는 에프이의 춤은 부드러움으로 음악과 어우러진다. 자신들을 소개하는 '융복합 퍼포먼스 팀'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Wx2atAsROJk


숙명 가야금 연주단 '캐논변주곡 - All for One'

2006년 한 아파트 광고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파헬벨의 카논’과 힙합 비트가 만난 음악이 흐르고, 이에 맞춰 두 명의 비보이가 현란하게 춤을 추는 영상이었다. 국악과 힙합의 신선한 조합에 많은 이의 시선이 자동으로 고정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광고가 어떤 회사, 어떤 상품을 선전하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직 음악과 브레이크댄싱만 각인됐다.


어쩌면 곡의 주연인 숙명 가야금 연주단의 연주만으로는 눈길을 끌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국악기로 서양의 클래식을 연주하는 행위는 이전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주에 힙합 비트가 붙어서 곡은 색다르게 느껴질 수 있었다. 여기에 디제이 택틱스의 날카로운 턴테이블 스크래칭, 은준의 노련한 비트박싱이 곡의 사운드를 풍성하게 해 줬으며, 이로써 힙합의 느낌도 뚜렷하게 냈다.


전주 출신의 브레이크댄싱 팀 라스트 포 원도 대중을 사로잡은 주역 중 하나다. 출연 인원은 적었음에도 다양한 자세의 프리즈, 크리켓, 스와이프, 체어트랙, 헤드스핀, 코핀 등 여러 브레이킹 기술을 능란하게 구사함으로써 광고를 근사하게 꾸몄다. 광고를 통해서 우리나라 브레이크댄서들의 우수한 기량을 많은 이에게 알릴 수 있었다. 국악과 춤의 만남이 본격화된 것이 이때부터였으며, 그 시너지는 지금까지도 강고하게 쭉 이어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712eZmLHQI


월간 <국립극장> 8월호 '이달의 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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