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Oct 10. 2019

이 세상에 별 남자 없고(2)

별 여자를 기다린다.

휴가는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 교회 사람 한 사람을 불러 셋이서 밥을 먹었고(차라리 둘이서 먹었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더 빨리 친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주일에 교회에서 한번 더 봤다. 그리고 다시 내가 머물러야 하는 자리로 돌아갔다. 얼굴을 맞대지 않고 목소리와 문자로만 나누었던 편안한 대화들.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그때의 편안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 어색함은 우리 사이에 꼭 치러야 할 인사와 같은 필수불가결의 절차였다.


그녀와의 만남은 소개팅과 같은. 연인으로써 이 사람이 어떨지를 알기 위한 만남이 아니었다. 그런 미묘함이 그 공간 안에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었겠지만, 그저 어떤 새로운 모임과 만남이 좋고 설레는 사람 두 명이 만났을 뿐이다. 그래. 애초에 우린 연애할 생각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서로가 그 상대여서는 안됐다. 나는 약 1년을 군대에 더 머물러야 했고, 그녀는 약 1년 뒤에 캐나다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복귀를 한 뒤 우리 관계는 더 가까워졌다. 제한된 공간과 방법 안에서 우린 더 많은 시간을 서로에게 투자했고, 무엇보다 재밌었다. 내 이야기를 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통화하는 시간이나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녀의 고백을 듣고 나서야 내가 느낀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아마 시작은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애써 감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이날이 외로움의 특사로 감정이 출소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이후에 있었던 휴가는 대부분 그녀와 보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알바 구하기가 힘든 것은 매한가지라, 휴가 때도 일을 했었다. 일하고 자는 시간 말고는 그녀와 만나 차도 마시고 드라이브도 가고. 지금 생각해보면 데이트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난 몰랐다. 아니 거부하고 있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나의 상황을 인지했고 무엇보다 과거의 아픔들이 감정을 거부하고 있었다. 난 그때까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늘 짝사랑이었고, 용기 내어 도전한 결과는 거절. 거절당한 기억밖에 없었다. 그래서 앞이 뻔한 이 만남도 분명 상처만 남을 또 하나의 거절로 이어질까 두려워 몸은 함께하고 있지만 마음은 주지 않으리라-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거절의 역사는, 그녀와 보낸 세 번째 휴가의 마지막 날. 부대 복귀가 아쉬워 그녀를 불러낸 그날 저녁. 불러내서는 아무 말도 않던 내가 답답했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의 고백과 함께 끝이 났다.




우린 만남이 힘들었던 만큼 더 열심히 연애했다. 만날 시간도 없는데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별할 날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싫었다. 그러나 우린 특별했던 시작과 다르게 누구보다 보통의 이별을 맞이했다. 이번 연애가 서로에게 첫 연애였다. 이십대 초반의 우리는 서툴렀다. 서툴렀기에 다들 겪는 남자와 여자의 다름에서 오는. 또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살아온 인생이 달라 겪는 갈등을 매끄럽게 넘어가지 못했다. 이해하지만 이해하는 방법이 서툴렀다. 연애를 시작할 때의 호기로운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점점 돌아서고 있었다. 내 인생 하나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 나인데. 책임지지 못할, 그녀가 일군, 외국인으로서 살아온 그녀의 삶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약 없는 미래가 나를 그녀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기보다 포기하는 것을 택하게 했다. 마무리마저 서툴렀던 나는 그녀의 어떤 의견보다 스스로 내린 결정에 동의해주기만 바라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내 첫 연애는 끝이 났다.



그 후로 8년 정도 지났으려나. 지인을 통해 간간히 그녀의 소식을 멀리서 듣는다. 나는 그 사이에 몇 번의 연애를 더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코 그때와 특별히 다른 연애가 없었다. 그땐 어렸으니까. 첫 연애였으니까. 이 상황은 특별하니까. 저 상황은 저러니까. 이 모든 지난날의 두둔은, 명목만 바뀌었을 뿐 비슷한 이유로 나의 모든 연애에 찾아왔었다.

물론 연애하기에 더 좋은, 더 나은 상황들이 있다. 거리, 성격, 인성, 외모, 집안, 직업, 종교 등. 그리고 그 차이에 따라 더 나아지기도 하고 더 나빠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특별한 상황과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런 기대를 가지고 늘 나의 만남과 이별에 대해 엄마와 수다를 떨 때면 엄마는 항상 내게 말씀해 주신다. 세상에 별 남자 없고, 별 여자 없다고. 보통 남자와 보통 여자가 만나 서로에게 별 남자 별 여자가 되는 거라고.


지난날의 이별을 후회하진 않는다. 늘 생각하지만 만약은 하등에 쓸모없는 어떤 기분 좋은 망상일 뿐이니까. 그렇지만 조금 더 내가 무언가를 해 볼 수 있진 않았나- 과정에 대한 후회가 이따금씩 인다. 결과가 어떻든 분명 더 좋은 연애를 했을 텐데. 하고.

작가의 이전글 이 세상에 별 남자 없고(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