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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자기암시, '플래시댄스 왓 어 필링'

댄서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명곡

by 한동윤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심드렁하다. 많은 지원자를 상대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시시한 이력서를 제출한 인물에게 관심이 갈 리 없다. 잔뜩 긴장한 주인공 알렉스는 춤을 선보인 지 얼마 안 돼 넘어지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본인만의 스타일로 힘차게 공연을 펼친다. 심사위원들은 이내 발장단을 치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알렉스의 춤에 빠져든다. 1983년 개봉한 영화 <플래시댄스>(Flashdance)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때 이탈리아의 작곡가 겸 프로듀서 조르조 모로더(Giorgio Moroder)가 만든 주제곡 '플래시댄스... 왓 어 필링'(Flashdance... What a Feeling)이 흐른다. 잠잠하게 시작하다가 한순간에 속도를 높여 흥을 내는 구성은 처음에는 주눅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을 찾는 알렉스의 모습을 음악적으로 묘사했다.

<플래시댄스> 사운드트랙 앨범 커버.

가사도 알렉스를 잘 나타냈다. "무쇠와 돌로 이뤄진 세상에서 긍지를 간직한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이 황홀한 기분! 겪다 보니 믿게 됐어요. 난 모든 걸 가질 수 있죠. 이제 나는 내 인생을 위해 춤춰요." 주제가를 부른 미국의 배우 겸 가수 아이린 카라(Irene Cara)는 알렉스의 삶과 포부를 정확히 대변하는 노랫말을 썼다. 열여덟 살 알렉스는 생계를 위해 제철소에서 일을 한다. 정식 무용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음에도 그녀는 발레리나를 꿈꾸며 홀로 춤을 연마해 왔다.


아이린은 알렉스에게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뮤지컬 배우가 되고자 했던 아이린은 열심히 춤과 노래를 익혀 열 살 무렵 뮤지컬 무대에 섰다. 1980년에는 청춘 뮤지컬 영화 <페임>(Fame)에 주연으로 발탁되며 스타로 떠올랐다. 아이린은 한 인터뷰에서 '왓 어 필링'은 춤을 통해 자신의 신체뿐만 아니라 인생까지 운영해 나가는 무용수들에 대한 은유라고 설명했다.

Irene-Cara-1984-billboard-1548.jpg 그래미 어워드에서의 아이린 카라.

춤을 소재로 한 영화에 주제가로 쓰여서 '왓 어 필링'은 댄서들의 찬가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하지만 '왓 어 필링'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어떤 일에 뜻을 품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건강한 철학이 깃들어 있다. 알렉스가 오디션을 볼 때 실수해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노래에 담긴 주장을 뒷받침한다. 목표가 뚜렷한 이들에게 시련은 성장을 향한 담금질일 뿐이라는 것을 '왓 어 필링'이 말하고 있다.


월간 <좋은생각> 6월호 '듣고 싶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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