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약이 관한 이야기 두 번째
이마트는 cu가 제시하는 조건 이상의 것을 투자하지 않으려 했다. 딱 cu만큼만 투자하려고 했다. 그래서 굳이 다른 브랜드로 바꿀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이마트는 물류차가 하루에 한 번밖에 오지 않았다. cu는 현재 우리 점포에 하루에 3번 물류차가 온다. 이 전편(#3)에 언급했던 사항이니 생략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이마트는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cu는 직원들이 쓰는 회계 표를 보여주며 회사에서 투자할 수 있는 만큼 지원을 해 주겠다고 했다. 보통 편의점은 5-6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데, 10년 정도가 지나면 집기들의 내구도가 많이 떨어진다. 못쓰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오래될수록 전기세가 이전보다 많이 나오며 위생상태가 나빠진다. 직접 청소할 수 없는 곳에 곰팡이가 피거나 녹이 슬어버리고, 매년 여름에 방문하는 수억(과장이 아니다) 마리의 날벌레 사체가 집기들을 망가뜨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점포가 10년 정도 지난 후엔 집기를 바꿀 겸 리모델링을 한다고 한다. cu에서는 리모델링에 드는 비용은 회사에서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다만 로열티를 회사에서 조금 더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처음엔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의 로열티를 보여주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나는 리모델링의 양질을 요구하면서 지금 수준의 로열티를 가져가길 원했다. 하지만 회사는 (역시 당연한 소리지만) 리모델링은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으나 리모델링에 드는 비용만큼 회사에서 로열티로 제공받길 원했다. 그러면서 재무 표를 보여주었다. 그 표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겨를이 없으나 당시 회사에서는 내가 원하는 양질의 리모델링과 지금 수준의 로열티를 유지한다면 우리 점포에서 얻어가는 월 수익이 마이너스였다. 비밀이라며 엑셀을 보여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마냥 우길수 만은 없었다. 회사도 매출이 보장돼 있는 곳에 투자를 한다. 때문에 리모델링을 할 경우 회사에서 산정하는 예상 기대수익이 있다. 리모델링을 할 경우 대략 15-30퍼센트 정도 매출이 오른다는 통계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최저치인 15퍼센트 매출이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 회사가 가져가는 수익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벗어나는 기점으로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 제안이 아니라면 계약하지 않을 것이라 최후통첩을 날렸다.
대안이 없었다면 이렇게 계약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내가 다른 업종으로 변경하는 것이 리스크가 적고 해 볼만 한 시도라는 걸 인정하고 있었다. 단순히 기세와 깡으로 최후통첩을 날린 것이 아니다. 근거와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오버하지도 않았다. 우리 매장이 매출이 잘 나오는 점포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리한 요구를 할 만큼 회사에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듣기로는 (소문으로 들은 부분이라 사실이 아닐 수 있다) 매출이 높은 점포는 다른 브랜드에서 스카우트하기 위해 억 단위의 보상금도 제공한다고 들었다. 이런 소문을 듣고 자만하여 계약 조건을 제시했다면 아마 cu는 인근의 다른 지점에 새 점포를 개업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계약은 실전이지 도박판이 아니다. 내가 제시하는 조건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손해가 아니어야 하며, 내 입장에서는 얻을 수 있는 최대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두 곳 이상이면 좋다. 지난번 재계약처럼 아는 것이 적은 상태에서 회사의 말만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면 이 조건이 좋은 조건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 던지는 카더라 식의 정보가 아니라 실질적인 수치를 근거로 정보를 얻고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업종을 변경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이 부분은 폐업과 관련이 있다. 업종을 변경하는 것은 폐업을 하고 다시 다른 업종으로 창업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신경 쓰이는 부분은 비용이다. 첫 번째는 감가상각비용이다. 냉장고, 에어컨 등 집기들에 들어간 비용을 매년 벌어들이는 수익의 일부분으로 상각해 나간다. 대부분 5년 안에 상각이 완료되지만 혹시나 이 비용이 남았다면 지불하여야 한다. 우리 점포의 경우엔 없었다. 두 번째는 위약금이다. 창업이나 재계약을 할 때 로열티를 줄여 주거나 기타 다른 비용을 지원해주는 것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건물(임차)이나 다른 것을 담보로 제공을 한다. 계약기간이 남은 만큼 위약금을 내야 한다. 위약금은 연평균 매출에 따라 산정이 된다. 남아 있는 계약기간을 연 단위로 끊어, 매출액의 일정 퍼센티지를 지불해야 한다. 예를 들어 5년 계약에 21개월이 남았다고 하면, 2년인 24개월에 못 미치지만 2년으로 산정을 한다. 또 계약서에 위약금을 연 매출에 따른 순이익의 80퍼센트로 계약했다고 가정하면, 지난 1년간 매출을 기준으로 2년 치 순이익의 80퍼센트를 지불해야 한다. 당연히 장사가 잘 되는 곳일수록 위약금이 크기 마련이다. 계약이 만료됐다면 당연히 위약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 번째로 철거비다. 철거하는데 드는 용역비를 자기 부담해야 한다. 건물 크기에 따라 다르다. 우리 점포는 40평 규모인데 2-300만 원 정도가 나온다고 했다. 네 번째로 기타 비용이다. 이 부분은 돈을 더 내야 할 수도, 받을 수도 있다. 포괄적이라서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이다. 전산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회사에서 미지급한 금액이나 점포에서 회사에 미지급한 금액이 표시된다. 이 차액을 받거나 줘야 한다. 여섯 번째 상품비다. 이 부분은 평소 다른 점포와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폐업하고 남은 상품들을 다른 점포로 이관한다. 그리고 남은 상품은 본인이 처리해야 한다. cu는 상품을 주문할 때 선불로 결제하지 않는다. 상품이 팔리거나, 유통기한이 지나서 반품 또는 폐기할 때 지불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남아있는 상품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부분은 폐업이 결정됐다면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다. 매달 반품 한도가 있다. 한도만큼 잘 팔리지 않는 상품을 꾸준히 반품하고 날짜가 많이 남은 상품들은 미리미리 다른 점포로 이관을 해야 한다.
재계약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타사와 조건을 잘 비교해야 하고 점포 운영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폐업이나 업종 변경도 고려하면 좋다. 그럴 경우엔 시장조사도 해야 한다. 나는 약 1년 전부터 재계약 준비를 했다. 타사는 어떤 조건으로 운영하는지, 매출 대비 순 수익이 얼마인지, 폐업한다면 폐업에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업종 변경을 한다면 어떤 업종이 좋을지 가족과 충분히 상의를 하고 정보를 모았다. 시간이 촉박하면 마음도 급해지고 선택지도 줄어든다.
재계약은 업무가 충분히 할 만하고 만족스러울 때 할 생각이 든다. 사실 나에게 재계약은 없는 선택지였다. 출가나 업종변경만 두고 고민했었다. 다른 꿈이 있었고 장사는 나와 맞지 않았다. 고지식한 나는 융통성 있게 일하는 것이 어려웠다. 다음 이야기는 이런 편의점 운영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접객과 알바, 매장관리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