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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음악 10곡

결론은 90년대 사랑

by 한동윤

공일오비 '비워진 너의 자리 속에'

공일오비는 내 인생의 아티스트다. 지금도 거의 매일 이들의 노래를 듣는다. 특히 이 노래는 잘 때 1번 곡으로 틀어 놓곤 한다. 간주의 색소폰 솔로, 토토의 'Georgy Porgy'를 닮은 후주 악센트를 지나서 나오는 호른 연주, 은은하게 겹쳐 흐르는 남녀 가수의 스캣이 관능미를 발산한다. 진짜 멋진 재즈 퓨전 팝이다. 자려고 듣지만 이 노래에서는 잠이 들지 않는다.


김원준 '언제나 (Always)'

김원준은 데뷔 앨범부터 자신이 쓴 노래를 수록한 싱어송라이터였음에도 수려한 외모 때문에 낮게 평가됐다. 표절 문제가 있긴 했지만 앨범마다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아티스트였다. 그를 향한 애정을 담아 노래방에 가면 거의 매번 김원준의 노래를 부른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이별된 침묵'이지만 노래방에 등록되지 않은 게 아쉽다. 언제나 으뜸 애창곡은 '언제나 (Always)'다.


넥스트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구성, 분위기도 훌륭하지만 가사도 굉장히 멋졌다. 이 노래를 듣고 남들과 다르게 살기로,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해서 얻은 건 가난과 냉대뿐인 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껍질의 파괴'를 사랑한다. "언젠가 내 마음은 빛을 가득 안고 영원을 날리라." 노래의 이 마지막 문장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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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 'Since You Walked into My Life'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유일하게 좋아했던 남자 아이돌 그룹이다. 5집 < Face the Music >은 전성기에 낸 앨범들 중 음악적으로 가장 근사했음에도 가장 낮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말았다. 처음 앨범을 샀을 때에는 테디 라일리가 만든 노래들을 즐겨 들었지만 어느 순간 머라이어 캐리의 오랜 동료였던 월터 아파나시에프가 만든 'Since You Walked into My Life'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이 노래와 함께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내 인생 최고의 남자 아이돌 그룹으로 남았다.


로저 트라우트맨(Roger Troutman) 'In the Mix'

일렉트로 펑크의 개척자, 토크박스의 명인, 로저 트라우트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흑인음악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은 탄력과 활력이 넘친다. 춤을 그만둔 지 오래됐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몸이 절로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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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빅(Mr. Big) 'To Be with You'

이 노래를 엄청나게 좋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중요한 한 순간을 장식했던 작품임은 분명하다. 중학교 2학년 때 뮤지션이 되고 싶어서 어렵게 학원을 찾아 작곡과 미디를 공부했다. 그때 처음 카피한 것이 'To Be with You'였다. 그 시절의 노래방 반주처럼 조악했지만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 'Before I Let You Go'

테디 라일리 덕분에 뉴 잭 스윙과 사랑에 빠지게 됐다. 가이도 좋았지만 부드러움과 정교함이 업그레이드된 블랙스트리트를 더 좋아한다. 이 노래를 삐삐 배경음악으로 한동안 쓰기도 했는데, 반응은 2집의 'Happy Song (Tonite)'를 배경음악으로 했을 때가 더 좋았다. 배경음악을 듣기 위해 삐삐를 쳤다는 이성 친구도 여럿 있었다. 나한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음악이 듣고 싶어서. 이로 인한 억울함 때문에 'Happy Song (Tonite)'보다는 'Before I Let You Go'를 더 아끼게 됐다.


캡틴 퓨쳐 '거울 속의 그녀 (Version 2.0)'

캡틴 퓨쳐를 처음 접했을 때 '아니, 한국에 이런 음악이 있다니!' 하면서 무척 흥분했다. 프린스에게 영향을 받았음이 다분하지만 당시 이렇게 세련된 흑인음악이 거의 전무했기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캡틴 퓨쳐는 컴퓨터 음악, 아카펠라의 선구자기이기도 했다. 가면을 쓰고 다시 돌아올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쿨 '너이길 원했던 이유'

한국 힙합 최고의 노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이 노래를 얘기한다. 재즈 랩, 힙 하우스, 브레이크비트, 뉴 잭 스윙, 힙합 솔, 팝 랩, R&B, 랩 록, 일렉트로 합, 클래식 크로스오버 등 많은 장르가 어색함 없이 융화되고 있다. 복잡하지만 세련된, 선진적인 얼터너티브 힙합이다. 춤과 패션도 정말 멋있었다. 이때의 쿨이 정말 '쿨'했다.


한상원 '어쩔 수가 없나 봐'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싹틀 때면 인공위성의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랑 한상원의 '어쩔 수가 없나 봐'를 듣곤 했다. 둘 다 설렘을 표현하고 있지만 강도는 한상원의 노래가 훨씬 높다. 두근거림을 넘어 쿵쾅거림이라고 할 만하다. 후반부의 베이스 솔로 연주는 자신 있게 고백해 보라는 권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서 그 소리에 휘둘리지 않았다. 거절당했을 때 맞닥뜨릴 초라함과 부끄러움을 생각하니 없던 이성이 샘솟더라.


웹진 이즘에서 기획한 특집. 다른 필자들의 리스트는 위 링크에 등록된 글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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