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탕과 열탕을 오가는 냉정과 열정 사이
육아차차 육아 육아 #10
지난 주말엔 두 녀석 사이가 유독 좋아 보였다. 아침부터 서로의 놀이에 기꺼이 참여하더니 급기야 늦은 점심을 먹고는 속닥거리다 자기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를 찾지도 않고 낄낄거리는 웃음만 가득하기에 아내와 커피나 한 잔 하려고 여유를 부리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파국을 맞이했다.
"엄마, 동생이 또 억지 써."
"아냐 엄마, 누나가 먼저 마음대로 했어."
아이들은 싸우게 마련이지만, 둘의 다툼은 지나치게 다른 둘의 성향 때문일 것이다.
첫째는 따지자면 고양이에 가깝다. 도도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덜렁거린다. 우리 누구도 고양이와 직접 동거한 경험이 없어 이 특징이 공존할 수 있나 싶은데 주변의 집사 지인들 말로는 가능하단다. 우리 집 고양이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도도한 그녀는 한 번씩 과하게 냉정하기까지 하다. 대게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하거나 주로 동생이 어이없는 제안을 할 때 나타나는 싸늘한 표정은 우리도 모르게 '냉정한 년'이라 중얼거리게 하니까.
그런 반면에 잘 흘리고 까먹고 칠칠치가 못하다. 밖에서는 특유의 인상과 똘똘함으로 야무지다는 평가를 받지만 우리는 그게 얼마나 잘못된 평판인지를 알고 있다. 늙어가는 어미아비보다도 떨어지는 기억력으로 벌써부터 자기 물건의 위치를 찾아 헤매는 걸 보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둘째는 철저히 개다. 심지어 생김새도 강아지상이다. 사람 좋아하고 다정하고 장난기가 가득하다. 우리 집 반려견은 워낙 무뚝뚝해서, 때론 아들이 더 강아지 같다 여겨질 때도 있다. 심지어 극도로 흥분한 상태엔 엉덩이 근처 어딘가에 꼬리가 보이기도 한다. 정말이다.
누나보다 훨씬 더 애교도 많고 스킨십도 자연스러운,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아이다. 다만 그게 과하다 보니 감당이 안 될 때도 있다. 집에 키우는 개가 시도 때도 없이 핥아대고 매달리면 아무래도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자랑하자면, 모두가 부러워마지 않는 딸 같은 아들이다. 물론 우린 딸이 워낙 냉정해서, 결국은 본전이긴 하지만.
당장 드러나는 특징들이 이렇듯 정반대라 보기에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런데 보는 우리나 그렇지 당사자들 입장은 좀 다르다. 틀어지는 지점에선 서로를 당최 받아들이지 못한다. 큰 아이는 동생의 치근덕거림이 과하다고 호소하고 셈이 서툰 여섯 살을 귀찮게 여긴다. 한편 둘째는 절대 봐주지 않는 누나의 승부욕에 매번 상처 받고 늘 자신의 과오가 지적받는 걸 속상해한다. 개와 고양이는 서로 언어의 차이가 있어 합사가 힘들다더니 딱 그 짝이다. 이제 좀 컸다고 잘 놀기도 하지만 그런 만큼 본격적으로 의견을 갖고 다투는 게 잦아졌다.
그래 봐야 세상에 자기네 둘 밖에 없는데, 엄마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동생을 만들어 줄 생각도 없는데, 저렇게 싸워대면 어쩌나 싶게 부딪히기도 한다. 많은 남매들이 서로를 남보다 못하게 여기는 일이 많기에 걱정될 때도 많다. 저 날카로운 녀석이, 자기 동생이 언제까지 누나 바라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한 번씩 안타깝다. 둘째 역시 지지 않으려고 덤비는 걸 보면 그래도 남자애라고 저러나 싶어 황급히 뜯어말린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래도 첫째의 역할이 크다. 상성을 따져도 둘째가 손해 보거나 상처 받을 수밖에 없는데, 원체 순한 탓에 혹여 덤비더라도 반란 초기에 진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그 결말은 앙칼진 고양잇과 동물께서 친히 발톱을 세워 꼬리와 귀를 축 늘어뜨린 갯과 동물을 마구 할퀴어 대는 걸로 끝난다. 동물의 질서에 인간이 관여해서는 안 되겠지만, 도저히 안쓰러워 못 견딜 지경이면 우리가 중재에 나선다. 상황이 그러다보니 첫째가 혼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엔 머리가 좀 커졌다고 부쩍 섭섭해하고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댄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니가 좀 심했다니까? 응?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이 죽이 맞으면 지난 주말처럼 한도 끝도 없다. 한껏 기분이 좋어서는 부모도 못 들을 귓속말로 의사소통을 하니까 벌써 둘만의 비밀도 있는 모양이다. 도대체가 중간이 없다. 이게 문제다. 애인의 친밀감과 원수지간의 증오를 오기는 건 너무 미친 사람 널뛰기하는 거 아닌가. 바라기는 그 감정의 고저가 적당히 튀면 좋겠다. 넘치게 과하거나 메마르도록 부족하지 않은 평온한 감정으로.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면 그 평화가 부디 오래갔으면 좋겠다.
왜냐고? 엄마 아빠는 더 이상 너희에게 다른 형제자매를 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