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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Dec 07. 2022

프로 악어

: 직업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

『악어 씨의 직업』(한솔수북, 2017)

조반나 조볼리 기획, 마리아키아라 디 조르지오 그림




에메랄드 빛 물색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악어 한 마리가 그 물속에 몸을 반쯤 담그고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다. 강물 주위에 야자수가 둘러져 있고, 그 위로 까만 밤하늘엔 화려한 불꽃이 수놓아져 있다. 악어가 있는 곳이 도시인지 밀림인지 알 수가 없다. 이 궁금증이 신비로운 물 위에 까만 밤하늘의 색으로 입혀진 ‘악어 씨의 직업’이라는 글자에서 더욱 증폭된다.



아침 7시를 알려주는 시끄러운 시계 알람이 이런 호기심을 금세 지워낸다. 이것은 모두 악어의 꿈이었을 뿐이다. 파자마 차림의 악어는 침실의 커튼을 여는 것으로 아침을 맞았다. 커다란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고르는 악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외모는 악어이지만, 악어의 아침은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악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는 순간 악어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걸음의 속도가 그림에서 느껴진다. 점점 흐릿해지는 악어의 모습과 도로와 전차 위에 써진 문자의 소리가 조용한 아침 풍경에 속도감을 더한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야 악어가 비로소 멈춰 섰다. 그리고 악어는 구강용품을 파는 가게 앞에 잠깐 섰다. 악어가 목을 길게 빼고 가게 안의 물건들을 물끄러미 보고 서 있다. 그 모습에서 악어의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애달픈 마음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나가던 차가 악어에게 물을 튀겼다. 그제야 넋을 놓고 가게 창문에 찰싹 붙어 있던 악어가 정신이 돌아왔다. 화가 난 악어와 자동차 안의 모자(母子)의 모습이 서로의 입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 속에 쓸려가듯 악어가 지하철역에 들어섰다. 지하철역 앞에서 나누어주는 신문을 받아 들고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나가듯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왔다. 다양한 광고판 앞에 띄엄띄엄 서 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 악어가 신문을 펼쳐 보며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지하철 안은 승객들로 가득 차 있다. 서로에게 관심 없이 각자의 목적지를 기다리며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 속에는 악어뿐만 아니라, 표범, 하마, 기린, 원숭이 같은 동물들도 있었다. 지하철 문 앞에 자리가 생기자 악어는 목적지에서 내리기 편하게 잽싸게 그 앞으로 섰다.



지하철에서 내린 악어는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고,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전기구이 통닭을 샀다. 그 길을 지나 악어는 신문 가판대 주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광장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작가는 광장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악어가 구강용품 가게 앞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광장을 뛰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침 시간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소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기에도 항상 빠듯한 시간인 것 같다.



작은 프레임 안에 악어의 아침 출근 풍경이 자세히 그려져 있어서 글이 없어도 온전히 공감할 수 있다. 이런 악어의 모습은 익숙해 보이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악어의 일상이다. 이 악어의 일상에서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일상이 배어 있다. 악어가 걷고 있는 길의 풍경이 낯설지 않고, 악어의 움직임이 생동감 있게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악어가 커다란 철제문 안으로 들어섰다. 악어가 목적지에 다다른 것 같아 제목에서 시작된 직업에 대한 궁금증이 최고조에 이른다. 악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일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대저택 같은데 문 옆에 여직원이 앉아 있는 창구가 있다. 좀 전에 산 꽃다발을 여직원에게 무심히 툭 건네면서 상냥하게 인사를 하는 악어에게서 광장에서 뛰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여유가 좀 있어 보인다. 꽃다발을 받은 여자가 꽃내음만 맡으며 악어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악어는 별다른 표정 없이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원숭이 우리를 지나 로커룸(locker room)에 들어섰다. 그리고 악어는 자신의 사물함 앞에서 옷을 벗어 걸어두었다. 몸에 수건을 두른 악어 모습에서 세신사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러면서도 악어가 어떤 일을 할지 알 수 없는 기대가 생겼다. 말끔한 옷차림의 악어가 옷을 벗고 일을 한다는 것이 상징적인 대조가 숨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 기대감으로 넘긴 책장에는 수건마저 벗어던지고 이제까지 보이지 않은 웃음을 보이며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드러낸 악어가 있었다. 그 악어 모습에서 긴장이 풀어지고, 웃음이 터진다. 악어는 자신을 두르고 있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동물원의 악어’가 되었다. 악어는 그저 악어라는 정체성을 가진 생명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악어라는 직업을 가진 악어가 되었다. 밀림 안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꿈을 꾸던 악어가 현실에서는 동물원의 악어를 직업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악어였다.



조금 전에 악어와 함께 지하철을 탔던 할머니와 손주가 그 악어 앞에 서 있다. 이들은 모두 동물원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던 것이다. 동물원은 누군가에게는 직장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놀이터가 된다.



이른 아침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 직장인들에도 꿈은 있다. 뒷면지에 밀림 안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노란 새를 울타리 안에서 바라보는 원숭이에 머무는 것을 안타깝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노란 새가 부러운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자유’를 꿈꾸는 것은 현대인의 로망일 수 있다.



하지만 갇혀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악어가 출근해 일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정은 비단 직장이 직장인을 구속하는 곳만이 아니라, 직장인의 안에 자리 잡은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물원의 악어는 악어가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악어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직장이라도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고, 또 다른 꿈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저 그 즐거움과 스트레스의 결이 달라질 뿐이다.



그래서 악어도 밀림을 꿈꾸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동물원이 답답했던 악어가 자유를 갈망해서 밀림을 꿈꾸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악어에게 밀림은 정글 속에 자리한 밀림이 아니라, 도시의 축제를 감상할 수 있는 휴양지 같은 곳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휴가를 꿈꾸었던 것이다.



동물원에 출근해서 악어가 된다는 것이 원제 ‘Professione Coccodrillo’에 충실한 설정인 것 같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이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자신의 집에서 출근해서 전문성을 가진 동물로 자신을 보여주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상상력은 재미있으면서도 현대인의 모습이 반영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프로는 아름답다’는 어느 광고 문구가 머리에 남는다.    



그리고 잊고 지냈던 출근 시절의 나를 소환해 냈다. 어두운 새벽, 차가운 공기에 악어처럼 꽁꽁 싸매고 출근하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로 아침을 열면, 창문 밖에 해가 떠오른다. 사무실 안에 사람들이 하나, 둘 자기 자리를 채우고, 나도 내 자리에 앉아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의 하루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다.



그때는 버겁고 힘들기만 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저 문제만 만들지 않으려고 일했던 내가 안쓰럽기만 하다. 좀 더 일을 즐기고, 나를 다독여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나도 그때 더 즐겁게 일하고, 새로운 꿈을 꿀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남에게만 맞추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라.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삶이 행복할 것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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