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솔 거장의 뚝심 있는 한 방
수많은 리듬 앤 블루스 뮤지션이 <스타워즈>에서 나올 법한 광선검을 쓰는 세상에서 맥스웰(Maxwell)은 무딜 대로 무뎌져 날이라곤 전혀 서 보이지 않는 자기 시대의 검을 들고 나왔다. 그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과거에 들려준 고전 소울에 근접한 질박한 사운드를 고대해 왔던 팬들마저도 몇 초간의 반색 다음에는 '이런 게 과연 지금 시대에 통할까?' 하고 걱정할 것이 뻔하다. 네오 소울은 2009년인 지금뿐만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생기를 잃은 지 오래된 장르이기에 많은 이들의 우려처럼 맥스웰의 소리가 힘을 못 내도 이상할 게 없다.
그가 사람 왕래도 없어 소식이라고는 한 자도 들을 수 없는 곳에서 기거했던 것은 아닐 테다. 3집 [Now]를 낸 뒤 8년 동안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켜지 않고 눈과 귀를 막은 채 살았던 것도 분명히 아닐 듯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랬을까? 솔직하게 말해서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팔리지도 않을 음악을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미디와 신시사이저로 범벅을 해 흑인음악 본래의 모습을 잃은 변종이 범람하는 주류 음악계를 향한 아우성이며, 감동이라곤 좀체 느낄 수 없는 1회성 댄스 R&B가 대홍수를 이룬 세상을 향해 날리는 순수성을 담은 주먹일 것이다. 늘 네오 소울을 해 왔기에 이번 역시 예정된 순서를 밟는 것만은 아니다.
디지털 윤색을 최대한 배제하고 실제 악기들을 이용해 만든 작품들은 요즘 흥행하는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온도를 내보인다. 가성으로 조곤조곤하게 읊조리며 시작하다가 중간을 지나 관악기의 출현과 함께 소리의 체구를 늘려가는 'Bad Habits', 건반과 드럼의 강약이 조화되는 연주가 돋보이는 'Fistful of Tears', 맥스웰의 장기인 고상한 가성 연출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Stop the World'는 정통 리듬 앤 블루스와 소울의 온윤함을 재현하고 있다. 'Love You'가 수록곡 중 가장 높은 BPM을 보유한 곡이지만, 유행하는 스타일의 성마른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첫 싱글 'Pretty Wings'는 풍조에 대한 반발이 편곡에 고스란히 배어든 노래다. 일반적인 진행대로라면 러닝타임은 4분 10초가 되었어야 하는데 조그맣게 울리는 키보드와 혼 섹션을 1분을 더 끌고 나서야 완전히 곡을 종결한다. 짧은 시간 안에 대중에게 어떻게든 어필하려고 기를 쓰며 훅만 앞세우는 세상에서 맥스웰은 상반되는 모습으로 맞불을 핀다. 인기보다 우선인 게 자기표현임을 음악으로 말하는 그에게서 작가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노래를 마치고 1분 10초 동안 연주로 끝부분을 마감하는 'Help Somebody'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 가능하다.
[BLACKsummers'night]는 2010년과 2011년 출시를 계획한 [blackSUMMERS'night]와 [blacksummers'NIGHT]의 3부작 중 1부라고 한다. 네오 소울이 그것의 태동기만도 못한 세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고 인기를 누리기 위해서는 댄스곡의 옷을 입어야만 하는 때에 맥스웰은 아둔하고도 곧은 선택으로 흑인음악 고유의 것으로 회귀한다. 연달아 두 개의 작품을 더 낸다고 하니 본류를 지키려는 젊은 장인의 강건한 정신이 전해지는 것 같다. 너도나도 멋스럽고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잘 베이는 칼을 뽑는 근자에 예리하지 않은 날붙이를 꺼낸 그가 대단해 보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슬기롭지 못한 음악이 존경받아야 할 시기다.
2009-07
1년 뒤에 2편 [blackSUMMERS'night]를 내겠다던 맥스웰은 그 약속을 7년 만에 지켰다. 2016년, 긴 정적을 깨고 드디어 '서머'가 대문자인 앨범을 발표했다. 7년, 역시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그래도 노래들이 좋아서 흑인음악 애호가들은 그의 복귀를 환영했다.
2부가 나오는 데 7년이나 걸렸으니 음악 팬들은 처음에 맥스웰이 했던 공언을 깔끔하게 잊었다. 역시나 3부 제작 소식은 없었고, 2018년 (본인은 단편영화의 사운드트랙이라고 우기는) 신곡 'We Never Saw It Coming'을 선보였다.
그러다가 2018년에 3부의 리드 싱글이라고 하는 'Shame'을 냈다. 그 뒤로 또 감감무소식이다. 2025년에 3부 앨범을 낸다고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현재 맥스웰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집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걸 즐기고 있을 것만 같다.
작년 맥스웰 대표곡들의 맥시 싱글, EP가 음원사이트에 풀렸다. 'Whenever Wherever Whatever'는 인스트러멘틀 버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