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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03. 2020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있는데

인생은 정말이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서 가끔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까지 느낄 때가 있다. 아 물론 게을러서 그런 건 아니다. 원래 게으른 사람들 특징이 계획 하나는 잘 세우는 것이니까. 어쨌든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는 그 확률에 근거하기보다, 기대치가 클수록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저 일어나지 않을 바람에 불과할 뿐이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일이 정말 잘 안풀릴 땐 트루먼 쇼처럼 누군가 작정을 한 것처럼 내 계획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 일 수도 있고 ‘무엇’ 일 수도 있다. 진짜 일부러 나를 방해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또는 그 무엇은 나를 방해하는지도 모르고 나의 미래를 불완전하게 만들지만 혹 알고 방해를 하더라도 결국은 내 미래이기 때문에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책임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손해 보는 건 나니까.



책임이 무거워서, 너무 힘들어서 펑펑 울 때도 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슬프고 힘들게 했나 울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힘들고 슬프기보다 좋아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취업에 대한 고민 없이 졸업도 하기 전에 직장이 생겼고 생각보다 벌이가 안정적이고. 그럼에도 슬프고 힘들었던 이유를 찾아보자면 구속이다. 적당함을 넘어선 제약이 있기 때문에 힘들고 슬픈 것이다. 나는 게으르고 자유로운 사람이라서. 그래서 힘든 것이다. 게으르지만 잠자는 시간 말고는 종일 일을 해야 하니까. 새로운 경험과 만남, 상황을 즐기고 그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나지만, 같은 장소 같은 공간 같은 사람과 환경에서 무엇도 시도할 수 없는 상황이 슬픈 것이다. 나 말고도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에서 오는 절망. 또는 불안함. 그러다 돌이켜 보면.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챙기느라 저기 멀리 내팽개쳐진 내 인생을 발견한다. 그것이 슬프고 아프고 힘든 것이다. 나 말고도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고, 책임지려 하는 것. 그래 서른이면 이제 조심스럽게 어른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나이니까. 어른은 어쩌다, 억지로 되는 건가보다.



나에게 자유란 하루 종일 도서관, 서점에 박혀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른한 오후. 조금 더 나아가 내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유다. 재정이 여유롭다면 여행도 좋다. 책으로 읽는 것보다는 직접 경험하는 것이 좋으니. 언제쯤 하고 싶고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불확실은 내 삶이 없어서 할 수 있는 확신이다.

무겁고 힘든 이야기. 내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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