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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 엠시 [Father's Day], 여심 공략 팝랩

여성혐오를 배척한 힙합 중 하나

by 한동윤

테디 라일리(Teddy Riley)가 창출한 뉴 잭 스윙은 리듬 앤 블루스 신뿐만 아니라 힙합 쪽에도 영향력을 뻗어 갔다. 1980년대 말에 제작한 레드헤드 킹핀 앤드 더 에프비아이(Redhead Kingpin and the F.B.I.)의 'Pump It Hottie', 헤비 디 앤드 더 보이즈(Heavy D. & The Boyz)의 'We Got Our Own Thang', 쿨 모 디(Kool Moe Dee)의 'They Want Money'를 위시해 기존 힙합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 데뷔작과 달리 완연한 뉴 잭 스윙 힙합으로 거듭난 렉스 앤드 이펙트(Wreckx-N-Effect)의 2집 [Hard or Smooth] 등 그의 하이브리드 양식은 랩과 융화를 이루며 대중음악계의 패권을 차지했다. 힙합으로의 이입 단계에서 어느 정도 과도기적인 모습은 있었으나 그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테디 라일리의 손을 타고 나온 뉴 잭 스윙만이 전체 힙합을 주무른 것은 아니었다. 이즈음 많은 프로듀서가 그의 창작물에 관심을 뒀다. 파더 엠시(Father MC)의 [Father's Day] 역시 그 스타일을 욕심 낸 프로듀서들에 의해 만들어진 뉴 잭 스윙 힙합 앨범이었다. 음반을 지휘한 엘에이 리드(L.A. Reid), 마크 모랄스(Mark Morales) 등은 R&B와 힙합의 성질을 함께 지닌 장르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기운을 내는 음악을 선사했다. 이로써 노래들은 뉴 잭 스윙의 흥행 기류를 타고 수월하게 히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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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싱글 'Treat Them Like They Want to Be Treated'와 뒤이어 커트된 'I'll Do 4 U'는 모두 빌보드 랩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다른 두 편의 싱글은 차트에서의 성적은 부진했지만 방송 전파를 꾸준히 타며 파더 엠시의 인기를 지속시켰다. 리듬앤드블루스 히트곡을 샘플로 사용하거나 래핑 훅보다는 보컬 코러스를 연결하는 테디 라일리의 공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나 파더 엠시의 프로듀서들은 테디 라일리의 작품보다는 조금 톤을 내린 차분한 사운드로 대중성을 강화했다. 팝적인 면모를 강조하려는 전략이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을 흡수, 개량했다는 사실 외에 앨범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인공 파더 엠시가 자신을 여성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로 포장하려는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서부에서 크게 발화한 갱스터 랩이 힙합 신과 대중음악 차트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던 시기였다. 갱스터 랩의 폭격 안에서 여성은 '창녀'와 '갈보'로 취급되는 게 다반사였으며 그들을 떠받들어 주는 노래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흠모하는 이를 향해 열렬히 구애를 펼치고('Lisa Baby'), 사랑하는 사람을 '애기야(sweetheart)'라고 부르며 헌신적인 태도를 보이는('I'll Do 4 U') 파더 엠시의 노래는 여성에게 무척 각별했다. 깔끔한 외모와 탄탄한 몸매는 여성들의 환호 속에서 그를 엘엘 쿨 제이(LL Cool J)를 잇는 차세대 섹시 아이콘으로 등극시켰다. 얼마 후 마키 마크(Marky Mark)의 등장으로 인해 그 자리는 뺏겼으나 파더 엠시의 노래를 통해서 여성은 마초적이기만 한 랩 세계 이면의 낭만적 환상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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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은 또한 위대한 아티스트들의 데뷔 무대로서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 업타운 레코드사(Uptown Records)가 야심차게 준비하던 가수들 조데시(Jodeci)와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가 이 앨범을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들이 참여한 노래가 차트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둠에 따라 각자의 활동도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비록 얼마 안 돼 방출되고 말았지만 힙합의 큰손 퍼프 대디(Puff Daddy) 역시 총감독 역할을 수행하며 앨범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공을 세웠다. [Father's Day]는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의 성공적인 경력 착수를 견인한 요지이기도 하다.


여러 히트곡에 힘입어 파더 엠시는 데뷔와 거의 동시에 메인스트림의 랩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앨범에서 표현한 스타일의 자연스러움으로 지브리 와이즈 원(Jibri Wise One), 엠시 브레인즈(M.C. Brains), 렉스 앤드 이펙트 등과 함께 뉴 잭 스윙 힙합을 선도한 주요 래퍼로 남게 됐다. 무엇보다도 순함을 내재한 뉴 잭 스윙의 주된 음악적 성격과 당대 여성이 원하는 바를 꿰뚫은 노랫말이 산출한 힘이 컸다. 이 덕분에 [Father's Day]는 90년대 팝 랩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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