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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Sep 21. 2022

국민의 소리를 담는 귀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노인경,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문학동네, 2022)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귀가 엄청나게 컸던 어느 임금이 그 사실이 부끄러워 모자로 숨기고 살았다. 임금의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모자를 제작하는 기술자였는데, 그는 임금의 비밀을 평생 간직하고 살다가 병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없는 대나무 밭에 가서 임금의 비밀을 있는 힘껏 가슴이 뻥 뚫릴 때까지 소리를 질렀다. 그의 속은 편안해졌지만, 바람이 부는 날이면,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의 비밀이 들려왔다. 결국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자신의 귀를 부끄럽게 느낀 왕이 그것을 가리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는데, 그 귀를 가리게 해줬던 사람이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 힘들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쳤던 것이 바람을 타고 소문으로 퍼지게 되었다는 대체적인 이야기의 줄거리만 있을 뿐이다. 그 임금이 누구인지, 모자를 제작한 기술자는 또 누구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고, 귀의 모양도 길었거나 컸다는 이야기도 있고, 모자가 아닌 왕관으로 가렸다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설정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도 있고, 유럽과 아랍지역에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48대 왕인 경문왕이 그 주인공으로 삼국유사에 실려있다.



경문왕은 왕위에 오르자 임금님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되었다. 그러나 태후와 궁인들 모두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오직 두건을 만드는 장인 한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토록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도림사(道林寺)의 대나무 숲 속에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대나무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乃登位 王耳忽長如驢耳 王后及宮人皆未知 唯幞頭匠一人知之 然生平不向人說 其人將死 入道林寺竹林中無人處 向竹唱云,)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

(吾君耳如驢耳。)


그 후로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

(其後風吹 則竹聲云,)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

(吾君耳如驢耳。)


왕이 이 소리를 싫어해서 곧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 그러자 바람이 불면 다만 이러한 소리만 났다.

(王惡之 乃伐竹而植山茱萸 風吹則但聲云,)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도림사는 옛부터 입도림변에 있었다.】


                                                                                                                   <출처: 나무위키>



전해져 내려오는 이 이야기에서 ‘경문왕은 진짜 당나귀 귀였을까?’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은 경문왕 한 명이었을까?’ ‘경문왕은 왜 당나귀 귀를 가지게 되었을까?’ 등의 질문이 떠오른다.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듯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거꾸로 들여다보게 한 그림책이 있다. 이 그림책은 왕이 되면 목숨을 잃는다는 소문에서 시작된다. 왕이 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많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불특정 다수가 겪을 수 있는 막연한 그런 불행을 자신만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바람둥이 남자를 만나는 여자가 자신이 그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막연한 불행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대우를 해주는 것 같다. 왕이 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1대 왕은 왕관이 너무 커서 고꾸라져 죽었고, 126대 왕은 왕관의 무게에 비틀거리다 허리가 휘어 죽었다. 157대 왕은 왕관이 떨어져 새끼발가락 뼈가 부러져 죽었고, 212대 왕은 수치심으로, 256대 왕은 우울증으로 죽었다. 그리고 367대 왕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해 기가 막혀 죽었고, 378대 왕 역시 그 문제 때문에 화병으로 죽었다. 440대 왕은 자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심장마비로 죽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된 문제는 바로 임금이 되고 나서 갑자기 귀가 당나귀 귀처럼 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쓴 큰 왕관 때문에 사고로 죽거나, 그 모습에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겪어 죽었다.



글로 쓴 이야기 옆에 패턴처럼 그려진 그림이 해학적으로 느껴진다. 당나귀 귀가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이 어이없고, 어리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444대 왕 역시 당나귀 귀처럼 커진 그의 귀가 왕이 된 행복을 빼앗아갔다. 그 왕도 다른 왕들이 했던 것처럼 복두장을 불러 귀를 감출 커다란 왕관을 주문했다. 왕관은 커다란 귀를 가려주었지만, 너무 무거웠다. 결국 이 왕도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444대 왕은 죽음의 숫자라는 ‘4’를 3개나 가지고 있는 왕이었지만, 천수를 누리고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가 다른 왕들처럼 죽지 않은 이유는 다른 왕들의 모습에서 그가 살 수 있는 해답을 스스로 찾았기 때문이다. 다른 왕들은 자신의 귀를 감추는 데만 집중했다. 그것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만 신경 쓰면서 자신이 앉아 있는 왕이라는 자리에 대한 책임감은 무시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보이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한 나머지 가장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잃었던 것이다.



반면 444대 왕은 선대 왕들의 사례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444대 왕이 이전 왕들의 일기를 모두 읽었을 때는 ‘에잇 이깟 귀가 뭐라고’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왕은 왕관을 벗어던질 수 있게 되었다.



당나귀 귀를 가진 왕의 모습을 본 대신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이었다. 왕은 대신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의 말을 잘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이 왕의 귀가 커진 상징적인 이유일 것이다.



왕이 자신의 귀를 커밍아웃하고 난 뒤 그림책에는 왕과 백성들이 함께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 팝업(pop-up) 장치로 뜬다. 갑자기 활짝 펴지는 그림에서 축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쉽게 해결돼서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대감이 들게 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서사의 방향이 바뀌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다. 디자인처럼 보이는 패턴의 그림이 전혀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단조로운 선 안에 리듬감이 느껴지고, 이야기의 유쾌한 면을 하나의 포인트로 잘 잡아 실소가 나올 만큼 간단하게 표현한 것이 재치 있게 느껴진다. 분명 평면적인데 입체적인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것이 팝업의 장치에서 ‘탁’하고 터지는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메아리에 “그래서, 어쩌라고? 귀가 커서 잘 들린다고! 국민의 목소리 하나하나 다 듣고 있다고! 그러라고 내 귀가 커진 거잖아! 우울한 이 시대에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에 크게 한번 웃어도 좋고!”라고 대답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자신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 다른 점은 남들에게는 없는 자신만의 특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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