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요아 Jan 18. 2022

아슬한
집들이


  한 달 남짓 되지 않은 올해와 작년을 합쳐 무려 여섯 번의 절교를 했다.


  한 번 맞닿은 인연은 크나큰 상처를 받지만 않으면 오래 이어나가겠다는 소신으로 임하는데, 크나큰 상처를 여섯 번이나 받았다. 한 명에게 실수를 바로잡을 세 번의 기회를 주었으니 자잘한 상처까지 합치면 총 열여덟 번의 상처를 받은 셈이다. 사연을 하나씩 털어두고 싶지만 뒤에서 말하는 악담으로 변질될 게 뻔해 입 안으로 삼켰다. 이번 절교를 기점으로 사람 자체와 멀어지고 싶다는 판단이 섰다. 애초에 기대를 품지 않으면 실망할 일이 없을 테니 더는 내밀한 감정을 열어젖히지 않겠다는 다짐이 섰다. 퇴근하자마자 술집에 들어가 홀로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마셨다는 표현보다 들이켰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한때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을 만큼 술 없이는 못 살았던 적이 있어 홀로 마시는 일만큼은 반드시 피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아침에 여섯 번째의 절교를 마치고 나니 그토록 허무할 수 없어 이성의 끈을 놓았다.


  다 식은 감자튀김에 탄산 빠진 맥주는 먹기 싫어 꿋꿋하게 재즈가 흐르는 멋진 스페인 집에 들어섰다. 예약석으로 꽉 찬 테이블을 지나 구석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앉아 크림 감바스를 주문했다. 적당히 소란스러운 술집에서 혼자 술을 음미하면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기분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음미가 아니라 들이키는 수준의 속도로 마셔서 오히려 더욱 초조해졌다. 이럴 때 동네 친구와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잔을 부딪히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데, 하니 누군가가 떠올랐다. 제주에서 두 어달 살이를 계획하고 내려온 친구였다. 술김에 연락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너무나 외로워서 연락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아 메시지를 적었다. 외로움을 지인에게 풀지 말자고 그토록 다짐했건만 이번 다짐 역시 빠르게 흩어졌다.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겠다는 다짐, 외로움을 지인들에게 풀지 말자는 다짐, 술의 맛을 느낄 새 없이 분노와 회한으로 가득 찬 술잔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겠다는 다짐이 술과 함께 한꺼번에 넘어갔다.


  친구는 보고 싶다는 메시지에 다정한 답장을 보내며 늦은 저녁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내 쪽으로 오겠다고 얘기했다. 늦은 저녁 뜬금없이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아준 것만으로 고마운데, 한 시간 걸리는 우리 집까지 와준다는 말에 나는 이성을 차리지 않고 마냥 좋다고 답했다. 답장을 보내고 난 뒤에서야 집의 상태를 복기해냈다. 회사에서의 일과 원고 마감과 좁아질 기미 없는 감정의 폭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나는 심리에 걸맞은 방의 상태를 만들어냈다. 양념이 묻은 그릇은 쌓였고 수건은 축축하고 옷은 이곳저곳에 널브러졌다. 쓰레기통은 비운 지 오래였고 화장실은 제때 청소를 하지 않아 물때가 가득했다.


  글은 정갈하게 쓰자고 노력하면서 방 하나 정돈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들킬 수 없다며 밤중에 소리를 지르며 쓸고 닦았다. 가스비를 아끼는 방안이 청소라는 걸 뒤늦게 알 정도로 금세 후끈해졌다. 이 주 어치의 쓰레기가 한 시간 만에 종량제 봉투에 들어갔다. 분리수거까지 하기에는 촉박해서 신발장 안에 쓰레기봉투를 욱여넣었다. 친구에게는 절대 신발장과 옷장과 냉장고를 열어서는 안 된다고 일렀다. 그중 무언가라도 여는 순간 정체불명의 물건과 음식이 쏟아져 흐르는 장면이 펼쳐지는 장관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그건 돈을 받더라도 봐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발을 잘못 딛다간 열릴 것 같은 냉장고와 옷장과 신발장을 노려보며 타일렀다. 너희, 절대 나와서는 안 돼.


  캔들 워머를 켜고 앉은자리에서 친구와 나는 서로의 장점과 아픈 관계를 대하는 방식과 가지고 싶은 물품과 마흔 살에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싶은 기대 어린 상상과 프리랜서의 막막함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조울증이 심각해진 뒤로 기억력이 깜빡거려 아쉽게 모든 내용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한마디만큼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너는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과거에 쓰인 너의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 너는 이런 사람이야, 너는 그런 성격과 습관이 있잖아, 너는 원래 그런 애잖아, 라 나를 하나의 정체로 단정 짓던 말만 듣다가 처음으로 개인적인 내가 보기에 지금의 너는 다른 모습일 수 있지만 과거의 모습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메시지에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말에 지긋지긋하다고 외치던 내가 사람에게 치유를 받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가뿐하게 일어날 동안에도 다행히 냉장고와 옷장과 신발장은 세상 구경을 하지 않았다. 나오지만 않으면 분명 다행이라 여겼으면서 고요하고 잔잔한 안정된 순간에서조차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대비하는 습관이 올라와 이렇게 잘 맞는 친구와 나중에 또 인연이 끊어지면 그때는 얼마나 슬프고 외로울까, 라는 걱정이 찾아왔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받는다기에 정말 신기하게 그리 치유를 받았는데, 지금 내게 치유를 준 사람과 훗날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연이 끊어진다면 그때는 또 다른 결의 죄책감이 몰려올 것 같았다.


  아아,

  그만.


  가만 두면 먼 미래로 쉴 새 없이 날아가는 걱정을 이쪽으로 끄집어 신발장을 열었다. 엉망진창으로 쌓인 쓰레기봉투를 두 손에 들고 밖을 나섰다. "나는 널 위해 온 게 아니야. 너희 집에 온 건 나를 위해서이기도 해." 친구의 말을 입 안으로 굴리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다. 신발장 안에는 신발이, 옷장 안에는 옷이, 내 마음 안에는 우정과 사랑이 나란히 들어와야 한다. 사랑과 우정이 천천히 들어올 수 있을 틈을 만든다. 아직은 눈을 자주 깜빡여야 보일 만큼 조그맣지만 점차 커지리라는 마음이 든다. 아냐, 이런 굳건한 예감은 확신이라 표현하는 쪽이 더 정확하다.


작가의 이전글 괜찮지 않은 게 아니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