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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un 22. 2021

나와 친한 빛 찾기 프로젝트


  이십 년을 살며 혼자 비행기를 탄 건 처음이었다. 언뜻 보면 홀로 해외여행이라도 가나 싶겠지만, 평생을 살던 섬에서 섬 밖으로 나가는, 그러니까 제주에서 서울로 가는 경로였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한참이나 창밖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해가 저무는 시간에 타서 그런지 기내가 천천히 어두워졌다. 서울과 가까워질 때가 되자 그토록 깜깜하던 밖이 색색의 조명으로 환해졌다. 인간관계를 다룬 책들을 꼭 안은 채 저 많은 빛 중 몇 가지의 빛과 꼭 친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인생에서 끝까지 남는 친구는 어릴 적의 추억을 함께 나눈 고등학교 친구라던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진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는 셈이었다. 내 학창 시절은 열등감과 이기심을 빼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지독했다. 반 친구들은 모두 내신을 가로채는 경쟁자처럼 보였고, 인간관계보다 소중한 건 커리어라고 굳게 믿었기에 열아홉의 나는 고향에 친구 한 명을 두지 않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는데 축하받을 친구가 없었다. 그때 처음 사람의 중요성을 알았다. 나는 누굴 위해 이토록 애를 썼나,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는 누가 와줄까, 하는 고민이 줄줄이 달려오자 창밖으로 보이는 빛에서 친한 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렇게 서울에 가서는 쑥스러움을 숨기고 모르는 사람에게 응원한다는 편지를 썼고, 친구에게는 바랄 것 없이 진심을 담은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설령 그들마저 경쟁자로 보일 때면 얼른 책을 덮고 입을 열었다. 비행기에서 홀로 조명을 눈에 담던 그 풍경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서. ‘내 것과 네 것을 나누지 않기’, ‘준 마음을 그대로 받겠다며 친절을 베푼 점을 따로 적어두지 않기’처럼 사소하지만 잊어버리기 쉬운 지침을 직접 정해 따랐다. 그러자 서울뿐만 아니라 김해, 전주, 부산, 대구처럼 지역 곳곳에 친구들이 생겼다. 


  물론 인생의 가치를 하루아침에 바꾸자니 어려웠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었고,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이 되고 싶었으므로 그 꿈을 지우고 곁의 친구들을 사적으로 챙기는 건 효율적인 시간을 계산하며 조급해하는 습관을 놓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드라마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대사, “저 많은 빛 중 내 집은 어디 있을까?”를 “저 많은 빛 중 내가 이름을 아는 빛은 어디 있을까?”로 해석하던 순간은 내 인생을 단번에 바꾸어버린 장면이었다. 


  잦아들 기미 없는 코로나로 인해 직장과 집을 접고 제주로 돌아왔다. 여기는 당연히 친구가 없다. 그래선지 스마트폰을 끄고 방에 앉아 있을 때면 이 세상에 내가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착각이 든다. 그간 제주의 친구에게 보였던 안 좋은 성격 때문에 육지처럼 내 과거를 지우고 지인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인간관계를 다룬 숱한 책을 읽고 직접 부딪치며 사람과 친해졌듯 여기서도 다정함을 베풀며 사람을 사귈 수 있겠지. 어릴 적의 친구들을 수소문해 용서를 빌지는 못해도, 내일은 버스를 타며 버스 기사님께 감사의 말을 커다랗게 전할 수는 있겠다. 혹은 자주 가는 브런치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이 번거롭지 않게 접시를 가져다 드릴 수 있겠지. 


  인생의 기로를 바꿀만한 커다란 전환점은 대단하게 오는 줄 알았지만, 비행기를 탔던 스물의 나처럼 모두가 잠든 적막한 고요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거였다. 나 또한 눈을 감은 채 깊은 잠을 잤더라면 영영 몰랐을 전환점. 이후 나는 고독을 반긴다. 다소 외로울 수 있는 정적에서 어제의 나는 어땠는지, 작년의 나에 비해 오늘의 나는 어떤 점이 나아졌는지 곰곰 고민한다. 어쩌면 익숙한 길을 걷거나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일 때,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는 와중에 갑자기 인생을 바꿀 큰 전환점을 만날 수 있다. 오늘 새벽에는 산책을 하던 중 차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부리나케 뛰어가는 족제비를 발견했다. 족제비가 차도를 달리지 않고 느리게 걸어도 아무도 신기해하거나 놀라지 않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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