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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Sep 19. 2021

행복의 뜻


  잠시 들른 서울에서 지인과 행복에 관해 토론을 했다. "요즘 너의 행복은 무엇이냐"는 진부한 질문 말고, 어쩌면 우리는 완전한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닮은 상술에 속아 넘어간 게 아니냐는 얘기였다. 아이패드만 있으면 행복해져요, 자기 전 켤 수 있는 향초만 있으면 행복해져요, 꿈을 이루면 행복해져요, 돈을 많이 벌고 집이 커지면 행복해져요, 명예를 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해져요, 라는 마법의 주문에 속아 없는 행복을 좇기 위해 순간을 희생한 것 같았다.


  목표를 향해 나아감과 동시에 순간순간의 행복을 누렸다고 자신했건만 꿈을 이뤄도 따라오는 감정은 같았으며 허무했다. 무기력하고 슬프고 아프고 외로운 감정은 꿈을 잡았다고 해서, 집이 커졌다고 해서,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았다.


  태어남과 동시에 고통이 시작된다. 마음도 몸도 조금만 다치면 아프고, 원하지 않아도 생명체는 죽음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간다. 물론 살며 행복한 순간도 여럿 있으나 아픈 순간도 그만큼이나 여럿 있다. 바늘구멍보다 좁은 일자리와 공모전에 들어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번 튕겨나가는 사람이 있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것도 성장이며 경험이라지만 자양분이 되었다 해서 그날의 아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행복을 찾는다. 와인부터 맥주까지, 내가 좋아하는 주종을 찾고 그 안에서도 생맥주와 병맥주, 에일과 라거를 고른다. 취향이 세밀해질수록 만족도가 높아지니 행복에 더 가까워진다. 바다를 좋아하는지 숲을 좋아하는지 알수록 힘든 세상에서 숨을 고를 장소가 생긴다.


  대화를 나눈 지인과 나는 그토록 원하던 강연을 하고 있으며 스피치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이십 대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받고 대학 과정을 끝내 학위를 얻었다. 흔히 성공이라 여기는 척도와 우리가 원하는 행복의 척도를 골고루 섞어 방도 꾸미고 밥도 잘 먹고 지인도 잘 챙기면서 원하는 자리까지 왔는데 생각보다 행복이 오래가지 않았다. 조금 바보 같은 말이지만, 꿈만 이루면 '행복한 사람'이라는 궤도에 오를 줄 알았다. 우리는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해피엔딩으로 결말날 줄 알았다.


  자기를 계발하는 건 닌텐도나 아이패드를 사는 일과 다를 줄 알았으나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물건을 사는 것보다는 기쁨이 조금 더 오래가기는 했지만 그렇게 오래가지도 않았다. 슬픔과 아픔은 여전히 우리 곁을 지켰다. 이렇게 노력하면 더 따라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내가 더 잘할 테니 이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고 그들을 떨어뜨리려 해도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제야 영원한 행복은 애초에 없음을 알았다. 이미 우리 빼고 모두 아는 사실일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이제야 알았다.


  불로초를 구해 먹는대도 사람이라면 영원히 살 수 없으니 삶이 귀하다. 천년만년 사는 게 아니어서 빗방울에 눈이 가고 친구의 얼굴에 눈이 간다. 이런 시선으로 행복을 바라보니 작은 행복도 소중했다. 아니, 커다란 행복과 조그만 행복을 따지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무례한 사람에게 다치고 미래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더라도 예전처럼 슬프지 않았다. 애정하는 노래 한 곡을 트는 일도 충분히 오늘 어치의 행복함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서다. 원래의 나라면 음악 한 곡 틀고 진정한 행복을 위해 배달 앱을 뒤지거나 완벽한 산책 장소를 찾거나 인상 깊은 문장이 열 줄은 꼭 나와야만 하는 책과 훌륭한 영화를 찾으며 더 거대하고 기다란 행복을 찾아 헤맸을 거다.


  행복을 포기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자는 말은 아니고, 오늘 어치의 행복이 찾아오지 않아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잠깐의 스트레칭도 행복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무언가에 몰입한 경험도 행복이다. 불행은 꼭 찾지 않아도 된다. 이미 많기 때문이다. 걸어 다니면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불행이 찾아온대도 크게 놀라지 않는 쪽을 고른다. 불행은 걸어 다니면서 발에 치이는 돌만큼이나 많다. 그러니 발에 치이는 불행 말고 치이지 않는 행복을 쪼그려 앉아 고르는 편이 기분 좋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만족감은 없으니 잠깐의 만족감을 느끼는 일도 충분히 가치 있다. 쟤는 커다란 행복인데 나는 커다란 행복이 아니네, 하고 슬퍼할 필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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