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미 Nov 09. 2023

아빠의 자리를 그리워하며

: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윤순정, 『아빠의 작업실』(이야기꽃, 2021)




그림책 표지에는 작업실 안에서 아이와 아빠가 함께 이발소 간판에 색을 칠하고 있고, 그 작업실 밖에서는 예전에 ‘신포 간판’이 있던 자리에 다 자란 그 아이가 ‘윤순정 그림책, 아빠의 작업실’이라고 쓰고 있다. 이 한 장면이 그림책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다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인천 신포 간판집 딸이 자라서 아빠와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그려냈다. 작가 바로 자신의 이야기다.



그 시절의 신포 간판집 딸을 만나면서 우리는 이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이 다가온다. 길거리에 놓인 주황색 공중전화, 극장에 걸려 있는 그림으로 그려진 영화 간판, 지금은 사라진 제일 은행, 그 시절 택시, 이데올로기가 묻어나는 표어, 그 시절 사람들의 옷차림의 그림이 타임머신을 태워 그 시절로 데리고 가는 것 같다. 특히, 당시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은 반가운 그림에 서사보다 더 마음을 빼앗길 것 같다. 내 마음속에 찍어둔 흑백사진이 사실적인 그림으로 꺼내진 것 같기 때문이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는 아빠의 작업실에 가서 하루 종이 놀았다. 아빠는 동네 식당의 간판, 메뉴판, 광고 전단, 현수막, 극장 상영 영화 간판 등을 그리는 ‘간판장이’였다. 드르륵 옆으로 열리는 미닫이 문틈으로 보이는 아빠의 작업실에는 페인트 통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발관, 고깃집, 전당포, 꽃집, 다방, 빵집 등 동네 가게들의 간판들이 아빠 작업실 한쪽에 겹겹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아빠의 손때가 묻은 연필, 모양자, 포스터컬러, 목장갑 등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는 동네 가게들, 영화관, 역 앞 등 동네 구석구석에서 아빠의 작품들을 만났다. 일요일도 없이 일하시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아빠를 보면서 아이는 자신도 아빠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아이에게 무엇이 되라고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아이는 그 아빠의 미소에서 일에 대한 만족과 행복을 느낀 것은 아닐까. 아이가 아빠와 마주 앉아 아빠처럼 종이에 무언가를 쓰고 그리는 그 시간이 아빠와 아이를 소통하게 하고, 아이에게 편안한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었을 것 같다.



아이에게 아빠의 더러워진 작업복과 거칠었던 손이 먼저 보였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는 그 더러워진 작업복 덕에 예쁜 간판이 만들어졌고, 거칠었던 손은 항상 따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이 마음 한편에 그리움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는 간판을 그리는 아빠를 자랑스러워했고, 그곳에서 아이는 아빠의 재능을 닮아갔다. 지금은 비어 있는 아빠의 자리를 보면서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고, 아빠와 닮은 자신의 모습을 아빠께 보여드리고 싶어 한다. 그것은 아빠의 삶에 대한 존경이고, 감사함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었을 때, 이제 아빠의 작업실을 닮은 자신의 작업실에 아빠가 계시지 않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어렸을 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작업실에 아빠가 놀러 와 자신의 작업실 간판을 예쁘게 만들어주면서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을 꾸어본다.



‘아빠’라는 말을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가장’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가부장적인 아빠든지 자상한 가정적인 아빠든지 간에 그리고 그 자리를 잘 지켜냈던지 그렇지 못했던지 간에 어떤 아빠든지 가장의 자리에 있지 않은 아빠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간판장이’가 아니었을지라도 이 그림책의 아빠의 모습의 우리 각자 아빠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을 것 같다.



우리 아빠도 다섯 식구의 가장으로 쉬지 않고 일하셨던 분이었다. 출장이 많아 집에 계시지 않는 날이 많았다. 긴 출장 끝에 집에 오시면, 아빠를 대하는 것이 서먹하기도 하면서 칭찬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중학교 들어가서는 시험을 잘 본 성적표를 아빠가 오시는 날 텔레비전 뒤에 두었다. 아빠께 직접 성적표를 드리는 것도 그때는 쑥스러웠다.



올해 팔순이 되신 우리 아빠는 여전히 나에게 큰 존재이지만, 이제는 칭찬받고 싶은 어색한 관계가 아니라 이제는 내가 이해하고 돌봐야 하는 큰 산 같다. 요즘은 아빠가 드라마의 스토리, 집안일, 엄마에 대한 불만을 아이처럼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아빠가 하루 종일 집에 계신 것도 익숙하다.



올해 팔순을 맞아 아빠에 대한 고마움에 대해 생각해 보니 우리 삼 남매를 키워주신 것에 대한 것과 지금까지 큰 병 없이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빠에게 받은 것을 이제 돌려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내가 심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산으로 곁에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우리 아빠도 아빠만의 작업실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가서 놀 수 있는 곳은 아니었을 테지만, 나는 그 작업실 덕에 잘 자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빠의 수고롭고 힘들었던 가장으로서의 무거웠던 그 시간이 아빠의 노년에는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아빠는 위대하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W1_CnoI4BcjWdZ8g1g5N3w==?uid=4f8c6c5e6d91434c8dde0827240053cb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