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May 29. 2020

조언은 하고 싶지만 꼰대는 되기 싫은 사람들에게

고작 30년 인생이 말하는 인생학

자고로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건 배움에 열망이 있는 사람을 세워 놓고 해야 하는 말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삶의 깊이가 깊어지고 경험이 쌓이며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라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지적하고 싶어 진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고 부담스럽지 않게 나의 이 위대하고도 주옥같은 말을 저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하사할 수 있을까? 어떤 상황이라야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나를 꼰대라고 생각하지 않게 잔소리할 수 있을까?


생각할 것은 ‘상황’과 ‘지위(地位)’다. 그 이야기를 하는 적합한 상황인지,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는 ‘좋은 말’을 할 만한 사람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학창 시절 들었던 교장선생님의 명언이 난무하는 훈화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문장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엄마가, 내가 여자 친구와 처음 헤어질 때 해 주셨던 ‘세상에 별 남자 없고 별 여자 없다’는 말은 연인과 이별을 생각할 때마다 떠올랐다.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에, ‘존경하는 사람’이, 헤어진 ‘상황’에서 해 주었던 말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땡볕에 서서 듣는 관심에도 없는 교장선생님의 말보다 훨씬 마음속에 오래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묵언. 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모임, 단체, 회사, 부서가 망할 것 같다. 바로 그 생각이 꼰대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이런 경우는 착한 꼰대에 속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나쁜 꼰대는 방법이 없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삶과 어떤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서, 자랑하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담과 별로 유용해 보이지도 않는 노하우를 알려주곤 한다. 말하기 앞서 이게 정말 순전히 지적 질 하고자 하는 대상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내가 돋보이기 위해서 하는 말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 우리는 착한 꼰대라는 가정 하에 생각을 조금 더 해보자.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상황이라는 것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인데, 내가 조언을 하기 위해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문제를 만든다? 있지도 않은 문제를 문제 삼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그게 나쁜 꼰대다. 상황에 처한 사람이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 그건 문제가 아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나이 서른 먹고 결혼도 하지 않은 것을 문제로 느낄 수 있지만, 당사자인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문제가 발생했지만 당사자의 경험이 부족해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문제의 답을 바로 이야기해주기보다 문제를 자각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런 말이 있다.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는 말. 조금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바로 문제의 답을 알려주는 것보다 훨씬 귀찮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 그 사람과 단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말이다. 그걸 원해서 간섭하고 조언하려는 것 아닌가? 이것이 상황에 대한 이해다. 실제 있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회사나 우리 부서의 존망이 걸린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처럼 급한 것이 아니라면 기다려 주는 것. 기다려 주는 것 까지가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다음 생각해야 하는 일은 지위를 갖추는 것이다. 사실 이건 당신의 살아온 삶을 대변하기 때문에 그제야 준비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눈에 문제가 보이고 당사자도 인식하고 있는데 나에게 묻지 않는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그에 관한 조언을 해 줄 만한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가 아니었을 수도 있고, 좋은 선배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완벽하게 논리 정연한 지적을 해도 듣는 사람은 반신반의할 수 있다. 백날 천날 말해도 듣는 사람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다. 그런데 지위에 맞는 자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씨알이 안 먹히는 때도 있다.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에게 부모님과 선생님이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그들에겐 잔소리일 뿐이다. 그것은 내 지위나 자격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상황이 맞지 않아서도 아니다. 이런 경우는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답을 알려주는 것보다 기다려주는 것이 그들에게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사람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 실수는 나쁜 게 아니다. 말이 실수지 그게 경험이고 세월이다. 실수를 예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만사 누가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보고 살 수 있겠는가?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스스로 깨닫게 해 주는 것이 꼰대가 되어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말하지 않아도 삶을 통해 배우는 것일 테니까.


말이 길었지만 사실 누굴 위해 잔소리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내가 답답해서’, ‘내가 돋보이기 위해서’, ‘내가 아니면 이런 말 할 사람이 없어서’, ‘전통과 위계질서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이 전해주고자 하는 인생의 고귀한 진리와 기가 막힌 노하우는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당신을 꼰대로 만들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끝맺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