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문 같은 말 ‘이까짓 거!’
박현주, 『이까짓 거!』(이야기꽃, 2019)
아이는 갑자기 내리는 빗소리에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가 끝났는데도 야속하게 비가 계속 내린다. 우산도 없는데, 비가 온다.
하나의 우산 속 둘셋 머리를 디민 채, 옷이 다 젖는 줄도 모르고 웃음꽃을 피우며 집에 가는 아이들이 있다. 엄마나 할머니가 우산을 가지고 데리러 오는 아이들도 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아이들은 하나, 둘 학교를 떠난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만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아이에게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우산을 함께 쓰자고 했다. 얼떨결에 아이는 엄마가 데리러 올 것이라고 대답하며 같이 우산을 쓰자는 아주머니를 보냈다.
그런데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자신을 데리러 올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는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아무런 대책 없이 서 있었다. 우산 행렬이 교문 밖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아이는 그냥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려운 일이 찾아오면, 당황스럽다.
그때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홍준호가 자신의 책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홍준호는 비가 오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빗속에 서서 아이에게 가지 않냐고 물었다. 가방을 우산 삼아 빗속을 뛰는 홍준호 뒤를 아이가 따라 뛰었다.
우산 쓴 사람들 사이를 지나 문방구까지 홍준호와 함께 아이가 달렸다. 문방구 처마 밑에 서서 잠깐 비를 피했다. 아이는 가방이 더 젖을까 싶어 가방을 가슴 앞에 꼭 감싸 안고 있다. 한편, 홍준호는 책가방이 땅에 닿을락 말락 하게 한 손에 쥐고는 분홍 우산을 쓴 여자아이를 부르며 아는 척까지 한다. 홍준호에게 빗속을 달리는 일은 익숙한 일인 것 같다.
홍준호가 아이에게 편의점까지 경주를 제안했다. 지는 사람이 음료수를 사야 한다. 아이가 돈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 홍준호가 출발을 외치고 달렸다. 편의점까지 준호가 이겼는데, 준호가 음료수도 사 주었다. 편의점에서 잠깐 비를 피한 뒤, 미미분식, 피아노학원까지 잠깐씩 쉬면서 달리기 시합을 했다. 아이의 얼굴에 점점 웃음이 번졌다.
아이는 ‘비가 내린다’는 그것만으로 한없이 위축되어 있었다. 우산 없이 빗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생각해 보지도 못했고, 함께 우산을 쓰자는 도움의 말도 받아들일 줄 몰랐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누구의 도움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빗속을 뛰는 홍준호의 모습에 아이는 용기를 냈다. 홍준호는 아이에게 같이 뛰자고 아이를 끌어내지는 않았다. 그저 혼자 빗속을 먼저 달리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때로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보여주는 열심히 사는 모습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힘들지?’ ‘힘을 내!’라는 응원의 말보다 나와 같은 사람이 당당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아이는 막상 비를 맞아보니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큰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친구와 게임처럼 하다 보니 재미있기까지 했다.
피아노학원까지 뛰어온 아이는 이제 어디까지 뛸지 다음을 생각했다. 그런데 홍준호의 목적지는 피아노학원이었다. 홍준호는 더 이상 비를 맞으며 달릴 이유가 없어졌다.
아이는 다시 혼자 남았다.
둥둥 떠다니는 우산 사이를 아이가 뛰기 시작했다. 아이는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지 않았다. 가방을 등에 메고 아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비를 맞았다. 빗속을 뛰는 아이의 표정은 신나 보인다.
빗속의 수많은 우산들은 쏴악 쏴악 쏟아지는 빗물을 받아낸다. 덕분에 우산 안에 아이들은 그 차가운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산 속 아이들의 표정은 없다.
폭우 속을 달리는 아이에게 누군가가 함께 우산을 쓰자고 했다. 아이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아이의 진심이었다. 이제 이 폭우가 아이에게는 집에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가 주문처럼 외쳤다.
‘이까짓 거!’
아이가 앞으로는 우산이 없을 때, 비가 와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비를 맞는다고 해서 집에 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비를 맞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비 좀 맞는다고 해서 달라질 거는 없다. 두려울 때, 속으로 되뇌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이까짓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