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쉬는 날. 이젠 쉬는 날이 자주 찾아오지 않아 황송하기까지 하다. 분명 이런 휴식에 황송해야 하는 것은 지금 상황이 그리 좋지 않고 사실은 상당히 우울한 상황임을 말해주지만, 휴식을 반가워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이는 것을 보아 아직 내 마음은 건강한가 보다. 다만 몸은 피로가 쌓였는지 축 처져서는 영 별로다.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할까 생각 중이다. 사실 이틀 전 새벽 6시에 일을 끝내고 엄마와 교대한 뒤. 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나오는 산책로를 따라 달리기를 했었다. 땀을 빼고 목욕탕에 앉아 몸을 불리니 피로가 조금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이제 매일 할까 보다. 가끔 비나 눈이 내리면(벌써 눈 내릴 것을 기대, 또는 걱정할 시기가 찾아왔다. 시간 참 빠르다) 하루쯤 쉬고. 쉬는 날인 기다려지려나? 여하튼 건강을 챙겨야겠다.
학교를 다닐 땐 건강을 위해 수영장을 다녔었다. 수영 레슨 중 첫 타임이 오전 6시였는데, 그 수업을 들었었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것이었고 운동을 좋아하는지라 재밌고 수업이 기다려졌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아침이면 이렇게까지 하면서 내가 지금 수영하러 가야 하나...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새벽같이 수영을 하고 아침부터 있는 비강제성의 동아리 활동을 잠깐 하고 친구와 아침을 먹고 수업에 들어가면 잤다. 아니 졸았다. 첫 두 달을 그렇게 졸고 나서야 체력이 좋아졌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꾸준한 운동을 했음에도 나빠진 건강을 되찾고 비교적 좋게 만드는 것에 꼬박 2달이 걸렸었다. 이제 30줄을 바라보는(누군가에겐 여전히 젊은 나이겠으나 분명 20대 초반과는 비교도 안되기에)이 시점에 그 '회복'. 나아가 '상승'을 기대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사실 좀 두렵기도 하다. 어쨌든 위기의 상황에 직면했음을 내 몸이 경고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이는. 그러니까 몸의 건강은 마음의 상태와도 연결되어 있다. 수많은 내장과 관절, 몸의 열과 근육의 상태가 위기임을 직감하게 한 것처럼 뇌에서도 휴식에 대한 사인을 보내오고 있었다. 조금은 쉬다와도 괜찮겠지. 그래서 알바가 도망가기 전에 냉큼 2박 4일의 서울 일정을 잡아버렸다. 사람도 만나고,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어쨌든 일로부터 멀어져 휴식을 취하기 위해 떠났다. 다만 이 짧은 시간을.
그러나 보시다시피 그 휴식 중에 글을 쓰고 있다. 밤을 새워서 일을 하고 낮 시간에 잠을 자는 사람은 내 주변에 없다. 밤에 자고 낮에 깨어 있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다 보니 억지로 잠을 버텨야 할 상황은 필연적으로 찾아왔고,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눈을 살짝 떠서 시계를 보니 아직도 새벽 4시밖에 되지 않았다. 다음날 있을 약속을 생각하니 이 거원 쉬러 와서 잠도 잘 못 자는 상황이 영 못마땅하지만 내가 스스로 잡은 약속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그래서 밤의 중간에. 아니 밤이 이제 막을 거두기 직전. 자신이 뽐낼 수 있는 가장 적막한 어둠을 발산하는 시간에 모니터를 바라보며 유난히 타자 소리가 시끄러운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쓰는 중이다(아, 지금 머물고 있는 집주인인 친구는 여행을 가서 딱히 시끄러운 타자 소리 때문에 미안해할 사람은 없다)
상경을 생각한 것은 책 때문이다. 나는 내 책이 여행이 선사한 선물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연락하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기 위해 왔고, 무엇보다 내 책을 보기 위해 왔다. 내 눈으로 책이 팔릴 때마다 올라가는 숫자를 보고 있었고, 어느 서점에 몇 권의 책이 있는지도 볼 수 있지만 내 책이 자리하는 공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점에서. 시위가 한창이라 가는 길이 북적이고 소란스러웠지만, 소개팅을 가는 마음이랄까, 또는 그 넓은 매장에 외로이 단 한권만 진열되어 외로움을 느낄 그 책을 만나는 동정이랄까. 만들어 냈지만 방치하고 있다는 마음에 이렇게 몸소 방문해주시는 내 마음을 그 책은 알까. 못나도 자식이라고, 자식사랑에 비교하기엔(물론 자식을 키워보진 않았지만 단지 받은 사랑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 발끝에도 못 미치겠지만 어쨌든 그 녀석의 서늘한 안부를 묻기 위해 이곳에 왔다. 가장 큰 목적이었으나 책과의 만남을 아주 짧고 간결했다.
검색을 하고- 일부러 검색해 놓은 창을 그대로 두고. 위치가 적힌 용지를 프린트한 뒤. 열심히 저기 구석자리에 가냘프게 다른 책에 기대 있는 책을 괜스레 꺼내어 한번 들춰보고는 벌써 작별인사를 했다. 잘 팔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정말이지 1도 먹지 않았었다. 출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찍어낸 책이었기에 그 외로운 자태로 인해 슬프다거나. 뭐 그런 비슷한 일련의 감정이 일지는 않았다. 다만 브런치에서 잘 나간다는 다른 작가의 책은 어떨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분명 나도 베스트셀러 작가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조금 더 괜찮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역시나 내 책과 마찬가지로. 책보다는 책을 꺼낸 자리에 더 많은 눈길이 갔다. 누구의 책이든 꺼내고 난 뒤 생긴 빈 공간은. 그 좁은 공간은 깨나 을씨년스럽구나. 잘 나가는 책들은 이곳저곳에 꼽혀있지 않고 놓여있었다. 한 권을 들어도 서너 권이 같은 모습으로 서로에게 포개어져 빈 공간이 없는, 외롭지 않은 느낌이랄까. 나도 이런 외롭지 않은 책을 쓸 수 있을까- 늘 하던 생각, 상상을 또 한다. 어쨌든 목표니까.
여러 책들을 들추어 보았다. 많은 책들을 한 장 남짓 읽다가 원래 자리에 놓았다. 책이 차지하는 공간이 대변하는 스타성(?)과는 다르게. 그 스타성이 책을 들추어 보는 행위를 유도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유명하다고 해서 다 좋은 책은 아닌 걸까. 아니면 그저 한 사람의 고객으로서 가진 좁디좁은 선호도의 차이일까. 당당히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 영 마음에 안 든다. 그렇지만 내가 독서를 아주 편향적으로 한다는 것을 가만하면, 사실 그저 내 눈에 들지 않았을 뿐,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좋은 책이기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겠지.
그냥 가기 아쉬워 하나의 책을 구매했다. 첫 문장을 읽고 나서 자리를 잡고 읽어야지 생각했고, 첫 문단을 읽고는 구매를 결정했다. 나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척, 아니 좋아하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잘 안된다. 그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 문장이 매끄럽고 매력 있는. 읽기 쉬운 책만 읽는다. 그래서 소설이 좋다. 물론 나는 산문을 주로 쓴다. 생각을 정리하며 나의 이야기를 쉽게, 때로는 알 수 없는 이상한 단어의 조합으로 글을 나열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쓸 때의 재미와는 다르게. 다른 누군가가 쓴 산문을 읽노라면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라며 덮어버린다. (이쯤 되면 나도 읽기 싫어하는 글을, 그보다 못한 실력으로 적어놓은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내가 고른 책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김초엽 작가의 책이다. 나도 작가라 하기에 어리지만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이 작가의 책은 '한국소설 베스트'에 당당히 '외롭지 않게' 진열되어 있었다. 프로필을 읽어보면 나와 마찬가지로 글과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어떤 인생이 이런 글을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어떤 글이든 그 글엔 작가의 많은 것이 묻어난다. 물론 글 자체가 나를 끌어당긴 것도 있지만 나이와. 무엇보다 내가 쓰고 싶은 단편소설을 썼다는 점에서 본받을 점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창작은 모방으로부터 시작된다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특히나 나의 사랑을 받게 된 이 책에서 어떤 좋은 느낌이 난다. 인생은 수많은 기회를 직면한다. 그리고 그 기회는 어떤 상황들이 부여한다. 나의 얼마 되지 않은 글쓰기 인생에도 변화의 순간들이 존재했고, 그 순간엔 언제나 글이 있었다. '난 어떤 책을 좋아하나'로부터 시작된, 단편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이 변화의 순간을 가져다 줄 작은 희망의 자락이라도 되는 듯 마음이 한결 좋다.
기분 좋은 만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