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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Jul 07. 2020

내가 만든 길, 나의 길

: 누구에게나 확실한 길은 없다

*『나는 화성 탐사로봇 오퍼튜니티입니다』(2019)

- 글: 이현, 그림: 최경식 (만만한책방)


화성 탐사로봇 ‘오퍼튜니티(opportunity, 이하 ‘오피’)’가 빛바랜 종이 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오피는 실제로 존재했던 화성 탐사로봇인 오퍼튜니티의 애칭이다. 이 로봇은 키 150cm에 185kg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기계 덩어리다. 변신도 못하고, 무기도 없고,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따로 없는 로봇으로, 인간을 대신해 화성에 가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위한 탐사 활동을 위해 태어났다. 적어도 처음에는 단지 로봇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피가 화성에 가서 보낸 그 세월이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오피는 지구에서 출발한 지 6개월 뒤인 2004년 1월 25일 화성의 메리니아니 평원에 착륙했다. 그리고 2004년 4월 24일 인듀어런스 분화구에서 화성 탐사를 시작했다. 빅토리아 분화구, 산타마리아 분화구, 인데버 분화구의 인내심의 계곡에 이르렀을 때가 2019년 2월 13일이었다. 오피는 15년 동안 화성에서 발견된 물의 흔적, 화성의 모습, 화성의 기후 등에 대한 수집된 정보를 지구로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 그림책 속에서 오피를 따라가다 보면, 화성에 대한 놀라움에 앞서 화성의 두려움이 느껴지고, 그 뒤에 오피의 고군분투로 인한 먹먹함이 밀려온다. 오피는 과학자들이 만든 화성 탐사를 수행하는 로봇에서 이 그림책 작가를 통해 과학자들과 소통하는 로봇이 되었다. 오피에게 인간의 생명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오피를 따라 화성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모래폭풍이 불어올 때 오피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원을 끄고 다시 태양이 보일 때까지를 기다렸다. 나도 한껏 몸을 웅크리고 소리 없이 모래폭풍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오피가 커다란 빅토리아 분화구 앞에서 오피가 안전하게 내려갈 곳을 찾을 때는 나도 오피가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마라톤 계곡을 지나면서 오피의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만 더 힘을 내기를 응원했다.



오피는 1초에 5cm를 움직이기 때문에 3미터를 가려면 1분이 걸린다. 그 속도로 15년 동안 총 45.16km를 달렸다. 과학자들이 예상한 화성에서의 오피의 생명은 90일 정도였다. 과학자들은 오피가 태양 전지판에 먼지가 쌓여 충전을 못하거나, 바퀴가 모래 늪에 빠지거나, 절벽에서 추락하거나, 영하 150도의 날씨 때문에 어딘가 고장이 날 것 등에 대해 미리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오피는 이러한 과학자들의 걱정이 무색해지게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자기 임무를 수행해 나갔다.



그래서 물리적으로는 느린 속도인 오피가 '달린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어가는 속도이지만, 오피에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서 주어진 환경 속에서 달리고 있는 것이다. 모두의 속도가 같을 필요는 없다. 각자에 맞는 속도감을 느끼면서 살면 되는 것 같다.  



작가가 준 오피의 생명 속에서 느꼈던 존경심이 감동으로 바뀐다. 오피가 어려움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위험도 없지만 발견도 없다.’ 



이 말은 오피가 첫 번째 분화구 앞에서 자신이 굴러 떨어져서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에게 한 말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움직여야 무엇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전부를 내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과정과 결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뛰어들만한 용기가 필요하다.



또 바퀴가 모래에 빠져 35일 정도 제자리에서 헛돌기만 했을 때 오피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다.

조금씩, 천천히,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오피는 지구에서 보내주는 지시에 따라서 모래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했다.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노력하다 보면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낸다는 메시지 같다. 그러나 나는 그 진리 같은 메시지보다 누구도 제대로 도와줄 수가 없기 때문 혼자서 발버둥 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먼저 보여서 안타까웠다. 포기도 무언가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믿고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포기를 떠올릴만한 여유가 없다.



오피는 자신이 지나온 바퀴 자국이 선명한 그 길을 카메라로 찍었다. 그 길 위로 이런 말이 떠 있다. 나는 이 말을 읽으면서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떠올랐다.



‘내가 지나온 길이다.

지구의 누구도 와 보지 못한 길,

어쩌면 우주의 그 누구도 와 보지 못한 길,

내가 만든 길, 나의 길’ 


‘나는 화성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 오늘도 나의 길을 간다.’



오피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길을 자신이 혼자서 개척해 나아간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과 기대감으로 이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포보스와 데이모스라는 두 개의 달에 의지하면서 그 길을 혼자 가는 오피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모래 위에 새겨진 오피의 발자국은 소복이 쌓인 눈밭을 처음으로 밟는 즐거움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마도 흑백영화 같은 황량한 화성의 그림 때문일 수도 있고, 나라는 사람 자체가 도전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피는 90일 정도의 한정된 시간을 가지고 화성 탐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었다. 그러나 오피는 화성이라는 미지의 공간에서 90일 이후의 확신이 없는 시간을 만들어 냈다. 이 모습이 우리의 인생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적어지고,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일들은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내 인생을 오피처럼 자기 속도로 꾸준히 성실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주는 존경과 감동을 나는 충분히 느꼈지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멈칫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걷다 보면, 물이 흘렀던 흔적도 찾게 되고, 거대한 분화구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비록 모두에게 짜릿한 성취감을 주거나 장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 것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이 책을 읽으면서  ‘오퍼튜니티’가 마라톤 정도의 거리를 임무를 혼자서 수행하면서 다니는 것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qEH2SPo4u8V4PrRv4z-BRg==?uid=4f8c6c5e6d91434c8dde0827240053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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