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는 사랑입니다

10년 동안 아들의 머리를 잘라 준 아버지

by 박세미

11살 된 아들이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로 미용실에 갔다. 그 아이의 기억으로는 처음 간 것이다. 우리 아이는 미용실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나 역시 아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가는 것이 어색했다. 남편의 장기 출장으로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미용실에 가게 되었다.


아이가 돌이 지났을 무렵,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갔다가 아이가 너무 울어서 놀랐다. 차가운 가위의 느낌과 갑작스러운 시끄러운 이발기 소리가 어린아이에게는 천둥소리처럼 들렸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아이는 폭풍처럼 울어댔다.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미용실을 다녀온 뒤, 남편은 미용 가위와 이발기를 샀다. 군대 시절 일요일마다 장병들 머리를 몇 번 깎아본 적이 있었다고 하면서 아이 머리를 자르는 일에 남편은 자신감을 보였다. 나는 대한민국 군대가 정말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남편은 이발병은 아니었다. 그래도 손재주가 있는 편이니 어떻게든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믿고 맡겼다. 그렇게 믿고 맡긴 것이 10년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집 목욕탕에서는 ‘가만히 있어!’라는 소리가 몇 번씩 메아리처럼 울려댄다. 아이는 목에 보자기를 두르고 의자에 앉아 있다. 범퍼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이가 조금 더 자라서는 아이 전용 식탁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책상 의자에 앉아 있다. 동시에 남편의 자세도 그 높이에 맞춰져 달라져 갔고, ‘뽀로로’로 시작되었던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도 점점 그 장르가 변화해 갔다.


남편의 실력도 점점 좋아졌다. 우리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본 사람들은 지금의 아이 머리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어렸을 때 아이의 머리 모습은 집에서 자른 태가 많이 났는데, 지금은 미용실에서 자른 것 같다는 것이다. 자기 아이들도 머리 자르러 오겠다고 농담을 던질 정도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속으로 좀 놀랐다. 나에게 아이 머리는 항상 괜찮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남편의 수고를 충분히 알고 있고, 나에게 우리 아이는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머리를 자르는 것에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도 나는 만족했기 때문에 아이의 머리 모습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치원 입학ㆍ졸업, 초등학교 입학 등과 같은 아이의 공식 행사를 앞두면 남편은 더 신경을 써서 아이의 머리를 잘라주었다. 아빠가 머리를 잘라주는 것이 우리 아이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다. 아이는 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빠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는 잘 모른다. 아빠라면 누구나 아이의 머리를 잘라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편이 머리를 잘라주는 것에 대해 점점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힘들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해하는 것을 느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남편은 머리를 잘라주고 나서 매번 아이에게 한 마디 툭 던진다.


“다음에는 미용실 가서 잘라!”

그 툭 던진 말을 아이가 받아서 미용실에 가기 싫다고 대답을 하면, 남편은 슬며시 웃음을 보인다. ‘전문가가 만들어 놓은 다른 아이들의 멋진 머리 모습에 비해 우리 아이의 머리 모습이 우습게 비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아직도 아이가 아빠의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 실력을 믿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웃음이다. 또, 아이가 아직은 자기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는 웃음이다. 앞으로 아이가 더 크면, 멋을 내고 싶어서라도 스스로 미용실에 갈 것이다. 남편도 그 시간이 올 것을 알고, 그때 서운해하지 않으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들이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왔을 때, 남편은 영상통화로 아이의 머리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물었다.


“이제, 아빠한테 못 자르겠지? 거기 가니까 편하지?”


아이는 남편에게 칭찬 같은 대답을 했다.


“편하기는 하지만, 아빠가 올 때까지만 미용실에 갈 거야.”


남편은 웃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군대에서 군인들의 머리를 몇 번 밀어 본 것으로 아이의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남편에게도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는 아이를 위해서 차라리 자기가 아이를 달래면서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집에서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를 울리지 않으려고 시작된 일이 아이와 자신을 성장시켰다. 그들은 머리를 자르는 동안 같은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눴다. 둘은 온전히 쉽지 않은 둘만의 시간을 함께 했다.


부모는 모두 아마추어다. 확신이나 대가가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용기를 내서 하는 것이다. 목표도 없고, 성과도 없다. 다만, 그 길을 자식과 함께 가는 것을 감사하게 즐길 뿐이다. 아이가 내 손길을 필요로 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함께 가던 그 길의 끝에서 자식이 새로운 길로 들어서면 그 뒷모습을 보고 응원을 해 주면 그뿐이다.


10년 전 아이의 머리를 잘라주기 시작했던 남편은 지금도 여전히 아마추어이지만, 그 아마추어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 아이는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굳이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들려준 가위질 소리가 아이의 마음에 꽂혀서 저절로 알게 된 것 같다. 자신의 머리를 잘라주던 아빠의 모습은 우리 아이가 기억하는 아빠의 따뜻한 모습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아이는 미용실을 나와서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엄마, 머리가 마음에 들어, 아주 시원해’라고 했던 그 말을 아빠에게는 한 마디도 비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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