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소맨:레제편을 보았다

물, 불, 꽃으로 쓰인 친밀함의 불가능성

by 새솔

시골 쥐가 좋아, 아니면 도시 쥐?


레제는 소년 덴지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은 단순한 취향 조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면을 쓴 채 상대의 진짜 모습을 탐색하는, 사랑에 빠진 모든 이들이 던지는 첫 번째 시험지였다. 우리는 모두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조금씩 거짓말을 한다. 더 나은 사람인 척, 더 재미있는 사람인 척, 때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척까지. 진짜 나를 보여주기엔 너무 무섭고, 가면을 쓰고 있자니 너무 외롭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사랑이 얼마나 복잡하고 위험한 감정인지 깨닫는다. 레제와 덴지의 이야기를 보며 우리가 느끼는 것은 단순한 안타까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고, 진정한 친밀함이 가져오는 공포에 대한 인식이다.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는 이 불편한 진실을 물과 불과 꽃이라는 세 가지 원소를 통해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마치 고전 신화처럼, 이 세 가지 상징은 레제와 덴지의 사랑이 태어나고 꽃피우고 소멸하는 전 과정을 관통하며, 우리에게 사랑의 본질에 대한 쓸쓸한 진실을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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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최초의 교실


전화박스의 빗물


이야기는 비와 함께 시작된다. 전화박스에 갇힌 두 사람을 둘러싼 빗방울들은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이들의 운명을 예고하는 전령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지만 동시에 익사의 위험을 품고 있듯, 레제와 덴지의 만남 역시 구원과 파멸의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


전화박스라는 투명한 감옥 안에서 두 사람은 외부 세계로부터 일시적으로 격리된다. 유리벽은 그들을 보호하지만 동시에 가둔다. 레제가 건네는 미소와 덴지가 선물하는 꽃은 이 투명한 경계 안에서만 가능한 순수함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안다. 이 투명함 자체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를.


빗소리는 두 사람만의 친밀한 공간을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바깥세상의 존재를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똑똑,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은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려주는 시계 소리다. 후지모토는 이 첫 장면에서 이미 물이라는 상징을 통해 사랑의 양가성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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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레슨


레제가 덴지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장면들에서 물의 상징성은 더욱 복합적으로 전개된다. 수영장의 푸른 물은 양수와 같다. 두 사람은 이 원시적 공간에서 가장 무방비한 상태로 서로에게 의지한다. 레제의 손이 덴지의 몸을 받쳐주는 순간, 그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최소가 된다.


하지만 이 친밀함은 동시에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다. 물속에서 덴지는 레제에게 완전히 의존한다. 그녀가 손을 놓는 순간 그는 가라앉을 것이다. 이는 사랑 관계의 근본적 불안을 시각화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우리의 생명을 맡기는 것이다.


레제가 가르치는 것은 단순한 수영 기술이 아니라 생존법이다. 그녀의 가르침은 수영에 관한 것이면서 동시에 사랑에 관한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통제를 포기하고 상대방을 신뢰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신뢰가 우리를 가장 취약하게 만든다.


물은 또한 정화와 재생의 상징이다. 덴지는 레제와 함께 물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그는 사랑에 대한 가능성을 배운다. 하지만 이 배움의 과정에는 항상 익사의 위험이 따라다닌다.


바다의 침묵


격렬한 전투 후 바다에 추락한 두 사람은 물속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낸다. 이 장면에서 물은 소음과 폭력으로부터의 도피처가 된다. 수중의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가면을 벗고 서로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 평화는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 의식을 잃고 가라앉는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암시한다. 물속에서 그들은 마침내 진정한 친밀함에 도달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는 지속될 수 없는 순간이다.


해변에서 깨어난 후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물가에서 이루어진다. 파도 소리는 그들의 말을 지우고 또 지운다. 마치 바다가 이들의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듯이. 레제가 떠나는 순간, 바다는 그들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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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 파괴와 창조, 사랑과 폭력의 동일성


안전핀


레제의 목에 걸린 안전핀은 이 작품에서 가장 잔혹한 아이러니를 구현한다. 일반적으로 안전핀은 보호와 안전을 의미하지만, 레제에게 그것은 자기 파괴의 스위치다. 그녀가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자신을 폭발시켜야 한다.


이 역설은 현대인의 정체성 문제를 극단적으로 형상화한다. 사회적 자아와 진정한 자아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클 때, 우리는 때로 기존의 자신을 완전히 파괴해야만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느낀다. 레제의 변신은 단순한 파워업이 아니라 존재론적 고백이다.


안전핀을 뽑는 행위는 또한 자해의 은유이기도 하다.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때로 스스로를 해치는 것처럼, 레제는 자신의 고통을 물리적 폭발로 외재화한다. 그녀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 내면의 고통이 가시적 형태를 얻는다.


불꽃놀이


불꽃놀이 키스 장면에서 불의 상징성은 절정에 달한다. 하늘을 수놓는 불꽃들은 사랑의 황홀감을 시각화하지만, 동시에 그 순간적 특성을 강조한다. 불꽃은 태어나는 순간 소멸하기 시작한다. 아름다움과 파괴가 하나의 현상 안에 공존한다.


이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에서 아델과 엠마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두 여성의 사랑이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순간들-그 길고 격렬한 침실 장면들-이 동시에 그들을 가장 취약하게 만드는 순간들이기도 했던 것처럼. 사랑의 절정은 언제나 파괴의 전조다. 완전한 합일을 꿈꾸는 순간, 우리는 개별성을 잃을 위험에 처한다.


레제와 덴지의 키스는 이 불꽃놀이와 정확히 동기화된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는 순간과 하늘에서 불꽃이 터지는 순간이 일치하면서, 사랑과 폭발이 하나의 행위가 된다. 후지모토는 이를 통해 사랑 자체가 일종의 폭발임을, 두 존재가 충돌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폭발은 동시에 파괴이기도 하다. 레제가 덴지의 혀를 절단하는 순간, 불꽃놀이의 찬란함은 피의 붉은색과 뒤섞인다. 사랑의 절정이 곧 폭력의 절정이 되는 이 순간에서, 우리는 친밀함의 가장 어두운 면을 목격한다. 앞서 언급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아델이 엠마를 속이고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 장면이 그들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 직후에 배치된 것처럼, 배신은 언제나 신뢰의 절정에서 일어난다.


불꽃놀이는 축제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전쟁의 상징이기도 하다. 화약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화약이 만들어내는 파괴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레제와 덴지의 사랑 역시 그렇다. 그들이 서로에게 주는 기쁨과 고통은 같은 근원에서 나온다.


폭발의 연쇄


레제가 폭탄 악마로 변신한 후 벌어지는 연쇄 폭발들은 그녀의 내면 상태를 외부 세계에 투사한 것이다. 도시 곳곳에서 터지는 폭발들은 단순한 액션 시퀀스가 아니라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절망적 표현이다.


말로 전달할 수 없는 감정들이 폭발이라는 원시적 언어로 번역된다. 레제는 덴지에게 자신의 진심을 말로 설명할 수 없기에 폭발로 보여준다. 그녀의 모든 폭발은 "나를 이해해달라"는 무언의 외침이다.


하지만 폭발은 소통의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파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그 메시지를 받을 수신자까지 파괴해버린다. 레제의 폭발들은 그녀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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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꽃: 아름다움의 취약성과 기억의 물질화


전화박스의 꽃


덴지가 레제에게 건네는 첫 번째 꽃은 이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 중 하나다. 그 꽃은 덴지의 순수한 호의를 대표하지만, 동시에 그 순수함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꽃은 아름답지만 쉽게 시든다. 사랑의 감정과 닮아 있다.


레제가 그 꽃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의 계획에 균열이 생긴다. 임무 수행을 위해 접근한 그녀가 예상치 못한 선물에 당황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성이 가진 파괴적 힘을 본다. 가장 작은 친절이 가장 큰 방어막을 무너뜨린다.


그 꽃은 또한 약속의 상징이기도 하다. 덴지가 꽃을 건네는 행위는 '나는 너에게 아름다운 것을 주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꽃을 주는 것은 동시에 그것이 언젠가 시들 것임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카페의 꽃다발


레제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덴지가 꽃다발을 씹어 먹는 행위는 이 작품의 모든 상징이 수렴하는 지점이다. 아름다운 것을 파괴하고 삼키는 이 그로테스크한 행위는 상실에 대한 가장 원시적이고 절망적인 반응이다.


꽃을 씹는다는 것은 여러 층위의 의미를 갖는다. 첫째, 그것은 기억의 물질화다. 덴지는 레제와의 추억을 물리적으로 자신의 몸 안에 간직하려 한다. 둘째,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사라져버린 사랑의 흔적들을 파괴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행위가 일종의 성찬례라는 점이다. 종교적 의식에서 신자들이 빵과 포도주를 나누듯, 덴지는 꽃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임으로써 레제와의 신성한 결합을 시도한다. 비록 그녀는 없지만, 그들이 함께 나눈 순간들은 이제 그의 피와 살이 된다.


꽃의 쓴맛은 사랑의 쓴맛이다. 달콤했던 기억들도 상실의 렌즈를 통해 보면 쓰라린 것이 된다. 하지만 덴지는 그 쓴맛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꽃의 변주들


서사 전반에 걸쳐 꽃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다. 처음에는 순수한 선물이었던 꽃이, 점차 약속의 증표가 되고, 마지막에는 상실의 증거가 된다. 이 변화 과정에서 꽃이라는 상징의 다층적 의미가 드러난다.


레제가 역에서 덴지가 준 꽃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돌리는 장면에서, 꽃은 회개와 구원의 상징이 된다. 그 작은 기억이 그녀의 마음을 돌려세운 것이다. 하지만 이 희망의 순간은 곧 좌절된다.


마키마에 의해 레제가 죽임을 당할 때, 그녀가 마지막으로 떠올리는 것은 덴지와 함께한 평범한 순간들이다. 그 기억들 속에는 항상 꽃이 있다. 그녀가 덴지와 함께 만났던 꽃들은 그녀에게는 모두 잃어버린 낙원의 증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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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간의 상징학: 경계와 이행의 미로


전화박스에서 카페까지


레제와 덴지의 사랑은 특정한 공간들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각각의 공간은 그들의 관계 단계를 상징할 뿐 아니라, 그 관계의 한계를 규정한다.


전화박스는 가장 사적인 공간이다. 외부와 차단된 이곳에서 두 사람은 순수한 만남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 공간의 투명성은 그들의 취약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유리벽은 보호막이면서 동시에 감옥이다.


수영장은 보다 개방된 공간이지만, 여전히 제한적이다. 물이라는 경계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고, 이 경계 안에서만 그들의 친밀함이 가능하다. 물 밖으로 나가는 순간, 현실의 규칙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학교는 사회제도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정상적인 학생의 역할을 연기한다. 하지만 이 연기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교실에 침입한 암살자는 사회가 그들의 평범함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카페는 약속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배신의 공간이다. 공적이면서 사적인 이 애매한 장소에서 덴지는 홀로 기다린다. 레제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지만, 덴지는 그 사실을 모른다. 카페의 의자들과 테이블들은 그의 고독을 더욱 부각시킨다.


경계선의 의미학


후지모토는 공간을 구획하는 경계선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전화박스의 유리벽, 수영장의 물, 학교의 벽, 카페의 창문. 이 모든 경계들은 두 사람의 사랑이 처한 한계를 시각화한다.


가장 중요한 경계는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다. 레제는 이미 죽은 자(악마)이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자(인간)다. 덴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사랑은 이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벼랑 끝에서의 키스 장면은 이 경계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죽음의 가장자리에서 사랑을 나눈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추락할 수 있는 그 위태로운 지점에서, 그들의 사랑은 완성되고 동시에 파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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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순환 구조: 처음과 끝이 만나는 지점


비에서 시작해서 눈물로 끝나는 이야기


레제의 이야기는 완벽한 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 비 내리는 전화박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카페 앞에서 그녀가 흘리는 피와 눈물로 끝난다. 물이라는 공통 요소가 시작과 끝을 연결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역전된다.


처음의 비는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촉매였다. 같은 공간에 갇힌 그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의 눈물은 완전한 분리를 의미한다. 덴지는 혼자 기다리고, 레제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이 순환 구조는 사랑의 본질적 특성을 드러낸다. 모든 사랑은 만남으로 시작해서 이별로 끝난다. 문제는 그 사이에 무엇을 남기느냐다. 레제와 덴지의 경우, 그들이 남긴 것은 상처와 기억이다.


꽃의 순환


꽃의 여정 역시 순환적이다. 덴지가 레제에게 준 첫 번째 꽃은 순수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덴지가 씹어 먹는 꽃다발은 일종의 제물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아름다운 것을 희생시킨다.


이 순환은 사랑의 변질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었던 행위들이, 나중에는 자신의 고통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사랑의 순수성은 점차 이기심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이 변질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덴지가 꽃을 씹어 먹는 행위는 그로테스크하지만, 동시에 숭고하다. 그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인다. 이는 성숙한 사랑의 한 형태다.


약속의 순환


"도망가자"라는 레제의 제안에서 시작된 약속은 카페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레제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덴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사랑의 불완전성을 상징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외부의 힘들, 운명, 혹은 우리 자신의 변화가 그 약속을 방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은 약속도 의미가 있다. 그것은 적어도 한 순간 두 사람이 같은 미래를 꿈꾸었다는 증거다. 레제가 마지막에 덴지에게 돌아가려 했다는 사실은, 그 약속이 그녀에게 실재했음을 보여준다.


불완전한 사랑의 아름다움


카페에서 꽃을 씹어 먹는 덴지의 모습으로 돌아가 보자. 그 장면은 절망적이지만 동시에 희망적이다. 그는 상실을 받아들이되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다. 꽃을 삼키는 것은 기억을 몸 안에 간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레제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수용이다. 완벽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랑에는 오해와 기만이 섞여 있고, 모든 친밀함에는 폭력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더욱 소중하다.


물과 불과 꽃으로 쓰인 이 이야기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레제이고 덴지다. 진정한 자신을 숨기며 사랑받으려 애쓰고,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해하려 노력한다.


비 내리는 전화박스에서 시작된 사랑이 카페의 쓴 꽃잎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사랑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동시에 사랑의 필요성을 긍정한다. 우리는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누군가와 만날 것이고, 배신당할 것을 알면서도 다시 신뢰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불완전하고, 위험하고, 때로는 파괴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 레제와 덴지가 남긴 것은 상처였지만, 그 상처는 그들이 진정으로 서로를 만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수영장에서 나눈 평범한 대화들, 학교에서 함께 웃던 오후들이 결국 그들을 영원히 연결시킨 것처럼.


물에서 시작해서 불로 절정에 달하고 꽃으로 끝나는 이 사랑의 연금술은, 우리에게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솔직한 답변을 준다. 사랑은 변화다. 처음의 순수함이 복잡함으로, 복잡함이 다시 단순함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덴지가 마지막에 씹어 먹은 꽃잎들은 이제 그의 피와 살이 되어 평생 그와 함께할 것이다. 레제는 죽었지만, 그녀가 그에게 가르친 것들-사랑하는 법, 상처받는 법,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는 법-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것이 레제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긴 선물이다.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냉혹한 진실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용기를 잃지 않는 인간에 대한 찬가. 비 내리는 어느 날, 전화박스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렇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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