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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Oct 01. 2019

동경

생각은-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 특히나 내 눈을 가리는 어둠과 같은 빛이 사라진 때에 불현듯 찾아와 잠을 설치게 한다. 이리저리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내 생각은, 내 감정과 비슷한 선을 가진 글을 찾아다니다가 과거에 내가 쓴 일기 위에 머물다가. 마침내 노트북을 켜 하얀 바탕의 까만 글씨로 채워간다. 이런 날을 기다렸다는 듯, 나를 둘러싼 감정에 집중하며 단어를 나열하며 문장과 문단과 글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다 문득 내 문장은 어떤가 궁금해서 지금 나의 글과 지난날의 유지혁이 쓴 글을 비교하며 들춰본다. 부끄러운 나도 있고 자랑스러운 나도 있다. 다만 문장이 깔끔한 글을 보면 생각의 옳고 그름이나 다른 가치보다도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은 분명 특별한 능력이다. 잘 표현된 글은 나를 잘 드러내기 때문에(나를 노출시키는 것 같아 때로는 부담스럽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내가 드러나지 않은 글은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라 만족스럽지가 않다.


감정이 어떤 형태로 승화되지 못해 온전히 마음속에 응어리가 되어, 그 응어리를 표출해내는 어떤 작품. 또는 예술. 난 잊는 것에 익숙하다. 내가 믿는 신에 대한 믿음과 가족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자발적 구속은, 나를 잊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되게 했다. 누군가의 기쁨이나 슬픔을 공감할 순 있지만 그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이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어색한 일이어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아주 빠른 시간에 말끔하게 정리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거나, 과거의 어떤 추억으로 만들어버린다. 가끔은 고독에 갇혀 어두운 그늘을 만들고 싶다. 그 시간이 다만 잠시만 내게 머물러 나를 그렸으면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 감정을 끈질기게 붙잡고 묻는 쇠사슬이 나에게도 걸려있었으면 ㅡ 때때로 생각한다.


(C)2019. 손예슬 all rights reserved.


한때 사람이 좋아서, 그 인연을 환경과 시간 때문에 끊어버리는 것이 아쉬워 많은 사람들에게 자주 연락을 취하고 심리적 거리가 가깝다면 때때로 만남을 시도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연락을 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조금 더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있었다. 신경 쓰이는 마음은 어린 시절 그녀를 좋아했던 기억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은 딱히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럼에도 연락을 이어가고, 다른 사람과 있을 때보다 나를 편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아마 지쳐 보이는 얼굴을 하고선 때때로 나에게 다소 무례할지 모르는 언행을 하면서도 나와의 약속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 편안함이 이유의 전부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지나서는 더 이상 보기 힘들어졌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 그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더 이상 내가 편안하지 않구나’라는 것.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나의 모습이, 그녀가 나에게 느꼈던 편안함을 빼앗았겠지. 여하튼 사랑과는 다른. 그렇다고 우정도 아닌 이 애매한 그녀에 대한 감정은 그녀의 삶에 있었다. 나는 그녀의 삶과, 무엇보다 그 삶 중심에 있는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그 사람의 미래를 지켜보고 싶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을 걷는 그녀의 삶을 응원하고 싶었다. 그녀가 그녀의 삶을 비관할지 자랑스러워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는 내가 가졌으면 하는 재능과 살고 싶던 삶을 그려가는 중이었다.


혼자만의 해석으로 그녀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했었다. 관계의 단절에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여전히 궁금하지만, 지금 내가 사는 나의 삶이 너무 치열해서 이전처럼 관계에 힘을 쏟기 어려워진 것처럼, 단지 ‘불편해서’라는 이유 말고. 그러면 내가 너무 초라해지니까. 그녀도 무언가 집중해야 할 삶의 어떤 순간이 있었으리라. 짐작만 해 본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따금씩 그녀의 삶의 행보가 드러날 때면 관심을 가지고 봐 왔다. 그녀의 글과 그림을. 그녀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떤 공간에서 그려지는 그녀의 삶의 단면을 보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흩뿌려진 모래알 같았지만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와 깨나 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글을 읽고 나니 난 정말 그녀를 잘 몰랐구나 싶더라. 내가 본, 느낀 그녀는 가난하며 자주 힘들고 자주 스스로의 감정을 못 이겨 분출구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림으로 또 문장으로 재창조되어 나에게 읽혔다. 나에게 없다고 생각한. 많은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문장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그 문장이 여전히 그녀의 삶을 멀리서 들여다보도록 하는가 보다.

(C)2019. 손예슬 all rights reserved.


다시 연락할 용기는 없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 것이 맞을 거라고 마음이 이야기한다. 그저 지켜보는 것이 어떤 소모도 일지 않아 편하기도 하고. 가끔씩 올라오는 글과 그림을 본다. 한 명의 팬으로서. 언젠가 작가대 작가로 만나 나의 심경을 고백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먼 미래의,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혹시나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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