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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Aug 07. 2022

할머니가 혼자 떠나는 여행

: 위로와 휴식을 주는 여름휴가

『할머니의 여름휴가』

글/그림 안녕달(창비, 2016)     



 

두꺼운 목화솜 이불이 3단 서랍장 위에 올려져 있고, 어느 여행지에서 사 왔는지도 모를 많은 효자손이 항아리에 꽂혀 있다. 작은 소파와 오래된 텔레비전 그리고 어색하게 서 있는 책장이 단출하게 느껴진다. 거실 통창으로 보이는 빽빽한 아파트와 회색 단독 주택의 전경은 답답하게 느껴지고, 베란다에 놓여 있는 작은 화분들과 할머니의 텃밭이 할머니의 일상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벽에 걸린 가족사진들이 남편과 자식과 함께 했던 할머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림 한 장에서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어느새 할머니의 하루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띵동!’


벨소리에 할머니는 반가운 표정으로 현관을 열었다. 먹을 것을 잔뜩 사 온 며느리와 손주가 할머니를 찾아왔다. 반갑게 손주를 맞이하는 할머니의 뒤로 할머니 집에 올라오는 많은 계단과 콘크리트 도시의 배경이 펼쳐져 있고, 현관 앞에는 할머니가 가꾸는 많은 화분들이 그 삭막한 배경에 대조적으로 놓여 있다. 서울의 어느 동네 한 귀퉁이를 도려내어 보여주는 것 같다. 동시에 시골을 그리워하는 할머니가 도시 한복판에 혼자 살고 있는 모습에 그 그리움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할머니가 한걸음에 맞이한 손자는 바다에 다녀와서 새까맣게 탔다. 할머니에게 그 바다에 다음에 함께 가자는 손자의 말이 할머니에게 다정하게 닿기도 전에 할머니는 힘들어서 갈 수 없다는 며느리의 말이 할머니의 대답을 가로챘다. 그러자 손자는 할머니에게 자신이 주워 온 소라로 바닷소리를 선물했다. 손자가 들려주는 바닷소리에는 파도, 갈매기, 모래성이 모두 보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바다보다 더위에 왔을 손자가 더 마음이 쓰였는지 시원한 요구르트 하나를 손자에게 건넨다.



식사를 잘 챙겨 드시라는 며느리의 인사를 뒤로 하고 할머니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할머니 집의 많은 계단을 내려가는 며느리와 손자의 모습과 습관처럼 소파 아래 앉아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하나의 그림 안에 그려진 것이 마치 할머니가 성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손자와 며느리가 돌아가고 혼자 남은 할머니에게 바람 한 점 없는 7월의 하루는 더 무덥고 더 외로웠을 것 같다. 시원하지 않을 바람을 뿜는 선풍기, 텔레비전 속 바다, 그리고 반려견 메리가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적막함을 깨고, 손자가 놓고 간 소라 속에서 게가 나왔다. 할머니의 반려견 메리는 게를 따라 소라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메리 몸에서 난 바다 냄새에 할머니는 옛날 수영복, 커다란 양산, 가벼운 돗자리, 수박 반쪽을 들고 메리와 함께 소라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의 환상적인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다.



소라 안에는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할머니는 메리와 함께 바닷속에도 들어가 시원한 파도를 느끼고, 수박도 나누어 먹고, 바다표범과 나란히 누워 햇볕에 살을 태우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기념품 가게에 들러 조개 모양의 바닷바람 스위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과감하게 수영복을 입고 신나게 바닷가에서 즐긴 할머니의 모습은 소녀 같았다. 귀여운 할머니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바닷가의 소품들로 채워진 다양한 기념품의 기발한 발상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환상이라고만 볼 수 없는 할머니의 여름휴가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끝이 났다.



기념품으로 사 온 바닷바람 스위치는 다행히 할머니의 고장 난 선풍기에 잘 맞았다. 달달거리던 선풍기 날개가 힘차게 돌아가며 시원한 바닷냄새의 바람이 집안을 가득히 채워주는 것 같다. 마지못해 간신히 나오는 것 같았던 선풍기 바람이 강한 바닷바람이 되어 할머니에게 시원한 여름밤을 선물해 주었다.



무더위에 떠나는 여름휴가가 학업에 지친 아이들이나 직장에서 지친 사람들의 휴식으로만 생각되기 쉽다. 그런데 할머니의 일상이 보이는 듯한 그림 속에서 할머니가 떠난 환상의 바다 여행은 여름휴가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특히, 코로나를 겪으면서 집 밖의 세상이 건네는 위로가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던 지금의 우리에게 그 메시지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하나의 일이 될 것 같은 할머니가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휴가를 떠나는 모습은 노인들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이 허물어졌다. 할머니가 힘이 들까 봐 혼자 편안히 집에 계시게 하는 것이 배려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할머니에게도 일상을 벗어난 세상과의 소통에서 얻어지는 휴식과 위로가 필요하다. 모두가 떠난 집에서 혼자 지낸다고 해서 그것을 휴식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할머니가 보여준 할머니의 여름휴가가 ‘괜찮다’라는 말이 입에 붙은 우리의 부모님을 떠오르게 한다.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그림과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인 할머니의 모습이 마음에 울림을 준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할머니가 혼자 운전해서 어디든 가는 것은 힘들 것 같았는데, 소라를 통해 바다로 간다는 것은 쉬워 보여서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바닷소리를 따라 혼자 소라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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