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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진희 Oct 30. 2024

14화. 아직은 웅크린 채로

2019년 12월 코로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아기는 9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잡고 서며 걸음마를 뗄 연습이 한창이었다. 아기를 눕혀놓고 기저귀를 갈면서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관련 첫 뉴스를 보던 순간을 기억한다. 서늘한 두려움이 일기는 했어도, 그 후로 아기가 세 돌이 지나도록 마스크를 쓰며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코로나로 외출이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아기가 아직 걷지 못할 때는 함께 갈 만한 곳이 별로 없어서 주로 집에서 지냈다. 외출이라면 장을 보러 마트에 가거나, 예방접종을 위해 소아과를 방문하는 정도였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소아과에 갈 때마다 떨렸다. 코로나보다 무서웠던 게 타인의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는 아기띠를 하고 아기를 안으니 누가 아기 손을 보기가 어려웠지만, 소아과는 대기시간이 있다 보니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매번 아기를 제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의사조차 손이 다르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진료가 끝나는 일이 쌓여갔다. 어느 영유아검진에서는 의사가 선천적 질환이 있느냐고 질문해서 "이게 궁금해하시는 질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손이 다르게 생겼어요"라고 대답하니 의사는 그제야 어디 보자며 아이 손을 봤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생각보다 손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어디 가서 타인의 손을 관심 있게 보는 일은 거의 없지 않았던가? 그렇게 깨닫고 나니 외출이 조금 편안해질 즈음이었다.


그날도 소아과에서 대기 중이었다. 아이는 유모차에 누워 유모차 손잡이에 아치형으로 걸어놓은 장난감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그러다 대기실을 연실 기운차게 활보하던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우리 곁을 쓱 지나갔다. 나는 직감적으로 저 아이가 손을 보았다는 걸 알았는데, 그 아이의 반응은 적이 뜻밖이었다. 아이가 대기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제 아빠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아빠! 쟤 손가락이 두 개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합지손가락 분리수술 전이었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두 개로 보일 만했다. 그 아이의 아빠는 눈은 여전히 휴대폰에 둔 채 무슨 한심한 소리냐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무슨 말이야?"

아이는 답답한 모양이었다.

  "쟤 손가락이 두 개라고!"

 아빠의 대답은 "와서 앉아"였다. 아이는 자기 말을 믿어달라는 듯이 더 크게 말했다.

  "진짜야! 봐봐! 진짜 손가락이 두 개라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새하얬다. 심장은 쿵쾅거렸고, 몸과 시선은 굳어서 우리 아기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귀는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그때 그 아빠의 무심한 대답이 귀에 들려왔다.

  "말도 안 되는 얘기 그만하고 좀 조용히 해."

  "내가 봤어! 손가락이 두 개라고!"         

이제는 아이가 그만 말했으면 싶었다. 그 아이가 두 개라고 외칠 때마다 머리를 얻어맞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급기야 그 아이가 "쟤!"라고 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빠를 우리 자리까지 끌고 오려고 하자,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을 이끌고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한동안 적절한 반응을 찾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울까? 눈물이 나지 않았다. 화나는 건가? 화가 나지 않았다. 슬퍼야 하나? 조금 슬픈 것 같기는 했다. 방금 정신없이 두들겨 맞았기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었다. 그날의 일을 두고두고 떠올렸다.


놀라고, 궁금했을 아이의 마음이 천천히 이해가 되었다. 그 아빠가 아들에게 잘 설명해 줬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나도 출산 후에야 세상에 다양한 손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처지에 그건 많은 걸 바라는 것 같았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까?

  "그래. 세상 모든 사람의 손가락이 다섯 개는 아니란다. 다르게 생겨서 놀랐구나. 그렇지만 네가 큰 소리로 계속 말하면 아기도, 엄마도 마음이 아프단다. 그러니 다음에 우리를 만난다면, 속으로만 생각해 줄래?"

  한참을 공들여 대답을 정리해 놓고는, 그 아이에게도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닌지, 자신이 없어져 웅크린 채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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