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부리러 가는 길

: 240시간 만에 2시간

by 박세미

가벼운 요가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자꾸 쇼윈도에 비친 나를 쳐다본다.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고, 멋지지도 않은데도 자꾸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발걸음은 가볍다. 내 손에 들려 있는 유명 커피 브랜드의 텀블러가 나의 촌스러움을 좀 감춰주는 것 같다.



자동차가 달리는 길옆으로 가로수가 보도(步道)를 감싸주듯이 우거져있다. 그 안에 그늘이 생기고 바람도 느린 속도로 다녀간다. 나는 그 안을 걸어가는 내 모습이 사치스럽다고 느낀다. 출근시간이 좀 지난 오전 10시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커피 한잔을 들고 동네 길을 벗어나 걷는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사치스럽다고 생각한다. 그 길의 끝에 피부과가 있어서 나는 사치스러움의 정점에 서 있다.


피부과에 가는 이유는 내 얼굴이 싫어졌기 때문이다. 내 얼굴을 뒤덮고 있는 기미가 나의 늙고 게으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거울 보는 것이 괴로웠다. 그 이유 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나의 만족감 이외에 돈과 시간을 들여 창출되는 이익이 하나도 없다.


금방이라도 연예인 같은 피부를 얻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마치 싸이월드가 폐지되었을 때, 나의 청춘이 그곳에 있는 줄 알고 아쉬워했지만, 막상 복구되어 다시 보니 싸이월드 속의 나는 그렇지 않은 것을 확인한 것처럼, 내 머릿속에 그려 놓는 막연한 나의 모습과 내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피부과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 240시간마다 내가 부리는 가장 사치스러운 2시간이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는 학교에 갔고, 나는 내 얼굴을 뒤집고 있는 기미를 한 꺼풀 벗기러 병원에 가는 그 길이 나를 다독여준다.



나는 그 시간이 아까워 차로 움직이지 않고, 걷는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바쁘게 일하러 가는 것 같고, 걸어가는 나를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처럼 느껴져 뭔가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든다. 나도 도로 위에 있으면, 저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운전할 때, 복잡한 생각들을 하지 못한다. 그저 목적지 가는 길과 도착해서 주차할 공간이 있는지만 생각한다. 운전하는 동안 나는 자동차가 된 것처럼, 사고 없이 시동을 끄는 순간까지 약간의 긴장을 할 뿐이다. 도로 밖은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걷는 동안 나는 눈에 걸리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서 머릿속에 하나하나 문자를 찍어 놓는다. 내 머릿속은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은 활자가 된다. 금방이라도 책 한 권이 만들어질 것 같다. 착각이다.

물감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만큼 밝고 생기가 도는 초록색 나뭇잎, 푸르고 푸른 높은 하늘에 멋들어지게 퍼져 있는 구름을 보면, 사진의 ‘사’자도 모르는 내가 핸드폰으로 그 모습도 담아보려고 한다.




운전할 때는 건물도 육교도 꽃도 나무도 뚝뚝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데, 걸으면 각자 제자리에서 조용히 혹은 시끄럽게, 단조롭게 혹은 화려하게, 삭막하게 혹은 다정하게 자기의 색깔을 드러내며 저마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열흘 전에는 없었던 꽃이 핀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열흘 전에도 있었던 양복점 쇼윈도의 화려한 꽃무늬 양복이 유난히도 촌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외래어로 된 가게 간판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고, 멋져 보이기도 한다.



공장같이 생긴 피부과에 들어서면 로봇 같은 직원들이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상냥한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조금이라도 친절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안의 모든 공기가 미소를 띠고 있는데 차갑다. 그 공기를 뚫고 다정하지만 가식적인 것 같은 프로그래밍된 그 목소리가 들리면, 나의 사치스러움에 금이 가는 것 같다. 피부과에는 내가 받는 치료보다 더 비싸고 더 다양한 시술이 있고, 거기에는 나보다 더 여유롭게 느껴지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나오면, 따뜻하게 느껴졌던 그 햇살이 사납게만 느껴진다. 나는 그 따가운 햇살을 피하면서 집으로 다시 걸어간다. 도로를 따라 걷던 길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안을 파고드는 길로 들어선다. 그 걸음은 이제 사치스럽지 않다.


주변에 시선이 가지 않는다. 포스트잇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적어가듯이 내 머릿속에 생각들을 메모해 나간다. 계모가 시킨 모든 일들을 해 놓고 파티에 가는 콩쥐처럼 아침에 피부과에 가기 전에 내가 해 놓았던 일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었는지 먼저 생각한다. 오늘 아침만 해도 피부과 가기 전에 내가 책 심사를 마무리하고, 그것을 담당자에게 통보했다. 그리고 그 책을 상자에 넣어 택배 보내려고 문 앞에 내놓았다. 택배 아저씨가 그 책 상자를 제대로 가지고 갔는지, 내가 추천한 도서 리스트가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를 곱씹어 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아이가 하교하면 챙겨줄 간식과 학원 가기 전 저녁 식사 거리를 생각한다. 그러면 남편의 퇴근 시간이 궁금하다. 남편의 퇴근 시간은 내가 오늘 저녁을 한 번 차려야 하는지 두 번 차려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내게 있었던 2시간의 마법이 풀렸다. 다시 마법에 걸려 사치스러운 내가 되려면 240시간이 필요하다. 이 사치스러움이 몇 개월의 수명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런데 시한이 있다는 것이 그것을 더 사치스럽게 느끼게 하고 더 소중하게 여겨지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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