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 간직하는 것
최경식, 오소리, 홍지혜, 『건축물의 기억』(사계절, 2024)
복잡한 서울의 1호선. 남영역 하행선 선로 너머에 큰 건물이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특별한 모습의 건물은 아니다. 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조차도 그 건물이 왜 거기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을 만큼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다. 여느 건물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해 보인다. 그 건물에는 '국제해양연구소'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하지만 그 건물의 진짜 모습은 검은 벽돌, 육중한 철문, 좁고 긴 창문 그리고 숨겨진 뒷문을 가지고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이곳은 1980년대 군부 독재 시기, 경찰청 산하의 대공 수사 전담 기관이자 악명 높은 고문 장소였다.
좁고 기다란 판형의 그림책 안에 연필로 그려진 건물의 모습이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 국가폭력의 피해자의 기억으로 그 재현된 건물 안에서 벌어진 그때의 서사가 펼쳐진다.
당시 국가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몽상가’들을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속을 샅샅이 보고 다니는 내시경관처럼 잡혀 온 사람들의 모든 것을 조사하고, 장도리가 박힌 못을 빼듯이 그들의 사상을 빼고 자신들의 사상을 못질해 심으려고 하였다. 내시경관이나 장도리 등으로 그려진 그들의 얼굴에서 사람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피하고, 그 시대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만을 쏟아내고 있다. 죄책감 없이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가해자들은 강렬한 색채로 그들의 뻔뻔스러운 변명을 토해냈다. 이들의 모습에서 강하고 독한 살인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듯 하다.
그들이 희미한 불빛을 향해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었다. 명령체계 속에서 대체 가능한 부품처럼 움직이면서 옮고 그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일로 해치웠다.
건물이 이들의 모습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그 자리에 서서 흘러온 그 모든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건물 역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국가가 시켜서 힘들게 했던 폭력으로 자신이 버려진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건물은 화장실, 변기, 욕조가 한 세트처럼 꾸려진 고문방을 품고 있었다. 피자국 없이 뒤처리를 하기 쉽게 하기 위해 설계가 되었다는 기능적인 면도 있겠지만, 화장실, 변기, 욕조 같은 아주 개인적인 곳에서 당하는 폭행은 더 수치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 폭행 속에서 자신의 저항이 모두 조롱당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매 순간이 악몽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서울 한복판에서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 철저히 고립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 당하는 경험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비참함이었을 것이다.
서늘하게 느껴지는 파란색에서 그들의 고통이 느껴진다. 피해자들의 모습이 절제되어 그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고통이 소름 돋게 느껴지는 듯했다.
방마다 끌려온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다.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간다고 해도 이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망막했을 것이다. 미로 같은 건물 안에 갇힌 그들이 이전에 자신들이 누렸던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인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결국 민주화의 싹이 터서 꽃으로 피어났다. 그러나 그 피해자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지하철 역에 쓰여진 ‘남영’이라는 글자만으로도 오그라들고 움츠러들 것이다. 상처는 남았고, 그 상처 위에 그들의 기억도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묻어버릴 수 없는 불편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잘 꺼내어 보여주었다. 세 명의 작가가 합작하여 그린 그림책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그림이 서사 안에 잘 녹아들어 한편의 그림책이 되었다. 그림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 새로운 시선으로 이어져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건물, 가해자, 피해자의 시선으로 이 건물 안에서 있었던 희생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그림은 말하고 있다. 이것은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