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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22. 2021

편의점의 모든 것#3

(재)계약이 관한 이야기 첫 번째

장사는 이렇게 잘 되나 싶을 정도로 잘 됐다. 옆집이 망하고 이 근방 상권은 우리 가게와 농협이 다였다. 다른 곳은 차로 10분 정도 가야 나오는 큰 마트들이었고 그나마 경쟁상대인 작은 농협마트는 6시가 채 되기 전에 마감을 했으니 약 2년 동안 정말로 돈을 쓸어 모았다. 가게에서 10-20분 정도면 아주 멋진 계곡이 있었고, 해마다 그 계곡 중 한 곳에서 국제연극제를 했다. 여름 매출은 평소 매출의 두배를 기록했고 명절에는 고향을 방문하는 손님들로 일 매출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이 작은 시골에서 그만한 매출을 올리고 있으니 CU사장님이 궁금했나 보다. 방문하시겠다고 날짜를 잡았다. 5-6명의 스태프가 와서 우리 점포를 청소하고 꾸며놓았다. 물론 다른 스케줄 때문에 방문 계획은 취소됐지만 그 정도로 장사가 잘 되던 때였다.


그때 나는 대학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어머니가 혼자 재계약을 진행하셨는데, 장사가 잘 되고 있던 터라 별 무리 없이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들어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확히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엄마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적인 상황은 기억한다. 우리가 내 걸었던 조건을 100, 가 CU내 걸었던 조건을 0이라고 하면 처음엔 100 이상의 것을 들어주겠다 약속했다. 그게 재계약 8개월 정도 전의 일이다. 하지만 6개월에 걸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점점 조건을 낮추었고 결국에는 처음에 에서CU 말했던 0의 수준이 아니면 재계약을 하지 못한다고 통보해왔다. 어머니는 어렵게 재계약을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조건을 변경하니, 계약 담당자가 점포에 올 때마다 엄마는 무척이나 스트레스받아하셨다. 처음에 CU와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와는 말이 끝난 상태였다. 뒤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엄마는 0의 조건을, 반쯤 포기하며 계약을 하자고 하셨다. 하지만 끝에는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100의 조건이 아니면 다른 브랜드를 다시 알아볼 것이라 통보했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 어머니는 이것저것 알아보셨다. 처음 계약할 당시 우리는 빚만 잔뜩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건물임에도 회사에 임차권을 넘겨주는 형태로 당장 드는 돈 없이 계약을 했었다. 로열티로 처음에 드는 비용을 추가해 감가상각해 나갔다. 재계약을 할 때 이 임차권을 돌려주는 것에 가장 큰 난색을 표했었다. CU계약 담당자는 부사장님이 임차권을 회사에 주지 않는다면 재계약도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며 반쯤 협박을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몇 건의 우편 발송을 통해 임차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른 브랜드로 옮겨야겠다고 알아보던 중 당시 계약 담당자는 극적으로 부사장님을 설득했다며 처음 우리가 제시했던 조건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더 이상의 구두계약은 없다고 했고 서면으로 된 계약서를 가져오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다시 5년이 지났고, 지난 11월 다시 CU와 재계약을 했다. 매출은 전과 같진 않았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었다. 길 건너편엔 60평 규모의 개인이 운영하는 마트가 생겼고 메르스, 코로나, 국제연극제 협회와 행정부 간의 갈등으로 30년 동안 이어왔던 연극제는 몇 년 동안 열리지 않았다. 여름 매출이 줄어들어 연 매출이 반 이상 줄었다. 하지만 약 2년 동안 바짝 올랐던 매출이 어느 정도 줄었을 뿐이었다. 여전히 엄마와 나 둘이서 먹고 살기에는 괜찮은 수입이었다. 재계약에 있어 이 부분은 여전히 우리에게 강점이었다. 왜냐하면 재계약 시즌엔 다른 브랜드에서 연락이 오는데, 계약의 방향이 더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 점포의 경우엔 이마트에서 적극적으로 계약의 의지를 보였다.


재계약은 어렵지 않았다. 이마트 영업 담당자와 CU담장자가 제시하는 조건을 비교했다. 그리고 서로의 조건을 서로에게 알려주었다. 이 재계약에서 나와 엄마가 여유로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새로운 업종의 도전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때문이었다. 분명 업종 변경엔 리스크가 존재하지만 우리에겐 믿을만한 구석이 있었는데 바로 로또였다. 로또에 당첨된 게 아니라 로또를 팔고 있었다. 이미 로또 매출 만으로 나 하나 먹을 만큼의 인건비는 해결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업종을 변경해도 로또는 팔 수 있었기 때문에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길 건너 마트가 들어선 상황에서도, 코로나가 터지고도 매출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로또였다. 로또를 사면서 손님들은 이런저런 다른 물건들도 산다. 로또는 경기가 안 좋으면 안 좋아서 잘 팔리고, 좋으면 좋아서 잘 팔린다. 로또가 있다면 어떤 업종이든 손님이 매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한다. 이게 가장 큰 강점이었다. 이렇게 이마트, CU, 업종변경의 세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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