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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Oct 04. 2022

해보고 싶은 건 일단 해보자!

: ‘겁나. 그래도 한번 해 볼 테야.’

『간다아아!』  

글/그림 코리 R. 테이버, 번역 노은정(대교북스 주니어. 2022)   





높은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떠나 하늘을 훨훨 날아보려는 새 한 마리가 있다. 이 새의 발걸음은 가볍고, 표정은 여유롭다. 마치 이 새는 하늘을 여러 번 날아본 것 같지만, 사실은 오늘 처음 날아보기로 결심한 아기 새였다. 그 아기 새의 이름은 멜(Mel)이다.



멜의 언니 핌과 오빠 피프는 댕강 잘려있는 나뭇가지 위에 날겠다며 멜이 가냘픈 다리로 서 있는 것조차 걱정스러웠다. 멜의 거칠 것 없는 행동 하나하나가 이들에게 첫 비행의 긴장과 설렘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동시에 엄마 새가 둥지에 없는 지금 꼭 날아보겠다는 멜에 대한 원망스러움도 그들의 표정에 묻어난다. 아마도 이들도 멜처럼 날아본 경험이 없는 것 같다.



언니 핌이 멜에게 “겁나지 않아?”라고 물었다.

언니의 질문에 멜이 “겁나. 그래도 한 번 해 볼 테야”라고 대답했다.



오빠 피프는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멜에게 까마득한 밑으로 떨어질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멜은 “날개는 두었다 무얼 하게?”라며 마치 자기 앞에 떨어진 공을 주저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쳐올리듯이, 오빠의 걱정을 당당하게 받아쳤다.



핌의 언니와 오빠의 걱정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용기 있는 멜의 태도에서 멜이 잘 날 수 있을 것 같은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태도는 멜을 다독이며 자신에게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멜이 나는 방법에 대한 것은 엄마 새가 나는 것을 본 것뿐이었을 것이다. 멜은 날개를 언제 펴고 접어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고, 나뭇가지에서 발을 떼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예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멜은 둥지 아래 세상은 본 적이 없다. 본 적 없는 둥지 아래 세상이 두려웠을 것이고, 자신이 잘 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멜은 문득 자신의 둥지가 갑갑하게 느껴져서 훨훨 날아보고 싶어 졌을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멜은 두렵지 않아서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두려움을 넘어섰기 도전해 보기로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래서 멜은 주저하기보다는 용기를 내보았다.



“간다!”라는 외침으로 언니 오빠에게 인사를 하고, 폴짝 뛰어오른 멜은 공중제비를 돌고 난 뒤, 날개를 쫙 펼쳤다가 곧장 떨어지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 모습을 언니 오빠는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멜이 나뭇가지에서 발을 떼는 순간 이들은 두려움에 자신들의 눈을 가려버렸다. 이 순간을 멜과 함께 했다면, 불확실한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의 도전에 만족해하는 멜의 표정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표정으로 이들도 멜처럼 날아보는 것에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멜의 작은 움직임에서 발현되는 큰 용기가 멜의 언니와 오빠의 용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멜이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페이지가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멜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는 위치가 그려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엘리베이터에서 한층 씩 내려가며 열리는 문 사이로 만나는 이웃처럼 멜과 같은 나무에 살고 있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 동물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수단을 이용해서 멜을 잡으려고 했다. 다람쥐는 기를 쓰고 덤볐고, 꿀벌들은 힘을 모아 다리와 꼬리를 잡았고, 거미도 여덟 개의 발로 멜의 꼬리를 잡았고, 개미들도 서로 몸을 이어 멜을 잡으려고 했다. 이들의 시선에서 멜은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추락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멜을 살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멜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이들은 너무 안타까워했지만, 멜은 떨어지는 그 순간을 만끽하는 듯이 평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모두의 걱정을 뒤로하고, 멜은 여유롭게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 멜이 나무 아래 도착하기 직전에 크게 눈을 부릅 떴다. 멜과 함께 나무 아래로 툭툭 같이 떨어지던 시선도 순간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다. ‘멜이 땅에 처박히는 것일까?’ 아니면 ‘파도를 타듯이 땅 위를 유려하게 돌아 힘차게 날갯짓하며 날기 시작하는 것일까?’ 짧은 순간에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궁금함에 책장을 넘기면,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웃음이 한번 터지고, 나무 아래는 땅만 있다고 생각한 단순함에 또 한 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새가 살 수 있는 세상을 하늘과 땅으로만 구분하는 이분법적 단순한 생각에 틈이 생기고, 그 사이로 새로운 전개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멜은 물총새였다. 물총새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곧장 물속으로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멜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추락이 아니라 비상(飛翔)의 다른 의미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에게도 배운 적은 없는 본능이었다. 멜은 바다 위로 튀어나왔던 고래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듯이 부드럽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멜은 물속에서도 자연스럽게 헤엄쳤다.



멜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그림의 방향이 설정되어 있어서 멜을 따라 그림책을 돌리다 보면 평면의 그림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사진이 영상으로 전환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림책의 물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눈으로만 보는 그림책이 아니라 손으로 만지는 그림책으로 변신하면서 멜의 신나는 기분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날아보지 못했던 아기 새 멜에서 날 수 있는 성장한 아기 새 멜을 만날 수 있다. 이제 멜을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은 사라지고, 멜의 비상 (飛上)을 응원하게 되었다. 멜은 물고기를 잡아 다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멜은 떨어진 그 길을 그대로 다시 거슬러 힘차게 올라갔다. 같은 길이지만 그 길을 가는 멜은 이전과는 다른 멜이 되었다.



떨어지는 멜을 잡으려던 동물들도 솟아 날아오르는 멜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었다. 이들이 멜을 잡으려 했던 것은 둥지를 떠난 보통의 새라면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날았을 것이지만, 멜은 날개를 접은 채 아래로 훅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다른 동물들이 불안하게 쳐다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들이 용기 있게 떨어지는 멜이 물총새라는 것을 알았다면, 불안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래로 떨어지는 물총새였던 멜을 잡아주려 했던 주변 동물들의 마음은 멜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나오게 된 연민이었던 것이다. ‘나’의 도움이 때로는 상대에게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다. 그것은 ‘내’가 상대를 많이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상대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나’라면, 필요할 것 같은 손길이 상대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멜이 물총새라는 것을 모른 채로 그림책 표지를 보았을 때는, ‘간다아아!’라는 타이포그래피와 아래로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새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였다. 마치 붉은색의 ‘간다아아!’는 의미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Good Bye!’ 같고, 새의 파란색 이미지 차갑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멜이 물총새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붉은색의 ‘간다아아!’라는 타이포그래피의 울림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신이 날 때 나오는 열정을 표출하는 외침 같이 느껴졌고, 새의 파란색은 희망, 꿈 등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멜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이야기의 공감력을 높여 주었고, 감동을 주었다. 멜이 물총새가 아니었다면, 그의 도전은 용기라기보다는 무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멜이 물총새였기 때문에 그의 첫 비행이 용기가 되었던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무모하게 뛰어들기보다는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에 용기 있게 뛰어들어보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용기를 내면, 못할 것도 할 수 있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fgUEPCiQPa9Skxbq7N_3Xw==?uid=4f8c6c5e6d91434c8dde0827240053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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