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객, 서비스에 대해
자영업. 내가 상품이라고 지정한 것을 팔아야 돈을 버는 일. 서비스나 공간, 제품을 제공하고 재화를 받는 것이다.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은 상품을 사는 손님이 있다는 이야기다. 한번 왔던 손님이 다음번에도 오게 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상품, 기분 좋은 서비스, 쾌적한 공간, 적당한 가격이 필요하다. 편의점은, 제품이나 가격이야 회사에서 잘 만들어 오고 가격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가 할 것이 별로 없다. 이 부분은 어떤 물건을 어디에 진열하는가에 대한 나의 능력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를 느끼기도 하는 부분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오늘의 주제인 서비스다. 다른 말로 하면 접객 말이다. 오늘은 서비스에 대한 노하우를 두 가지 정도 말해볼까 한다.
첫 번째로 말할 것은 자영업이라는 노동에 대한 이해다. 장사 돈은 개도 안 물어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장사하면서 버는 돈은, 골이 깊은 감정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라는 말이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은, 민주적이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며 어떤 인간도 마땅히 차별 없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 시대에 더 이상 통용되는 말이 아닌 것 같지만, 아직도 내가 사는 이 동네에는, 아니 어쩌면 훨씬 더 많은 곳에서 사람들은 갑의 입장으로 매장에 들어선다. 돈을 던지고 물건을 찾아오라 시키며 반말을 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처음에 나는 맞섰다. 나에게 내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인이 제공해야 할 서비스 이상의 것을 요구할 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무례한 행동과 언사는 그대로 돌려줬다. 막무가내식 행동과 폭행은 신고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끝이 없었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당연히 그들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단 한 명도(폭행으로 인한 형사사건 말고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경우는 없었다. 잘잘못을 따지자고 경찰을 부르는 그들이지만, 경찰이 ‘당신 잘못이오’라고 하면 경찰에게 욕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얻은 결론은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바뀌어야 할 사람은 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판매자가 을의 입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손님들은 때때로 갑이 되길 원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무슨 말이고 하니, 모든 손님이 갑의 입장으로 매장에 들어서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손님도 갑으로 대우해 주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갑이 되길 원하는 손님은 대우를 받아 좋고, 그렇지 않은 손님은 대우해 주니 좋은 것이다. 서비스업은 대게 그렇다. 제품의 서비스나 질이 아무리 좋아도 서비스가 좋지 않으면 재방문의 의사가 없어지는 업종이다. 편의점 운영은 제품의 질을 내가 결정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서비스의 질이다. 서비스로 승부해야 하는 업종이라는 것이다.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브랜드를 바꾸어야 할 부분이다. (손님의 무례함에 대한 스토리를 말하자면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떠들 수도 있다. 그런 이야기들이 재미는 있겠으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그런 손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에 자중하도록 하겠다.)
어머니는 아주 좋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악을 선으로 갚으셨고, 이것은 손님들이 다시 찾는 매장이 되게 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도를 넘는 언행을 허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머니는 나보다 그 허용의 범위가 넓었다. 돈을 던지는 손님에게 두 손으로 거스름돈을 드렸고, 물건을 가져오라는 손님에게 물건을 가져다주시며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으셨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손님에겐 대량으로 싼 마스크를 구매해 놓았다가 무료로 드렸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저 날씨를 피하기 위해 들어온 손님에겐 커피를 드렸다. 진흙이 잔뜩 묻은 발로 들어오는 손님이 나간 뒤에 잔뜩 찡그린 얼굴로 청소하는 나에게 발에서 떨어진 게 흙이 아니라 돈이라고 했다. 어머니와 나의 서비스가 차이 나는 이유는 책임감과 절실함의 차이였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어머니에게 ‘그까짓 것들’은 그리 어려운 일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게가 그저 꿈을 위해 잠시 거쳐가는 곳에 불과했던 나에게는 손님들의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다 불만이었다. 나는 본인을 깎아 가족을 지켜오신 어머니를 통해 장사를 배웠다. 그렇게 5년간 어머니의 넓은 등을 보며 장사를 배워야, 그제야 조금은 그 절실함을 배웠다. 결국 그 노력들은 나를 좋게 하는 것들이다. 내가 선택했고, 감당해야 할 부분의 노동이었다. 서비스를 상품으로 내놓았다면 무례함을 뒤집어쓸 각오를 해야 한다. SNS가 발달하면서 못된 매장이나 고객에 대해 이따금씩 보도된다. 여기서 자영업자들이 봐야 할 것은, 손님을 고발한다고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좋지 못한 서비스를 제공한 매장’이라고 알려지면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이다. 하지만 반대로 좋은 서비스, 선행을 한 매장이라고 알려지면 ‘돈쭐 좀 나야 한다’며 손님이 끊이지 않는 매장이 된다. 자영업으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창업했다면 나를 깎는 서비스는 필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영업이라는 직업군의 노동을 이해는 결국 손놈들의 무례함을 참는 감정노동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 노하우는 이런 감정노동을 잘 참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감정노동도 전략이 필요하다. 어머니는 이것을 세월을 통해 이해하고 배워오셨지만, 이제 막 서비스업에 들어선 초짜인 나에겐 다른 이해가 필요했다. 그 이해는 다름 아닌 손님에 대한 이해, 다른 말로 무시였다. 우리 점포의 주 고객층은 일용직 근로자분들이다. 대부분 행동이나 표현이 거칠고 막힘이 없다. 그들은 무거운 것을 들고 옮기고 던지고 나르다 보니, 돈을 내면서 본인도 모르게 던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게 돈을 던지는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되는가를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가 대답이 되겠지만, 장사를 하는 입장이라면 그 정도의 이해는 필요하다고 말하겠다. 당연하게도 이런 이해에는 막연한 추측이나 상황에 대한 가정이 필요하다. 돈을 던지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싸한 이유를 가졌을 리 없다. 오자마자 인상을 쓰며 짜증을 내는 손님이, 사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접촉사고가 났기 때문에 나에게 온몸으로 짜증을 표현하는 것을 내가 알 겨를이 없다. 그들이 오늘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이 나에게 무례하게 굴 이유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장사를 하는 입장이라면 일일이 그런 상황에 반응하기보다 그러려니 흘려보내는 것이 필요하는 이야기다. 막연하게 흘려보내기보다 이런저런 상황이 있었겠거니 생각하면 이해(무시)가 한결 편하다. 혹시나 마음의 여유가 조금 더 있다면 “오늘 날씨가 참 덥죠?”라며 대화의 물꼬를 터보자. 그들의 불편함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높은 확률로 단골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아주 사소한 인권까지 모두 챙겨야겠어!' 라는 마음이라면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자영업과 맞지 않다고. 그런 마음이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니지만, 자영업을 하고 서비스를 상품으로 내놓았다면 어느정도 내려 놓을 필요가 있다.
이처럼 마음의 여유는 언제나 모든 상황을 고려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경험을 쌓아도 여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다음 이야기는 주인의 여유를 쥐락펴락 하는 알바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