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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벋으훈 Jan 05. 2020

나이를 먹는 것, 무감각을 삼키는 것

  나이드는 건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경험치가 쌓여가는데도 변화가 없을 순 없다. 다만 변화가 없다고 느낄 순 있겠다. 인식의 문제일 테다. 다양한 경험의 누적이 항상 발전적인 방향으로 스스로를 개선하진 않겠지만 개인의 판단 하에 더 나은 지향점으로 이끄느 데 기여할 순 있을 거라 기대한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덜 무뎌지기 위해 노력한다. 


  익숙해지는 게 늘어갈수록 성장한다는 뿌듯함도 피어나지만 한편으론 자극을 주는 요소가 줄어간다는 아쉬움도 있다. 나이의 축적은 피부 탄력이 중력에 지배당하듯 눈꺼풀도 자꾸 아래로 당긴다. 눈을 뜰 수 없게 자꾸만 방해한다. 기존에 보아온 것들만이 사고를 메우게 촉진한다. 인식의 전환을 이루기 어려운 무대에서 활동하게 되는 셈이다. 


  새로움을 마주할 토대가 무감각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2020년에도 덜 무뎌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새로움은 사건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또 나 스스로일 수도 있겠다. 



무뎌진다는 건, 


 선크림도 안 바르고 집에서 나오는 것

 물이 닿지 않아 생긴 눈 주위 이물질을 아무렇지 않게 떼어내는 것

 기침할 때 입을 가리지 않는 것

 내가 뱉어내는 말과 글이, 온갖 이물질이 사회적 존재란 사실을 잊는 것

 계절의 변화를 놓치고 뒤늦게 발견하는 것

 지나가는 한 해를 지켜만 보는 것

 익숙함이 타협을 만들어내고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식히는 것

 떠나기 힘들 정도로 한 곳에, 한 사람에 머무는 것

 달콤한 향에 도취되어 쌉싸름한 향을 찾지 않고 무시하는 것.

 지금의 경험을 과거의 것과 동일시하여 지금의 순간을 폄하하는 것

 다른 사람의 고통을 수치화하여 비교하는 것

 자기 방어를 위해 타인을 공격하는 것

 다가온 만남을, 눈앞의 상대를 기시감의 일부로 여기는 것

 상실에 아파하지 않고 무감각을 당연시하는 것

 쉽게 웃고 뒤돌아 떠나는 것

 미안한 마음을 돈으로 꺼내놓는 것

 사소한 부주의로 발생한 갈등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

 주위에서 주는 애정을 고정불변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고정불변의 온도를 함부로 내던지는 것

 몸이 주는 쾌락을 쉽게 나누는 것

 비판적 사고와 냉소적 시선을 구분하지 않는 것

 빅이슈를 외면할 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

 세대론에 부응하여 행동하는 것

 체면치레에 고개숙이는 것

 미세먼지 수치에 반응하지 않는 것

 사회 밖에서 제멋대로의 개인주의를 실천하는 것

 어깨에 얹은 스스로를 향한 cctv를 자주 끄는 것

 쿨해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것

 타인의 감정을 내 것과 견주어 점수 매기는 것

 당연함을 자양분으로 흡수하는 것

 택시의 느린 속도로 오른 열을 운전석을 향해 식히는 것

 한숨을 언어로 활용하여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

 예민함으로 내적 귀인하여 상황에 순응하는 것

 보편과 평범이 주는 권력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

 권력의 고정불변에 일조하고 추종하는 것

 한 차례의 고민도 없이 댓글을 다는 것

 감사할 대상을 찾지 못 하는 것

 호의를 마땅한 것으로 간주하고 시린 발목을 쳐다보지 않는 것

 사람을 상품으로 보는 것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등 너머에 시선을 두지 않는 것

 무례함의 위치를 묻지 않는 것

 내가 겪은 방식으로 타인을 할퀴는 것

 부끄러움을 외면하고, 심지어 망각하는 것

 타협에서 부끄러움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

 불완전함의 가치를 발견하지 않는 것

 ‘어차피’라는 말이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 무뎌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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