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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May 04. 2023

존재감으로 꽃 피우는 아이

: 주근깨 없는 빨간 머리 리디아

『리디아의 정원』(시공주니어, 1997)

글: 사라 스튜어트, 그림: 데이비드 스몰, 이복희 옮김



     

푸른 언덕 위에 띄엄띄엄 놓인 집이 고요하게 느껴진다. 자기 몸집만 한 삽을 들고 할머니 뒤를 따라가는 조그만 여자아이의 움직임이 여유롭게 보인다. 엄마와 아빠가 검은색 차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아이와 할머니의 평화로운 일상과는 대조적으로 엄마와 아빠에게서는 우울한 기운이 맴돌고 긴장감이 느껴진다.




집 앞에 있던 검은 차는 그 빨간 단발머리의 작은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작은 소녀의 이름은 리디아 그레이스다.



경제 공황의 칼바람이 리디아의 집에도 찾아왔다. 리디아의 부모님 일이 어려워지자 경제적으로 힘들어졌다. 그래서 당분간 리디아는 외삼촌께 신세를 지기로 했다. 외삼촌 댁은 리디아의 집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도시에 있다. 외삼촌은 그곳에서 빵집을 운영하고 계셨다.



리디아는 기차역에서 아빠, 엄마, 할머니 그리고 강아지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혼자서 외삼촌댁으로 가는 기차에 탔다.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보호자 없이 탄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둘만한 사람도 없어 보인다.



리디아는 혼자 앉았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커다란 리디아의 가방은 선반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잘못 닫혔는지 할머니가 챙겨주신 씨앗 봉투들이 안타깝게도 떨어지고 있다. 혼자 가는 여행길에 다소 긴장한 리디아는 창문 밖만 보고 있어 자신의 가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나치는 익숙한 푸른 풍경에서 낯선 풍경을 마주하면 아마도 외삼촌 댁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리디아에게 외삼촌 댁은 미지의 세계다.



리디아는 집을 떠나기 전에 외삼촌께 편지를 썼다. 아마도 엄마가 미리 사정 이야기를 외삼촌께 다 했겠지만, 리디아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외삼촌 댁에 가게 된 이유와 가서 어떻게 지낼 것인지 등에 대한 자기소개를 편지를 빌어 스스로 했다.



리디아는 아주 독립적이고, 자기 자신의 일에 적극적인 아이였다. 그리고 가족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따뜻한 아이였다. 자신도 낯선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집을 떠나는 날부터 가족들에게 편지로 가족을 위로했다.



외삼촌댁이 있는 기차역에 도착한 리디아는 자신을 위협하는 듯한 검은 기차역의 웅장함에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밝고 유쾌한 리디아의 발걸음이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리디아는 잠깐 서서 그 낯선 도시의 어색함과 두려움을 마주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리디아는 새로운 도시의 기에 눌리기보다 현재 상황을 받아들여 잘 지내보는 쪽으로 마음을 다잡은 것 같다.



리디아는 혼자 택시를 타고 외삼촌 댁에 도착했다. 외삼촌은 퉁퉁한 몸에 퉁퉁한 표정을 가진 퉁명스럽기까지 해 보였다. 리디아가 엄마에게 들은 어린 시절의 외삼촌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그래도 리디아 대신 택시비를 지불하는 외삼촌의 모습은 든든했다.



리디아가 커다란 자기 짐을 들고 들어선 외삼촌 동네는 지금까지 자기가 살았던 동네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높은 빌딩 사이로 어두운 골목이 있고, 거리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넘쳐났다.



리디아는 삭막한 도시의 분위기가 자신을 덮치기도 전에 창가에 놓인 빈 화분을 먼저 보았다. 마치 그 화분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새로운 곳에 겁을 먹기보다 새로운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서 적응할 생각을 먼저 한 것이다. 두려움에 한 발 뒤로 물러서기보다는 기대감에 한 발 내디뎌 볼 용기를 내었을 것이다.



외삼촌은 무뚝뚝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첫인상처럼 퉁명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 도시의 딱딱한 분위기가 외삼촌에게  지내온 시간만큼 그대로 스며들었을 뿐이었다. 외삼촌은 리디아가 써 준 시를 자신의 주머니에 소중하게 간직했고, 리디아가 무엇을 하든지 잔소리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 바라보기만 했다.



그 덕에 리디아는 외삼촌 댁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리디아는 빵집에서 일하는 에드 아저씨와 엠마 아줌마에게 라틴어를 가르쳐 드리고, 빵 반죽하는 것을 배웠고, 깨진 컵이나 찌그러진 케이크 팬에다가 할머니가 보내준 꽃씨를 심었다. 꽃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리디아였지만, 자기 집에서 오는 꽃씨는 마치 집의 향기까지 묻혀 올 것 같아 더 반가웠을 것이다.



이웃들도 그런 리디아의 모습에 감동한 것처럼 화분이나 화초를 가져다주었다. 삭막했던 외삼촌 건물이 점차 꽃들로 화사해지기 시작했다. 빵집에 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가장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 같은 동네 거지도 꽃의 향기를 즐겼다.





작은 여자 아이의 부지런한 손과 다정한 손길이 회색 도시에 화사한 색을 뿌려주었다.



리디아는 쓰레기장 같았던 옥상을 정원으로 가꾸었다. 이것을 외삼촌에게 비밀로 하고 선물로 선사하려고 했다. 그러면 외삼촌은 리디아에게 웃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리디아는 희미하게도 웃지 않는 외삼촌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꽃이 사람을 웃게 할 것이라고 리디아는 믿었던 것이다.





독립기념일에 리디아는 외삼촌에게 그 비밀의 옥상을 공개했다. 쓰레기가 나뒹굴던 옥상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정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쪽 구석에 테이블을 두었고, 옥상 가득 온갖 꽃들이 제 모습을 뽐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리디아가 내 버려진 옥상에 마법을 부렸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다. 언젠가는 시들 것을 알기 때문에 그 활짝 펴 있는 그 순간이 더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 순간의 화사함이 지친 삶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리디아의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는 옥상 정원은 외삼촌의 퉁명스럽고 딱딱해진 심장에 온기를 불어넣었을 것이다.   



일주일 뒤에 외삼촌은 그곳에서 리디아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주셨다. 한겨울 같던 외삼촌의 표정이 이제 봄처럼 풀리듯 하다. 외삼촌은 꽃으로 뒤덮인 케이크를 만들어 리디아에게 선물로 주셨다.



1935년 8월 27일, 리디아 그레이스가 짐 외삼촌께 편지를 처음 쓴 이후로, 1936년 7월 11일 엄마, 아빠 할머니께 마지막 편지를 쓰고 외삼촌댁 고양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1930년대 미국을 경제를 얼어붙게 한 경제공황 한복판에 있던 리디아는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것으로 그 한파를 이겨냈다. 아이였던 리디아가 경제공황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생활이 힘들게 변했고,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만 했을 것이다. 그 생각의 중심에 꽃을 가꾸는 것이 있었다. 리디아는 꽃을 가꾸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꽃씨는 땅에 묻고 싹이 터서 자라면서 어떤 꽃인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꽃씨 같다. 자라면서 자신만의 꽃을 피우고 산다. 리디아도 주변을 밝혀주는 향기 나는 꽃이었다. 리디아가 떠나도 그 자리에 남은 꽃들로 사람들은 리디아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긍정의 힘이 리디아의 힘든 상황을 극복하게 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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