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출산했던 2013년,
2022년 지금도 조리원은 천국일까?
내가 산후조리원을 고를 때 가장 고려한 것이 '식사 후기'였다. 그 당시 대학병원을 제치고 선택하는 꽤 유명한 동네 산부인과였다.
심지어 확장공사까지 해서 로비가 운동장처럼 넓고 깨끗했다. 그리고 밥이 맛있다고 소문난 곳이다.
주부가 되면 누가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지 않은가?
정말 5대 영양소를 탄탄하게 채운 육해 진미 밥상이었다.
얼마나 밥이 맛있는지 뒤돌아서면 다음 밥이 생각날 정도였다.
나는 18시간 동안 진통을 꼬박하고 제왕 절개 수술을 했다. 억울했다. 팡팡 걸어 다니는 엄마들이 부러웠다.
걷지도 못하는 나를 마사지실로 끌고 가 회복을 앞당겼다.
안 나오는 젖을 쥐어짜느라 움츠리고 있었고
초유가 팡팡 나오는 엄마들을 또 부러워했다.
잘못 건드리면 부서질 것만 같은 아이 목욕시키는 것을 배우고,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통째로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조리원에 적응되어 심심하고, 집에 갈 생각에 불안할 때쯤
흑백 모빌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나섰다.
혹시, 내가 엄마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흑백 모빌을 언제까지 보여줘야 하는지도 모를 만큼
엄마로서 백지상태였다.
모빌 만드는 것과 아이의 발달과정을 들으면서
엄마의 역할을 생각하게 하였다.
서툰 엄마의 모빌을 바라 볼 아이의 똘똘한 눈을 기대하며 베이비 전집을 단숨에 샀다.
회복은 느리지, 젖도 안 나오지, 나의 엄마로서의 출발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듯했다. 조급해져 왔다.
그렇게 아이와 신명 나게 책을 끼고 살았던 몇 개월 보냈다.
아이가 두 돌 때쯤 되었을까?
두 번째 들였던 자연관찰 책은 무려 6개월이나 장식품으로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조리원에서 불타던 그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 나를 툭 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산후우울증이 나에게는 좀 늦게 찾아온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무엇을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아이를 뒤로하고 멍~ 하게 한동안 있었다. 아이를 위해 하기 싫은 것도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회로가 엉킨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보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추던 내 삶이 바뀐 것이다.
다시 자연관찰 책을 들여다보며 자연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님이 하신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알면 사랑한다"
안다. 사랑한다.라는 말은 익숙해서 지나치는 말이기도 한데 엄마가 된 후 깊은 뜻으로 다가왔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때부터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산책 나가는 것이 즐거웠고 책에서 봐왔던 꽃과 나비를 직접 보는 것이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래!! 자연이 자유롭게 숨 쉬는 것처럼
아이도 그렇게 키우는 거야!라고 다짐했다.
얼마 전 오리가족에게 돌을 던져 죽인 10대 형제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기사를 봤다.
"호기심 때문에 그랬다"는 진술이 전해져서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어쩌면 그 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악착같지 찾아보지 않아서 생각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건 아닐까?
최재천 공부 중에서 이런 문구가 나온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악착같이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고속도로 같은 길이 눈앞에 보입니다.
'이거다!' 싶으면 그때 전력으로 내달리면 됩니다.
그래 맞아!! 전력으로 달리고 싶을 때가
바로, 천국의 맛! 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