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더라, 서른은 시작하기 참 좋은 나이라고 그랬는데. 서른의 도전은 어설프지 않고 어쩌면 성숙해 보이기도 하고. 또 뭐더라. 누군가 책에서 읽은 것을 나에게 해 주었던 말이 책도, 말해 준 사람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 말만 어렴풋이 생각난다.
연말이 되면 다들 새로 산 다이어리를 만지작거리며 다가올 날들에 대한 새로운 계획과 다짐을 한다. 다이어트, 운동, 이직, 꿈, 결혼, 다른 수많은 버킷리스트들. 늘 올해보다 나은 미래를 그려본다. 그리고 다가올 날을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지나온 날을 돌아본다. 또 누군가에겐 생존 자체가 가장 큰 고민이기에 그다지 먼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도 있다. 미래는 그저 눈을 뜨면 또다시 살아가야 하는 하루에 불과한. 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는 어땠을까.
언제나 변화는 존재해 왔겠지만 2019년은 조금 더 가시적인 변화들이 있었다. 출간으로 작가로서 첫 한 발을 내디뎠다(출간할 것이라 계획도,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다음 행보가 전혀 그려지지 않지만). 허세 가득하던 취미나 어떤 도전들을 과감히 떨쳐내고 진짜 좋아하고 필요한 것에 집중하기도 했다. 가령 게임은 하등의 쓸모없는 인생의 낭비라 여겼는데, 취미로 인정했다던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만두었다던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방 안의 30만 원짜리 연습용 바이올린에 집착하기보다, 훨씬 편한. 줄이 뜰 대로 뜨고, 보일러도 틀지 않은 추운 창고에서 먼지만 쌓이던 통기타를 꺼내왔다던가. 몇 년째 신발장에서 꺼내보지도 못한 테니스화를, 여전히 그 자리에서 꺼내지 않기로 한 것과 같은.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의 연말은 새로운 도전보다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편하더라.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고. 해봄직한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하고,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고 싶은 것을 가려내는 것.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지 않는다고 누구도 나무라지 않을 나이. 새로운 도전 또는 제자리를 지키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충분히 생각을 했겠거니. 어련히 간섭당하지 않을 나이. 다만 동네 어르신들이 결혼 이야기 좀 그만 꺼냈으면 하는 나이. 서른은 그런 나인가 보다.
그래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서, 서른이라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가장 큰 변화라면 29에서 30으로 숫자가 바뀌었다는 것. 매년 올라가는 숫자지만 10년 동안 뒷자리가 바뀌어 왔다면, 올해는 특별히 앞자리가 바뀐다는 것. 글쓰기, 게임, 수학, 탁구를 여전히 좋아하고, 책 읽는 것, 드라마 보는 것, 가만히 카페에 앉아 수다 떠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친구들은 다들 늙었다고, 힘들다고 활동적인 것을 싫어하는 반면, 난 여전히 카페에 앉아 수다 떠는 것보다 활동적인 무언가를 하는 것이 좋다. 하다못해 그 자리에서 루미큐브라도. 그러고 보면 사실은 난 처음부터 그런 활동적인 여가를 좋아했고, 나와 친한 그들은 정적인 여가를 좋아했다. 또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삶의 많은 부분이 잘 맞지 않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내 친한 친구들이라는 것. 서른 즈음되면 다름을 다름으로 내버려 둔 체 만날 수 있는 정든 그들이 있다는 것도 참 큰 매력이다.
이렇게 저렇게 서른이 되면 좋은 것들, 서른이어서 할 수 있는 성숙한 경험과 생각들을 나열해 보지만, 사실은 다가올 익숙하지 않은 날들에 대한 위로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