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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Sep 03. 2019

백야

알바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나의 '기분'은 상당한 온도차를 가진다. 없을 때 우울한 감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알바가 있을 때마저 언제 알바가 그만둘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불안은, 24시간 프랜차이즈 자영업자가 늘 안고 가야 하는 때어놓을 수 없는 불치병과 같은 것이다. ‘때려치운다’라는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이 딱 하나 있긴 한데, 부작용이 만만치 않으니 쉽게 처방할 수도 없다. 이런 고충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자영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대부분 직장 내 상하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들이 그들로 하여금 자영업에 대한 꿈을 꾸게 하지만, 나 역시 주말이 있는 그들의 삶이 부럽긴 마찬가지다. 서로의 고충은 겪어보지 못해 알 수 없는 세계이기에 넘볼만하고 살아봄직한 인생으로 비치나 보다.


그럴싸한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어려운 것만큼 자영업으로 성공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빚이 있어 지금도 충분히 가난하지만 더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는 희망이라 부를 수 있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아 완전히 절망의 상태였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이 가업이 우리 가족을 덜 가난한 상태로, 사실은 그런대로 살만한 상태로 끌어올린 것을 생각하면, 이 일은 완전히 할 만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고려하더라도 언제든 이 일을 그만두고 가난의 상태에서 느끼는 자유를 갈망하는 나를 종종 발견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세상엔 참 쉬운 게 없구나~ 느낀다.

 

매번 바뀌지만 요즘은 일을 자정부터 시작해 오전 10시까지 한다. 때문에 퇴근하자마자 잔다. 조금 더 젊었을 때와는 다르게 요즘은 밤을 새우고 나면 깊은 잠을 못 잔다. 여러 가지 걱정들과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짐작만 해 본다. 어쨌든 잠과 피곤과의 상관관계는 때때로 불일치하기 때문에 피곤하지만 충분한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눈은 감고 있지만 정신은 깨어있다. 몽롱한 채로.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좀비처럼 스르르 일어나 부엌에서 끼니를 때운다. 그리고는 다시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침대에 누워버린다. 그럼에도 피곤함을 이긴다는 것, 귀찮음을 꺾는다는 것. 즉 침대 위에 존재하는 무한대에 가까운 중력을 이기고 가방에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겨서 밖으로 나를 끌어내는 반작용은 하나밖에 없다. 지금 보내고 있는 젊은 날에 대한 죄책감. 다른 말로 꿈에 대한 갈망. 특히나 이렇게 날이 좋을 때는.

 

몸을 일으킬 때의 경이로운 의지와는 다르게 막상 카페에 가면 그리 오랜 시간 머물진 않는다. 한동안 책을 쓰느라 해 지는 줄 모르고 앉아있을 때가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목적이 사라져서 버려서인지 브런치 글이나 한두 편 보고, 특별히 무언가 주저리주저리 쓸 말이 생각나면 몇 줄 적는다. 또 책도 조금. 오히려 책은 집에서 더 잘 읽힌다. 이렇게 보면 난 정말 말만 따나 허세에 찌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늘 깨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나의 젊은 날은  진취적이어야 해'라고 주문을 건다. 물론 침대 위보다 카페에 있을 때 생산적인 일을 더 많이 하겠지만 때로는 걱정과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편한 마음으로 당당히 휴식을 취하지 못해서 답답하기도 하다.


(C)2019. 손예슬 all rights reserved.


모두가 잠든 시간이 내 정신이 가장 맑을 때다. 그리고 모두가 활동하는 시간은 그들의 역동성에 이끌려 뇌에서 끊임없이 활동을 요구한다. 글을 쓰는 일이, 가게 일처럼 뚜렷한 결과물과 그로 인한 보수가 주어진다면 조금 더 의무적으로 글을 쓰면서 ‘허비하는 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마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줄일 수 있을 텐데. 의무는 오히려 균형을 잡아줄지도 모르겠다. 그땐 힘들다면서 '내일 일을 위해 충전이 필요한 때야!'라며 나의 휴식에 무죄를 선고할 수 있을까.

 

나의 생활을 피곤하게 하고 좀먹는 것은 일일까, 꿈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꿈을 좇아야 할까? 아니면 이렇게 까지 하면서 가업을 이어가야 할까. 밤도 낮도 모두 나의 무대이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줄 모르는 아주 이기적인 생각이면서도, 사실은 두려움에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인 것을 알기에 애처롭기만 하다.


(C)2019. 손예슬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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