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내 자화상

: 사라진 길 위에서

by 박세미

치열하게 걷던 길이 사라졌다. 한 발 떼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당황스러워 둘러보니 내가 지나온 길이 보인다. 누구도 궁금해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그 길 끝에 내가 서 있다.



길 위에 있을 때, 나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보지 못했고, 내가 어떤 기분인지도 알지 못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서야 그동안 내가 지나온 길들이 보이고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지나왔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지나온 어느 순간 하나 의미가 없는 시간은 없었지만, 나는 내가 힘들 때도, 외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행복할 때도 내 기분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제일 궁금한 사람은 나의 아이다. 그 아이가 무엇을 먹고 싶어 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 나는 너무 궁금하다. 모성이라는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하루에도 몇십 번씩 확인하지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관심이 없다. 꾸역꾸역 삼켜낸 내 감정은 내가 해야 하는 일들 뒤로 항상 밀려 있었다. 누구든 이 정도는 다들 하고 산다는 것이 내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그런데 누구든 이 정도 이렇게 하고 살아도 나는 울어도 되고, 웃어도 되고, 화내도 되고, 슬퍼해도 되고, 즐거워해도 되지 않았을까.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넘어지면, 이 돌부리가 있는 이 길을 들어선 내가 잘못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이 돌부리가 크지 않은 것에 그리고 이 돌부리가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참으로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긍정의 힘이 아니라, 나를 외면했던 것 같다. 긍정의 힘은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져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프기도 전에 나를 위로하고 서둘러 털고 일어나는 것은 긍정의 힘이 아니었던 것 것 같다. 이제야 그런 내가 안쓰러워 보인다. 실컷 아프지도 못했고, 울어보지도 못한 채 서둘러 일어서서 가던 길을 주저 없이 가면서 넘어진 것에 콤플렉스를 갖고 살던 내가 가엾게 느껴진다.



남들도 다 힘드니까 내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닌데, 나는 왜 나를 위로하기에 급급했을까. 내 상처를 마주하지 않고 피하려고만 했을까. 이런 질문들이 40대가 저물어가는 지금에서야 든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얻은 귀한 딸, 첫 외손주, 우리 언니, 우리 누나, 내 친구라는 이름으로 자라면서 받은 사랑으로 지금까지 나는 나를 사랑하면서 어른으로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 내 상처를 외면하고, 내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도 나라는 부족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위축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그 에너지가 다 소진된 것 같다. 어른이라는 무게에 내가 만들어내야 하는 사랑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몸도 마음도 여기저기 고장이 날 때마다 ‘텅’ 소리 나는 빈껍데기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주저앉고 싶은데, 제대로 주저앉지도 못한 채 나를 채워주던 에너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에만 슬퍼하고 있다. 불안한 현재를 보상받기 위해 나는 가까운 미래를 항상 준비했었던 나는 이제 내 미래가 전혀 궁금하지 않다.



예전에는 나만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루고 싶던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이 즐겁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물처럼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무엇’을 이룰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것이든 결과가 무르익어야 되는 시간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버텨내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내가 사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조차도 버티고 살아내려는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마음을 억지로 다독이다 보니 마음도 몸도 자꾸 탈이 난다.



미래를 위한 내 마음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그 길 위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고, 듣지 않아도 되는 소리에는 귀를 닫고, 가만히 나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나를 다독인다. 지나야 보이는 길을 바라보면서가 아니라, 지금 서 있는 그 길 위에서.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까지로 충분해. 그리고 넌 건강한 사람이야. 몸도 마음도.’



하루에도 몇십 번씩 내 마음에 약을 바르는 마음으로 나를 위로하는 말만 되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방향을 잘 찾아갈 수 있는 깨달음을 얻었으면 좋겠다. 늙는 일만 남은 내 미래가 아니라, 내 인생이 궁금한 나의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잡히지가 않는다. 미래의 내가 궁금해지는 그 순간이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내 자화상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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