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과 바다, 그리고 너
1.
그 전날 꿈에는 네가 나오지 않았어.
대신 두 명의 낯선 남자가 나왔어.
그 전의 이야기는 통째로 기억 속에서 사라졌어. 엄청 박진감 넘치는 일들이 벌어졌던 것 같은데...
미래 도시에서 나는 추격전을 했던 것 같아. 누군가를 쫓기도 했고 반대로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기도 했던 것 같은 느낌도 들어. 확실하지는 않은데 그랬던 것 같은 느낌. 그래, 이렇게밖에는 설명하지 못하겠어.
그리고 다시 내 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부분부터 기억이 나.
나는 창문으로 걸어갔어. 한강을 보고 싶었나 봐. 거기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한강이 훤히 보이는 곳이거든. 너도 와봐서 알지? 그런데 창문 사이로 큰 벌레가 날아다니고 있는 거야. 문이 열려 있었던 거지. 왜 문이 열려있을까 궁금하던 순간, 매일 로션을 바를 때마다 이중으로 되어 있는 그 창문이 다 잠겨 있지 않아서 신경을 쓰던 게 떠올랐어. 진작 좀 잠가 놓을 걸. 내 귀찮음을 탓하며 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커다란 얼굴이 나타나는 거야.
송충이처럼 짙고 삐죽삐죽 정리되지 않은 눈썹, 그 아래로는 쌍꺼풀이 짙은 두 눈, 얼굴 가득 까칠한 수염이 자라 있던 남자. 그 옆으로는 더 새까만 남자의 얼굴도 불쑥 튀어나왔어.
나는 깜짝 놀랐어.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두 남자는 창문을 열더니 내 방으로 들어오려고 했어.
도망가려도 해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
두 남자는 방충망까지 힘껏 열어젖히고 더 매섭게 나를 노려봤어. 우하하하 비웃었던 것도 같아.
난 정말 끔찍했어. 얼른 이 상황을 끝내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난 있는 힘을 다해 다시 소리를 내보겠다고 결심했어.
두 남자가 넘어져 있는 내게 거의 접근했을 때 난 드디어 소리를 지를 수 있었어.
"(으아아아...) 누나!!!!"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나는 이불을 차면서 잠에서 깼어. 내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 송글 맺혀있었어.
끔찍했던 상황이 실제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어. 그런데 이상했어. 절체절명의 순간 내가 외친 말이 너의 이름이 아니라 누나라니 말이야. 네게 이 이야기를 해준다면 넌 어떤 반응일까. 늘 그렇듯 웃어줄까, 서운하다며 삐질까, 괜히 궁금했어.
2.
마찬가지로 잠에서 깼는데
꿈속 장면이 토막 난 것처럼 많은 것들이 기억나지 않았어.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꿈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어렴풋이 네가 떠올랐어.
그래. 오늘 꿈에는 네가 나왔던 것 같아.
그것도 바다에서 우린 함께 있었어.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바다는 아니었어. 오히려 조금은 쌀쌀하고 우중충한 날씨였어. 해가 이미 저 버린 시간이어서 주변엔 온통 곰팡이가 핀 것처럼 어두운 보랏빛이 돌았어. 그런 바다에 우린 뛰어들었던 거야. 처음에는 오들오들 추웠는데 모든 걸 내려놓는 마음으로 바다에 내 몸을 맡겼어. 머리까지 바다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오니 바닷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고 입에서는 짠맛이 났어.
난 어릴 때 친구들과 목욕탕에 간 것처럼 너와 장난을 쳤어.
물세례를 퍼부으며 에너르기 파, 기공파 따위의 이름을 붙였고 넌 내게 더 큰 물줄기로 반격했어.
우린 바닷물에 쫄딱 젖은 채 부두를 걸었어. 머리카락에서도 짠내가 났고, 너에게선 비린내도 나는 것 같았어.
"비린 내가 나"라고 내가 말했는데 너는 "너는 안나는 것 같아? 더 심해"라고 말했어.
난 그 말을 듣고 너에게 달려갔어. 그리곤 너를 바다로 밀었어. 너는 나를 끌어안아서 우린 함께 바다로 다시 풍덩 빠져버렸어.
그런 식으로 우린 밤새 바다에서 놀았던 것 같아.
어느새 곰팡이 색 가득한 풍경은 밝아오는 빛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고
내 손가락에는 쭈글한 주름이 귀엽게 나 있었어.
우린 주름진 손을 맞잡고 부두를 걸어 나왔고, 꿈에서도 걸어 나왔어.
그게 오늘 내가 꾼 꿈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