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보다 축복을
한국사람들은 참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 이 말에 부인하기 쉽지 않다.
이게 긍정적 효과도 있고 부정적 효과도 있는데
요즘 시대에는 부정적인 효과로 많이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일들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생생한 것처럼
망령들이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침탈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인다
어릴 때부터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고 그 시대상에
어떻게 사람들이 살아왔는지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이 매우 강했다.
휴먼다큐멘터리를 좋아하게 되고 그 일을 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는지 모른다.
17년 정도 그 일을 하면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왔다.
반강제적으로 은퇴를 한 지금도 여전히 그 현장이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길로 가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사실 재활에 집중한 시기에 일어났던 일이기도 해서 이태원참사에 대한
큰 관심이라기보다는 그로 인해서 일어난 현상들에 대해서
적지 않아 충격이었다.
한국을 떠나서 외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예전에 사회 분위기와 사뭇 달라진 공기가 팽팽한 느낌이다.
모든 것에 편을 묻고 편을 가른다.
과거에도 그러긴 했지만 현재는 그 세밀함이 더없이 생활을 파고들고
있는 것 같다.
이태원참사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선은 애도를 표하는 게 상식으로 통하던 과거의 세상에서(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런 시대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조롱과 비난이 드러나는 시대에 마주 서는 게 굉장히 낯설었다.
과거에 그나마 드러내는 갈등은 이념갈등 정도였다고 생각되었는데
지금은 젠더 갈등, 빈부의 갈등.. 모든 것들이 극단적으로 갈라지고 있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특정 사이트에서 혐오와 증오를 조장하는 글들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고 심지어 그걸 방송에서도 드러낼 수 있는 게 충격이었다.
원래 사람들은 어떤 조직이든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밖에서 한참 있다가 들어와서 바라본 한국의 공기는 과거 20년 전. 10년 전과 다르다
이태원참사 같은 일에도 정치적으로 엮는 것도 문제겠지만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비난과 조롱 섞인 언행이 등장한다는 게 충격이었다.
참사를 유발한 주체에 대한 비난이 있었던 것은 있었지만
피해자들을 향한 저주는 적어도 이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소셜미디어의 발전이 없어서 그랬던 것인가?
증오가 이토록 무섭도록 번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증오의 응집체가 만들어지는 게 쉬워진 환경인 것 같다.
과연 그 시작점은 어디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한국에는 그런 증오가 가득했던 것인가?
과거에 대한 기억보정값이 너무 커서 현실을 자각 못하는 것인가?
너무나 많은 물음을 반복적으로 자문하게 된다.
사실 개인적으로 요즘 생활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마주치는 증오의 현상을 느끼는 게 매우 힘들다.
사회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양보와 타협보다는 강대강의 대결이 심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강약약도 아니고 대부분 그들만의 리그에서 서로 다투고 있는 모양새이다.
아름다운 말 대신 비속어, 은어 이런 것들의 그들만의 문화라고 치부되고
더 나아가서 혐오스러운 발언조차 이제는 장난처럼 밈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말의 증오는 사고까지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려가 된다.
원래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끼리 상대방의 말을 잘 안 듣는 경향이 있지만
그러기 때문에 오해와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대화의 장이 필요하고 실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다 보니 그런 어려움보다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집결시키는 강한 어조. 상대방에게 증오를 담아 발산한다.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끝나지 않은 증오의 뫼비우스 띠도 그런 시작으로 퍼져 나가
결국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한 번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증오에서는 아름다운 무엇이 태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창한 화해를 위한 노력이 아니더라도 우리 생활반경에서 일어난 상황 속에서
증오를 담은 말과 비속어보다는 자신에게 들리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정결한 언어습관을 가져보는 것은 어떠한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