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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꺼풀 오이씨 Nov 08. 2023

그 때와 지금. 다르게 보기

같은 상황을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기


 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과거형으로 표현 한 것은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명에는 '중증' 이라는 단어가 있었었는데, 중증에 해당되는 증상이 1년 넘게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 과거라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저를 진찰하실 때 물으셨던 몇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업무 외에 아주 편하게 만나는 사람들이 있나요?'  '운동을 하시나요?' '휴식은 충분히 취하시나요?' '경제적 상황은 좋으신가요?' '햇빛을 많이 쬐시나요?' '본인을 챙기시나요?' 등등

 여러 질문에 나의 대답은 거의 '아니요' 였었다.

 지금도 '아니요' 가 많이 남아 있지만 '에' 로 바뀐 것들도 있습니다.


그간 직업이 바뀌어 꿀벌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도치않게 운동처럼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되었고, 양봉장이 실외에 있으니 햇빛을 정말 많이 쬡니다. 일 때문에 만나기도 하지만 같이 일하는 팀장님과 일을 할 때면 온갖 이야기를 다합니다. 이 정도가 바뀐 나의 일상인데 이 정도도 아주 크게 도움이 되나 봅니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대답도 있습니다. 

 일이 바빠, 아이들을 돌보느라 충분한 휴식은 어렵습니다. 늘 시간에 쫓기니 저를 챙기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상황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모든 통장을 다 합쳐서 10만원이 채 안되는 돈이 있을 뿐입니다.


 제일 힘든 것은 아무래도 경제적인 상황이 어려운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빠 마이쭈 사주세요', '아빠 말랑카우 먹으면 안되요?' '아빠 오늘은 피자 먹고 싶은데...... 안되지?' 등등의 말을 들을 때 마다 최대한 따뜻하게 대해 주려고 하지만 마음에서 느껴지는 시림 때문에 표정은 무뚝뚝해지고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제가 조금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예전에 증상이 강했을 때는 쉽게 마지막을 생각하거나, 한없이 더 깊은 바닥으로 내려갔습니다. 끝없이 울기도 하고, 한숨이 멈추지 않고, 서러워 울고 죽을 생각만 했었습니다. 

 어떤 때는 아내와 심하게 싸우고 나서 마지막 시도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릅니다. 그냥 부러 우울한 생각이 들어올 자리에 다른 생각을 채웁니다. 요즘은 마음을 힘들게 하는 생각들이 떠오르면 '나는 현명하고 겸손한 부자다.' 라는 말을 주문처럼 읇조립니다.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마음에 자리를 이 말들로 먼저 채우려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많이 좋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나갑니다. 


 일은 여전히 잘 안 풀리지만, 안 풀려도, 나중에 내 삶 전체를 돌아볼 시간이 주어질 때 오늘을 바라보고 '저 때 최선을 다했구나.'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달라졌음을 좀 더 명확히 느낀건, 이 글을 쓰기 직전의 명상에서 였습니다.

 명상 속에서 저는 어떤 거대한 회색 물체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 물체가 무언인지 궁금해서 천천히 그 물체를 가운데 두고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돌아보며 가다가 만난 어떤 사람. 그 사람은 바닥에 주저앉아 두 무릎 사이에 자기 얼굴을 파묻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 힘들겠다.' 이런 말을 속으로 하는데 제 마음이 아프고 저려왔습니다. 그 사람을 가만히 보니 

그 사람은 저였습니다. 

슬픈 사람. 슬펐던 나. 바라보는 나. 


같은 사람인데 반응이 다르고 서 있는 위치가 달랐습니다.

그걸보며 제가 좀 달라졌구나 느꼈습니다.


 제가 무었때문에 달라졌는지는 알아봐야겠지만, 여튼 지금은 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무엇때문에 달라졌는지 알아보고싶은 마음보다는 달라졌으니 더 다르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난 후 기운이 더 많이 생기면 다른 이들에게 한 마디라도 위로의 말을 건내주고 싶어 무엇때문에 달라졌는지 알아내고 싶습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우울증을 앓아 온 소아우울증 환자입니다. (완전히 였었습니다. 로 바뀌고 싶은 마음이 강합니다. ) 그리고 지금은 성인 우울증 환자입니다. (이것도 떼고 싶은 명칭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증세가 없습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마음이 힘든 분들 모두 저처럼 좀 좋아지길 바랍니다. 바뀐다고 달라지나? 라고 생각하시는 거 압니다. 만 달라져요. 많이 달라져요. 

 많이 힘든 분들. 힘드시겠지만 점퍼 하나 걸치고 그냥 터덜 터덜 동네 한 바퀴 돌아보세요. 아니면 제일 쉽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걸 아무거나 해 보세요. 제가 그랬어요. 저도 그랬어요. 저보다 더 존귀한 분들이시니까 더 좋은 시간 누리셔야 해요. 부탁이에요.

 기도할께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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