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의 또 하나의 명곡
꽤 오래 걸렸다. 2002년, 5년 5개월의 긴 침묵 끝에 마침내 새 앨범이 출시됐다. 물론 이보다 더 긴 공백기를 거치고 신작을 선보이는 뮤지션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평소 봄여름가을겨울은 아니었다. 김종진, 전태관으로 이뤄진 이들 듀오가 이전까지 발표한 여섯 장의 앨범은 대체로 한두 해 터울을 두고 나왔다. 평소와 다르게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존재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재즈와 록을 혼합한 퓨전 스타일로 1988년 데뷔 때부터 음악 애호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룹은 세련미뿐만 아니라 귀에 잘 익을 쉬운 멜로디, 다수가 공감할 가사로 대중성도 갖췄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어떤 이의 꿈' 같은 노래들은 발매된 지 30여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랬던 이들이 1996년에 발표한 6집에서는 록에 중점을 두며 거센 소리를 들려줬다. 외관도 통상적인 사각형 플라스틱 케이스가 아닌 원형 철제 케이스로 꾸며서 독특함을 한껏 뽐냈다. 또한 음반은 컴퓨터에 넣으면 영상도 볼 수 있는 특수 CD로 제작됐다. 6집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변화와 실험을 감행하는 동시에 큰돈까지 투자했음에도 6집은 음악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만다. 고배를 들이킨 멤버들은 결국 슬럼프에 빠졌고, 다음 앨범 제작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 무렵 우리나라는 외환 보유고가 급감하면서 심각한 경제 위기에 시달렸다. 여러 기업이 줄줄이 도산했으며, 수많은 직장인이 한순간에 일터를 잃었다. 음악과 자신에 대해 염세적인 시선을 품고 있던 김종진은 근심에 찬 사람들을 보고 동질감을 느꼈다. 이에 어려운 상황을 겪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태어난 노래가 2002년 발매된 7집에 실린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나긋나긋한 노랫말 안에는 낙관적인 태도가 깃들어 있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더없이 좋은 위로가 됐다. 지금도 삶에 지쳐 격려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이 노래를 찾곤 한다. 시련 속에서 세상에 희망을 불어넣는 명곡이 탄생했다.
월간 <좋은생각> 2020년 4월호 '듣고 싶은 노래'
내일은 더 낫겠지, 그런 작은 희망 하나로 사랑할 수 있다면, 힘든 1년도 버틸 거야. 일어나 앞으로 나가. 네가 가는 것이 길이다.
개인적으로 2절의 첫 소절 가사를 좋아한다. 특별하지 않은 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격려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