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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Oct 08. 2019

이 세상에 별 남자 없고(1)

별 여자를 기다린다.


그래, 언제 한번 꼭 쓰고 싶었던 주제가 있다. 연애. 나는 그다지 연애를 성공적으로 하지 못했던 사람이라 상당히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주제다. 성공적인 연애가 뭔진 모르겠지만 만약 그 성공적인 연애가 연애에 관한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라면 나는 120% 자격 미달이겠지. 그래서 이 글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의 이야기다. 실패하고 외면당하고 스스로 돌아선 사람의 이야기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연애만큼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3년간 짝사랑했던 사람을 포함해서 학창 시절 나의 연애는 거절의 반복이었다. 내가 거절을 했고 나를 거절했다. 학창 시절 연애를 해 보지 못한 것이 내게는 참 아쉬운 과거다.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학창 시절의 연애는 부모로서, 인생 선배로서 조언이 꼭 필요한 필수 상담 과목일 텐데. 자녀가 나중에 차였다며 울상을 짓는다면 조금은 해 줄 이야기가 있겠다만. 여하튼 내 학창 시절 연애사는 이렇다 할 결과물 없이 그렇게 끝이 났다. 재수를 했고 입학 후엔 한 학기만에 군대를 갔다. 군대를 갈 때 즈음 끈질기게 이어왔던 첫사랑을 잊을 수 있었고 점점 연애는 어떤 환상이 되어갔으며 남아있는 이성이라고는 동성보다 더 동성 같은,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몇몇 여자 사람뿐. 그렇게 외로움이 외로움 인지도 모르고 군생활을 하던 중, 학창 시절과 한 학기의 짧은 캠퍼스 생활을 포함해 연애를 할 수 있었던 아주 좋은 처지(?)에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연애를 나는 뜻밖의 공간에서 하게 된다. 많은 실패와 실수, 몇 번 안 되는 연애 중 이 이야기는 나의 첫 번째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괜히 연애를 못했던 게 아니다. 난 연애 쪽엔 눈치가 1도 없다.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좋아한데! 라던가 저 두 사람 사귄다던데?! 와 같은 소문의 종착지에 내가 있었다. 하물며 나를 좋아했던 누군가는 나의 무관심에 그 사람이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됐을 즈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그걸 숨기지 못해 부담만 잔뜩 주었으니 말 다 했지 뭐.


그때가 언제였더라, 상병을 달고 휴가를 나왔었던 때였나. 아니다 일병이 끝나갈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휴가가 다른 보직의 군인보다 많은 편이어서 집에, 또 교회를 가거나 친구를 만나면 뭘 이렇게 자주 나오냐며. 나라는 누가 지키냐며 핀잔을 들었었다. 그날도 그런 종류의 핀잔을 들으며 교회를 갔던 날이다. 예배가 끝나고 빡빡머리를 하고서는 점심을 먹으려고 줄을 서는데 한 권사님이 누군가를 소개해주러 오셨다. 내가 아니라 내 옆에서 나와 수다를 떨고 있는 Y대를 다니는 똑똑하고 지적인 친구에게. 캐나다에서 온 원어민 교사라며 한국에 있을 동안 우리 교회를 다닐 거라 하시면서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캐나다인 치고는 머리카락이 아주 까맸으며 아주 동양인스러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친구는 아주 어색하게 Hi. 짧고 명확한 한국식 영어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Hello 라던가 Nice to meet you와 같은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이었다. 친구가 Hi라고 하면서 내뱉은 에이치 아이, 하이가 아니라, 안뇽하쉐열 과 같은 꼬부랑 한국말이 아니라 아주 또렷한. 정확한 말씨로. 그날 나누었던 대화는 이게 다였다. 대화도 아니다 그저 인사. 어색하고 불편한. 그 마저도 그저 옆에서 지켜본.


휴가 복귀를 하고 평소와 같은 아주 힘든 군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논산에서 조교를 했다. 내 군생활을 듣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훈련병이 있을 때는 주말이고 뭐고 쉬는 시간이 잘 없다는 정보만 살짝 일러주겠다. 여하튼 오랜만에 여유로운 토요일을 맞았다. 침구류를 세탁하고 널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탁구도 치고 PX도 이용하고. 그리고 사이버 지식정보방에서 컴퓨터도 하고. 페이스북에 들어가 이 사람 저 사람 근황도 보고.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팔로우한 것을 받고 메시지도 받고. 응? 이게 뭐지?


인사라고는 교회 모임에서 처음 왔기 때문에 했던 소개를 들은 것이 다였을 텐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친화력이 갑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날 만난 많은 사람들의 sns를 팔로우했었다더라.) 뭐, 나쁘지 않았다. 사실 신기하고 반가웠다. 나도 낯가리는 성격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던 시절이라 다가오는 그녀가 싫지 않았다. 우린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한창 관심을 가지던 영어회화의 본좌였다. 한국말을 아주 한국인처럼 해서 잊고 있었지만 그녀는 외국인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내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언어를 좋아한다. 내게 외국어를 외국인처럼 하는 것은 아주 멋지고 폼 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군대에 있을 때 영어나 배워볼까 했다. 마침 군대에서 나가는 교회에서 알게 된 형이 있는데, 미국에 10년 정도 살다가 온 형이었다. 그렇게 1년 조금 안되게 주일마다 그 형에게 영어를 배웠고 이제는 그녀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정해진 시간에 정기적으로 컴퓨터를 이용할 상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 메신저로 영어를 배우다가. 한 번씩 통화도 하고. 점점 소통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더딘 영어 학습의 진도와는 다르게.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다. 내 영어 실력을 뛰어넘는 다른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점점 영어에서 한국말로, 가르침과 배움보다는 사생활. 그러니까 군생활과 학교에서 겪은 힘듦이나 자잘한 웃음거리가 있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우린 서로에게 위로가 돼 가고 있었다. 군생활의 활력소였고 타국 생활의 안식처였다. 그렇게 내 다음 휴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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