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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Sep 24. 2019

태풍이 불었다


태풍이 불었다. 손님이 없다. 손님이 많을 때는 많아서 힘들고 짜증 나고 그랬는데, 없으니까 아쉽고 허전하다. 마냥 카운터에 앉아 쉬는 것도 이젠 불편하다.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영 익숙하지 않다. 그렇게 싫어하던 가게 일이 이젠 드디어 내 일처럼 느껴지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싫다. 하지 않고 묵혀 두고 있다가 엄마가 하면. 그때 했다. 엄마가 하니까. 엄마는 아프고 나는 건강하니까. 엄마는 허리 한번 숙이는 게, 무거운 것 드는 게 아주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아니니까. 그저 귀찮음만 이기면 되는 문제니까. 그래서 했다. 이 일을 그렇게 해 왔다. 그랬는데. 이 편의점은 나에게 딱 그것이었는데…


월급을 받고 일 한지 3년. 그러나 가게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 가족의 희망이었다. 왜 희망인지 몰랐다. 엄마의 건강과 나의 청춘을 빼앗아가는 암덩어리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희망이라 불렀다. 그렇게 부르진 않았지만 그토록 이 가게에 집착하는 엄마를 보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국 엄마의 기대처럼 이 가게는 희망이었다. 암덩어리가 아니라 희망이었다. 물론 엄마의 건강도 빼앗아 갔고, 내 꿈에도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모든 것 이전에 가게로 인해 살 수 있었다. 가게가 없다면 또 없는 대로 다른 어떤 것에 매달려 희망이라 부르며 삶을 걸었겠지만 만약은 하등에 쓸모없는 미래에 대한 구차한 변명이니까.
3년밖에 안됐지만. 엄마의 인생이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엄마가 30년 넘게 일하신 일터에서 일을 하니까,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인다. 엄마가 그렇게 살았으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어떤 구속도 약속도 없지만, 난 그렇게 살고 있다. 엄마라고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살았을까. 나도 불쌍하지만 엄만 더 불쌍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혼자서 불쌍한 것보다 둘이서 불쌍한 것이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남은 계약기간이 2년. 2년 뒤엔 꼭 그만두리라 다짐했었는데… 오늘 그 다짐을 번복했다. 물론 조금의 타협은 있었지만 조금 덜 벌면서 살기로 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계산상으론 그땐 빚도 다 갚고 진짜 0에서 출발할 수 있다. 엄마도 나도 우리 가족 누구도 쓴 적 없는 돈을 갚는다고 도대체 몇 명의, 몇 년을 앗아갔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남들처럼 시작할 수 있다. 사실 남들처럼 산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정확한 기준이 없지만, 홀가분한 마음이 드니까 그렇게 말한다.


(C)2019. 손예슬 all rights reserved.


한 번씩 엄마랑 수다를 떤다. 좋은 일, 그렇지 않은 일. 오늘도 수다를 떨었다. 뒷담도 하고, 누가 그랬다더라 남들 듣는 소문이 뭔지도 듣고.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이야기도 하고. 여기서 오늘은 조금 달랐다. 아마 나만 달랐다. 엄마에게 내 결심을 말했다. 가게 계속하자고.


같은 선택이지만 엄연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다만 조금 다르게. 엄마도 나도 그땐 빚이 없으니 일하는 시간 줄이고, 남들처럼 주말에도 쉬고, 한 번씩 여행도 가고. 엄마는 어땠을까? 늘 투정만 부리던 아들이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가 어떻게 들렸을까. 언제나처럼 미안했을까? 고마웠을까? 그냥 덤덤했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가 고맙다. 그래서 이 작은 변화에 고마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짐이 되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기대어 있는 엄마가 단 한 번도 원망스럽거나 밉지 않았다. 엄마는 다른 누구를 위해가 아니라 우리 자녀들을 위해 그렇게 살았으니까. 가족 누구한테도 투정할 수 없는 지옥 같은 30년, 그 이상을 살아오셨으니까. 그렇다고 이 선택이 엄마만을 위한 선택은 아니다. 물론 엄마를 위한 선택이어야 했기에 내 인생의 일정 부분을 희생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엄마의 희생에 비교하면, 아니 비교 못한다.


나는 작가를 하고 싶은데 작가가 글만 가지고 돈 벌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다른 돈 버는 직업이 있으면 좋다. 나는 알바나 할까- 생각했었다. 열심히 하면 정직원 시켜 주겠지 라고 막연하게. 혼자 살면 또 못할 짓은 아니니까.
글은 이렇게 쓰면 된다. 지금은 일주일 중에 맘 놓고 쉬는 시간이 지금 뿐이다. 물론 지금도 알바가 언제 그만둘지 몰라서, 그래서 사실 완전히 맘을 놓진 못하지만 어쨌든 주일 저녁 7시에 일을 마치고 다음날 저녁 6시에 출근하는 이 길고 긴 11시간의 휴식이. 특히나 늦잠 잘 수 있는 이 저녁이 유일하게 한숨 내쉬면서 캔맥주 한 캔 따며 글 쓸 수 있는 시간이다. 푸념이나 하자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니 푸념할 수도 있지 뭐. 어쨌든 그렇게 아르바이트하면서 내 인생 사는 거. 그거. 엄마 혼자 두고 그렇게 하면 마음도 편치 않은 채로 그렇게 살 텐데. 일 몇 시간 더 하고 가게 하는 게 낫겠더라. 자영업을 해서 이만큼 돈 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철이 들었는지 현실에 복종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게 엄마랑 나 둘 다에게 좋은 선택일 것 같더라.


가업 탈출의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그 일을 완전히 접고 새로 시작한다고 할 거다. 그렇게 말할 거다. 스스로 선택해서 한 길이고, 가업이 아니다. 이전엔 박성례 사장님의 일이었다면, 새롭게 시작할 미래는 박성례 사장님과 유지혁 사장님의 협업이다. 아니지, 유지혁 사장님과 박성례 이사님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여전히 유지혁 사장님보다 유지혁 작가님으로 불리길 원하지만, 그건 내 필력이 늘고 글이 좋아지면 자연히 따라오겠지. 일주일에 한 번 온전치 못한 11시간의 휴식 중에도 글을 쓰는데. 이 휴식을 반납할 만큼 이 행위가 좋으니까. 어디서든, 어떻게든 쓰겠지.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이 없다는 것.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 누구도 함부로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어떻게 내 인생의 설계가 바뀔지. 저기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아시겠지.


(C)2019. 손예슬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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