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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한 Dec 29. 2021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사람과 살고 있었다.

육아차차 육아 육아 #29


scene #1


장엄한  함께 막이 내렸다. 이내 인터미션이 시작됐지만 흥분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큰맘 먹고 예매한 공연의 만족도 엄청났기에 젊은 부부는 여운을 곱씹으며 감회를 나눴다. 겨우 1년 만의 나들이지만 마냥 황홀한 것이, 과연 사람답게 사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맘 한편이 불편한 건, 6개월짜리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겼기 때문이리라. 이른바 100일의 기적은 놀라웠지만 이 갓난쟁이는 여전히 엄청난 울보였다. 한 번 시작하면 모두의 진을 빼놓는 녀석이 과연 평온한 저녁을 보내고 있을지. 불안스럽게 핸드폰을 켜니 자그마치 20여 통의 캐치콜이 있었. 물론, 발신인은 모두 한 사람이었다.


놀란 부부는 황급히 전화를 했다. 지친 목소리의 응답 너머로 우렁찬 울음이 들려왔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다만 너무 울어대는 통에 '일일 잠 도우미'의 영혼이 달아나버렸을 뿐. 상대는 애써 괜찮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이쪽은 아무래도 괜찮지 않았다. 이미 확인한 부재중 전화의 횟수와 통화 목소리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


그래서일까, 2부는 맘껏 즐기기 쉽지 않았다. 당장 집으로 가야 하나 싶은 찜찜함을 억누르며 겨우 시간만 보냈다. 막바지에 그 공연의 목적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대표곡이 나왔지만, 그 감동을 고스란히 누리는 건 호사였다. 커튼콜도 미처 다 못 보고 부랴부랴 챙겨 집으로 향했다. 그 길에서 다짐하기로는 이제 다시는 이런 식으로 아이를 맡겨놓고 나오는 건 않기로 했다. 문화생활을 그만두면 그만뒀지 이건 아니지 않냐고 굳게 마음먹었다.



scene #2


도착이 일렀는지 영화 시작까지는 20여분이 남았다. 간단한 요기를 위해 간식거리를 사다 말고 할머니 집에 간 딸아이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중에 뭘 하는지 핸드폰 화면을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저녁 먹었어?"


"어. 할머니가 오징어순대 해 주셨어."


"양치도 했고? 이제 곧 자야지."


"근데, 나 포켓몬 하나만 더 보고 잘게. 할머니도 괜찮다고 했어."


정신이 팔린 건 만화 때문이었고 시끌벅적한 건 주변을 돌아다니며 까부는 아들 때문이었다.


"사랑해. 잘 자."


빨리 끊으라는 거다. 언제 잘 건지 기약도 없으면서 잘 자라는 인사를 남기니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는다. 두 사람은 여유 있게 간식을 해치우고 영화관에 입장한다. 실로 오랜만이다. 그리고 그 여유만큼이나 영화는 만족스러웠다.  아니, 처음부터 영화는 뭐가 됐든 상관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야행 생활이 주는 기쁨이, 오롯이 두 사람이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이 새삼 눈물 나게 반가울 따름이었다.



요즘에야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부부 의 시간을 보내는 건 흔한 일하다. 실제로 현대의 양육 문화에서 조부모의 도움이 크다는 걸 부정할 수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거의 누리지 못했다. 비단 첫 장면 사건이 아니어도,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결혼 초기에 예기치 않게 이사하게 되면서 양가 조부모 모두와 멀리 살게 된 것이다. 그 이래로 좀처럼 가까이 살 일이 없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우리 둘이서 아이를 키워냈다. 뭐 따지자면 아내가 비교할 수 없이 더 고생했지만.


감사하게도 크게 아프지 않았고, 그렇다고 위급한 사건 사고가 일어난 적도 없다. 덕분에 급히 손 벌릴 일 없이 이날까지 잘 지냈다. 날카롭게 생존에 집중하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소싯적 즐겼던 모든 것을 잠시 놓아두고 생활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런 사치까지 누리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여기며 그런 유흥 따위 다른 세상의 것 취급했다.


그 생각에 균열이 생긴 건 최근이었다. 어느덧 둘 다 많이 커서 이제는 제법 사람 비슷하다는 게 부쩍 느껴져서일 거다. 혹시나 싶어 이번 방학 때 둘만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가서 며칠 보내 보겠냐 물어봤다. 큰 기대는 않았는데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사실 보내면서도 내심 불안했고 못 미더웠다. 혹여나 가서 찡찡거리면 바로 데려와야겠다 싶어 예민하게 지켜봤는데, 생각 이상으로 씩씩하게 잘 살았다. 대체 언제 이리 큰 건지. 무사한 저녁을 보내는 걸 확인하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내친김에 좀 더 욕심을 부려봤다. 그게 큰 맘먹고 감행한 부부 둘만의 데이트다. 자그마치 8년 만.


고른 영화는 공교롭게도 스파이더맨이었다. 쫄쫄이 입은 초능력자 이야기보다는 그 안에 설정된 평행우주가 울림을 가득 줬다. 우리 부부, 아이들도 같은 존재지만 8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마치 평행우주 마냥 전혀 다른 상태로 살아가는 게 절실히 와닿았다. 지금의 이곳에는 한 시간을 울어대는 통통한 아기도 없고 좀 더 젊고 혈기 넘치는 부부도 없었다. 안정과 평화가 찾아왔고, 마음의 여유는 위 두 장면의 간극 이상으로 천지차이다.


같은 인물이 살아가는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되기까지 필요한 건 결국 시간이었다. 거기에 투여된 젊은 부부의 노동력과 활기, 각종 시간과 노력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그러자면 흘러간 세월에 쓸려간 젊음이 서글프지만 구질구질하니 그만 두기로 하자. 아무튼 희생 아닌 희생을 통해 우리는 드디어 사람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둘이나!


영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켜면서도 아무런 조바심이 일지 않았다. 그리고 켠 후에도 특별할 건 없었다. 이제 잠들었다는 문자만 와 있을 뿐, 급박한 부재중 통화의 흔적도, 감당 못 할 꼬마들의 떼 부림도 없었다. 그저 평온한 일상었다. 잠시 카페에서 영화에 대한 한담나눌 때까지 그 어디에도 아이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너무 낯선 이 상황에 당장 어리벙벙하지만, 어쩌면 앞으로 이런 일들이 점점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이제 갓 사람이 된 녀석들이 자기들의 세계가 커지면 우리가 없는 시간과 공간이 더 늘어날 테니까. 이런 날을 바라 왔건만 막상 닥 아직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 순간이 새삼스럽게 소중하다. 그건 그거고, 일단은 이 상황을 좀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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