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un 25. 2023
파랗게 지친 자신을 노오란 에너지로 채울 시간
: 휴가의 의미
그림 이명애, 『휴가』(모래알(키다리), 2021)
비뚤어진 블라인드가 어질러진 책상의 모습과 어울려 보인다. 널브러진 양말 두 짝과 책상 아래 떨어져 있는 노트조차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을 만큼 그 방은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이러한 방의 모습이 창밖을 내다보는 여자의 뒷모습과도 닮아있다.
창밖을 내다보는 여자의 눈빛은 초점을 잃은 듯하고, 파란 표정은 그녀의 지친 일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달력에 표시한 ‘X’가 그녀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낸 표시 같다.
롱패딩에 자신을 구겨 넣은 그녀가 기차에 올랐다. 내지 속의 파란 세상 속에서 검은 애벌레 같은 그녀가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뉘었다.
그녀는 파란 한숨을 작게 내뱉어 보았다. 그 숨을 내쉴 때마다 용기가 생겨나는 듯 점점 깊고 크게 파란 한숨을 내 쉬어 본다.
‘휴’
기차가 그녀의 파란 세상을 내뱉어 놓고 노오란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삼척에 도착했다. 드디어 그녀가 두꺼운 롱패딩을 벗었다. 계절적으로 롱패딩은 이 그림책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는 왜 롱패딩을 입고 나섰을까. 롱패딩은 계절감을 잃을 정도로 일에 쫓겨 살아온 그녀의 일상을 나타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일상에 지친 그녀의 마음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우연히 마주친 검은 고양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파란 그림자의 그녀가 노오란 그림자의 고양이를 따라간다.
고양이는 사람이 많은 해변으로 갔다. 색색의 파라솔이 펼쳐진 모래사장과 너울거리는 푸른 해변 속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검은 롱패딩의 그녀는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녀도 그 사람들처럼 구명조끼를 입고 그들 속에 앉았다.
양말도 아무렇게나 벗어 놓고, 먹은 음식도 치우지 않고, 그녀의 방과 닮아있는 숙소에서 창밖에 내리는 비를 그녀는 여행 떠나는 전날처럼 내다보고 있다. 가방 안에는 일거리가 가득 들어앉은 것 같고, 충전 중인 노트북과 충전기로 보아 그녀는 이곳까지 일거리를 가지고 온 것 같다. 일상에서 떠나온 듯했는데, 다시 일상 안으로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
비가 그치자 그녀는 다시 해변가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 틈에 발견한 지난번에 마주쳤던 검은 고양이를 발견했다. 혼자였던 그녀가 검은 고양이 덕에 외롭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검은 고양이를 따라나섰다. 친근한 느낌에 그녀는 신나게 검은 고양이를 쫓아갔다.
검은 고양이는 세상과 단절된 듯한 푸른 숲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그녀와 검은 고양이는 자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안겼다. 점점 그녀를 감싸던 푸른빛이 노오란 빛으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에 그 순간을 즐기기 시작하는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시원한 계곡에 몸을 뉘이고, 푸른 바닷속에 자신을 내던졌다.
그녀는 지친 일상의 한숨을 자연 속에 다 토해 놓고, 자연의 냄새, 소리, 촉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살아낼 힘을 얻은 것 같다. 노오란 바위 위에 검은 고양이와 함께 앉아 붉은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제법 여유 있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