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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Oct 30. 2020

떡볶이에 떡이 빠진다면 그건 떡볶이일까 아닐까

정답은 오뎅 많은 떡볶이



떡볶이를 시킬 때면 꼭 덧붙이는 요청 사항이 있다. 단무지는 괜찮다고, 리뷰 이벤트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모든 말을 적고 싶어도 배달의 민족에 들어가는 주문 사항은 60자 밖에 적지 못하니 가장 중요한 두 문장만 남기는 식이다.

어묵을 더 많이 주세요.

떡은 비엔나로 바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60자가 꽉 차서 느낌표조차 적지 못한다. 주문이 들어가면 대략 2분 내로 전화가 걸려온다. 황당한 주문을 받은 사장님이다.

“저기, 그러면 떡볶이에 떡이 하나도 안 들어가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최대한 의연한 말투를 꺼내 담담하게 대답한다. 그러면 독특하고 확실한 취향을 지닌 멋쟁이가 된 듯한 기분에 휩싸여서다.

“네.”

그렇게 간결한 대화를 주고받은 뒤 만들어진 한 그릇의 떡볶이는 완숙된 계란과 커다랗고 판판한 어묵과 좁고 기다란 어묵, 채 끊기지 못해 가볍게 이어진 비엔나가 고추장 소스에 절여진 모습으로 문 앞에 도착한다. 포장지에 붙여진 영수증에는 긴 요청 사항과 비교되게 간결한 이름으로 메뉴가 붙여져 있다. 일인용 떡볶이. 나는 떡이 빠진 떡볶이를 먹으며 생각한다. 이건 떡볶이 일까, 아니면 오뎅볶이일까.


요즘엔 나처럼 떡보다 오뎅을 선호하는 오뎅파들도 늘어나서 오뎅볶이라는 말도 생겼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므로 그저 오뎅이 많이 들어간 떡볶이라고 부른다. 경험으로 보건대, 그쪽이 상대방과 내가 같은 음식을 상상하게 하는 설명이다.

떡이 빠져도 떡볶이라 불리는 내가 되고 싶다. 오뎅이라는 친구가 떡을 장악해버려도, 결국은 '떡 대신 오뎅이 더 많이 들어간 떡볶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것처럼. 언젠가 얼굴과 이름이 바뀐 나를 그려본다. 함부로 말을 걸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고 센 언니처럼 보이는 인상. 제시 같은 고양이상에 가슴골이 파인 의상을 입고 리사라는 이름이 붙여진. 지금 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더라도 모두가 나로 불러줬으면 좋겠다. 상대의 말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 어두침침해 보이는 소재에서도 밝은 면을 꺼내 유머로 승화하는 말재간을 가진 이. 겉으로는 금발에 고양이상을 지닌 리사처럼 보여도, 결론은 나인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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