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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Mar 05. 2021

위기에는‘똑똑함’이 아닌 ‘지혜로움’으로

: 멸종이 아닌 공생으로

*『아주아주 센 모기약이 발명된다면?』(2016)

  : 글/그림 곽민수(숨쉬는책공장)




"메르스로 인한 불안감을 모두 떨쳐버리시고 모든 일상생활을 정상화해주시기를 바랍니다.”

2015년 7월,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메르스 종식을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메르스 발생 70일째였다.


나는 메르스의 공포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2주 동안 미국에 있다가 왔는데,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어떤 규제도 받지 않았다. 내가 귀국하면서 마스크를 쓴 사람이 드물어서 마스크를 쓴 내 모습이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처음 몇 달간은 코로나 19도 메르스처럼 그렇게 우리를 지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2020년 2월 우리를 찾아온 코로나 19는 1년이 지난 현재도 그 위세가 여전히 대단하다.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었고, 사회적 거리 두기,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등과 같은 캠페인이 생겼고,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행동이 가장 위험한 일이 되었고, 각 나라의 국경은 굳게 닫혔다. 우리가 알던 일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우리는 예전의 일상을 기약 없이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 막막한 기다림이 시작될 무렵 나는 이 그림책을 만났고, 1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이 그림책을 보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코로나 19의 혼란과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놀랍게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익숙함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시 보면서 코로나 19를 대하는 나의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0년 5월, 나는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에 가는 것이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도서관에는 새로운 매뉴얼이 생겼다. 도서관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열 체크를 하고 인적사항을 기록해야 한 후, 도서관 바닥에 붙여 놓은 화살표 스티커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 각 도서관실로 안내하는 화살표는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엄이 느껴졌다. 그 정해진 길을 따라 들어가는 내 마음은 엄숙해졌다. 그 마음이 도서관실에 들어서자 조급함으로 바뀌었다. 빽빽이 들어찬 책들 위에 내려앉은 뿌옇고 무거운 공기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 공기마다 낯선 사람의 숨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전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 낯선 사람이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그 공기 어딘가에 툭 던져 놓고 떠났을 수도 있다. 그 낯선 이의 존재가 나에게 이제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도서관은 더 이상 나에게 놀이터가 아니었다.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는 대출할 책들의 청구기호를 미리 확인해서 두었다. 도서관실에 들어서자마자 최대한 짧은 동선으로 빠른 시간 안에 내가 원하는 책들을 찾았다.


나의 임무를 모두 완수하고 돌아서는데,『아주아주 센 모기약이 발명된다면?』이라는 이 그림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계획에 없던 그 상황에서 나는 저 책을 살펴보고 나서 빌려 갈 것인지 두고 갈 것인지에 대해 잠깐 고민을 했다. 그런데 강렬한 제목만으로도 나는 이 그림책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싶어졌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아주아주 센 모기약이 발명되었는지가 궁금해졌고, 그런 모기약이라면 이 세상의 어떤 바이러스도 모두 없애 줄 것 같은 기대감도 생겼다. 나는 서둘러 그 책을 뽑아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와 이 그림책을 보면서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전문 과학서적도 아니고, 의학서적도 아닌 그림책을 보면서 이 책에서 말하는 ‘아주아주 센 모기약’이 코로나 19를 해결할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의심을 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센 모기약이 발명된다는 것과 코로나 19는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림책 표지에 힘없이 떨어지고 있는 듯 한 모기의 그림이 나는 내심 반가웠다. 그 모기가 마치 코로나 19 바이러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 그림책에 눈길을 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자연을 훼손하고 결국 인간을 해치는 아주아주 센 모기약



이 그림책의 메시지는 확실하다. 인간이 무분별하게 만들어 낸 근시안적인 해결책은 생태계를 파괴하여 환경을 훼손하고 결국 인간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고장 난 환경이 회복되어 제 모습을 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생활 속에서 잊고 지내는 사실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완벽한 발명품’이라고 부르며 칭찬한 ‘아주아주 센 초강력 모기약’을 만들어서 ‘모기싫어섬’에 뿌렸다. 섬사람들은 그 약에 후드득 떨어지는 모기를 보면서 모기가 사라지는 것을 처음에는 반가워했다. 도마뱀은 그 후드득 떨어지는 모기들을 먹었고, 고양이는 그 도마뱀을 먹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고양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고양이들이 움직이지 않아서 쥐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초강력 모기약’이 또 다른 인간 삶의 재난을 초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약을 무분별하게 살포하던 것을 멈추었고,‘초강력 모기약’ 대신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이용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모기싫어섬은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그 섬에는 모기가 다시 생겨났지만, 섬사람들은 더 이상 모기약을 뿌리지 않았다. 그리고 똑똑한 사람들은 여전히 모기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성급한 해결책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지혜로운 대책 마련



나는 여기서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반어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여전히 모기를 앞에 두고 연구하고 있는 이들의 마지막 장면이 나는 안쓰럽게 느껴지면서도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흐릿한 파란색 형체에 검은색 안경을 쓰고 있다. 이목구비 없는 얼굴로 이들의 표정을 가늠할 수가 없고, 파란색의 흐릿한 물감은 차갑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에게 전해지는 이들의 모습은 감성적이기보다 이성적으로 느껴졌다. 이성적인 모습을 가치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이 결과적으로 인간 삶의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그들의 노력과 결과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없게 했다. 나는 그들의 똑똑함은 인간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에만 목적을 둔 이기심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의 똑똑함에서는 배려, 공생, 지혜 등과 같은 단어가 나에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맥락에서 이 그림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초강력 모기약’ 같은 코로나 19의 해결 방안이 나오기를 바랐던 나의 어리석음을 마주했다. 당시 단 1초도 코로나 19가 주는 공포를 견디기 싫었던 나는 시간이 걸리는 조심성 있는 대처방안보다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빠른 시일 내에 모조리 없앨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모기를 없애는 것과 코로나 19를 없애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여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키면 안 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세계는 코로나 19를 없애는 신약 대신에 집단 면역을 높이기 위한 백신 개발로 코로나 19를 극복하기로 했다. 집단 면역은 집단의 대부분이 면역성을 가졌을 때를 말하는 것으로, 집단 안에서 면역을 가진 개체 수가 많아지면, 감염병의 확산이 느려지거나 멈추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면역성이 없는 개체도 결국에는 간접적인 보호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우리의 전략이다. 이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2020년 12월 8일 세계 최초로 영국은 요양원 거주자와 직원에게 백신 접종이 이루어졌고, 대한민국도 2021년 2월 26일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세계는 집단 면역의 타이머를 눌렀다. 이것으로 우리가 다시 코로나 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희망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는 알 수가 없다.


이 그림책의 마지막에 모기싫어섬 사람들은 귓가에 맴도는 모기에게 초강력 모기약을 뿌리지 않고 그 모기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반면, 똑똑한 사람들은 다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들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를 쓰여 있지 않지만, 이들이 모기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으로 아마도 모기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연구할 것 같다. 자연에 순응하며, 그 속에서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면, 우리에게는 이들 모두가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 19의 기원을 밝히려고 지난 1월 WHO(세계 보건기구)가 중국 우한에 도착했다. 기원을 밝히려는 노력이 전 세계인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게 하는 단두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보다는 현재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과거를 반성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자연을 개발하면서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것에만 열중했던 것을 스스로 먼저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환경을 어떻게 보전하고 그 속에서 공생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코로나 19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그것이 지금 힘들게 코로나 19와 싸우고 있는 모두에게 앞으로는 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모두가 함께 가다 보면 어느 날,

"코로나 19로 인한 불안감을 모두 떨쳐버리시고 모든 일상생활을 정상화해주시기를 바랍니다.”가 선포될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마스크가 더 이상 필수 생활용품이 아닌 시대가 올 것이며, 인간의 체온이 공포가 아니라 위안이 되는 시간이 올 것이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과학은 인간에게는 큰 힘이 되지만, 자연을 해치는 큰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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