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진짜 가을 같아요.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무더운 날씨에
매미 소리가 맹렬하게 들렸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여름날이었다.
이젠 새벽녘에 이불을 끌어다 덮어야 할 정도로 서늘하다.
갑자기 기온이 달라졌다.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우리나라의 기후의 특성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
점점 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져가고 있다.
길고 지루했던 한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듯해서
반갑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점점 짧아져가는
하루의 해의 길이를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모처럼 맑게 갠 날씨에 마음이 들썩여서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느새 나무들의 잎의 색깔이 달라져 있었고,
낙엽이 쌓이고 있었다.
은행나무는 벌써 노란 열매를 바닥에다 잔뜩 내려놓고 있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탓에
지난밤 세찬 비바람에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철이 벌써 그렇게 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을을 수확의 계절,
결실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입장이고,
자연의 입장에서 가을을 본다면,
가을은 내려놓음의 계절이고, 비움의 계절이 아닐까 싶다.
봄에서부터 여름에 거쳐 열심히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익힌 것을,
자연은 가을에 아낌없이 버려버린다.
조금의 미련도 없어 보인다.
버리지 않고는 추운 겨울을 견뎌나갈 수 없다.
세상에서 겨울을 살아야 하는 자연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이듬해엔 내려놓은 것보다 나이테는 더 단단해지고
열매를 몇 배 더 많이 맺는다.
사람도 자연에게 계절을 지나가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더 결실하지 못한 것에,
남들보다 더 수확하지 못한 것에 자책하는 계절이 아닌,
스산해서 쓸쓸해지는 계절이 아닌,
내려놓고 비우며 안으로 단단해지는 계절,
나누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계절.
모두에게 이 가을이 그런 계절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