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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an 30. 2022

이쯤 오면 됐다는
묘비명


건강을 알뜰하게 챙김과 동시에 살뜰하게 챙기지 않는다. 체력에는 걷기가 최고라며 넓은 보폭으로 빠르게 한 시간을 내리 걸으면서 절대 같이 먹으면 안 된다던 술과 약물을 동시에 삼킨다.


최근 들어 술자리가 잦았다. 좋아하는 친구가 제주에 내려와 나를 찾는다는 사실에 행복해 연거푸 들이부었고 일하는 미술관의 계약 기간이 끝나가서 기쁜 마음에 한 잔을 더 시켰고 동생 친구들이 기일을 맞아 제주까지 내려와 꽃을 놓은 사진을 찍어 보내서 씁쓸한 마음에 두 어 잔을 더 마셨다. 왜 약과 술을 같이 먹지 말아야 하는지 의학적인 이유를 모르는 나는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술을 덜 시켰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잊고 약을 먹기 이전처럼 술을 들이켠다. 때로는 속이 쓰리고 아프고 위가 상하는 기분이 들고 머리가 아프지만 미련을 억지로 만드는 요즘처럼 공허해 자꾸 잔을 비우는 나를 발견한다.


온라인에 수필을 공개한 지 어느덧 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어도 기꺼이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 덕분에 오늘까지 살 수 있었다. 조그만 나의 사소한 생각을 궁금해하고 문체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사람들과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상상은 나를 덜 외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해서 연이 끝나기로 약속된 생을 의학 기술로 연장시키면서까지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설명을 채 듣지 않고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와 장기 기증에 별다른 고민 없이 서명을 한 이유와도 비슷하다. 언젠가 떠날 수 있으니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이 내 묘비에 이런 글자를 세워주기를 바라며 뜬금없이 묘비명을 적는다. 이쯤 와주시면 됐어요, 돌아가셔서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사세요. 묘비명은 언제 세워질까. 서른이 되기 전 세워질 수 있고 아흔이 넘어 세워질 수도 있겠다. 가끔은 술과 약을 동시에 먹음으로써 어쩌면 수명이 조금 더 짧아질지 모른다는 직감이 드는데, 그럼에도 개의치 않다는 마음 때문에 단번에 끊기 어렵다.


친구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순간이 있다. 잠에 드는 순간이다. 잠은 누군가 대신 꿔줄 수도 없고 손을 잡고 함께 눕는대도 잠으로 가는 여정까지 따라와 줄 수 없다. 요즘따라 나는 그 사실이 뼈저리게 두려워서 술을 마신다. 혼자 소주 세 병을 마셔도 필름이 끊긴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기억을 잃었다. 통화 기록에는 전 연인을 포함한 타지의 친구들에게 한 시간씩 전화를 건 흔적이 있어 뒤늦게 부랴부랴 미안하다는 연락을 보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어떤 점이 미안하다고 얘기할 수 없어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 는 게 아니라 술을 마시면 쓸데없는 연락을 하는 주정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핸드폰을 꺼놓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요즘 고민은 무엇이냐는 친구에게 설핏 솔직함을 내보일 용기가 생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바라던 성공 궤도에 다다르는 것 같은데 허무하다고, 삶에 애착이 생겨나니 홀로 차가운 영안실에 안치되는 것이 두렵다고. 나아가 짧은 죽음이라 부를 수 있는 잠이라는 녀석이 두려워 잠에 드는 순간 함께 손을 잡아줄 연인을 찾아 헤매는 중이라는 얘기였다. 어떤 친구는 그 외로움에 잡아먹히는 일이 지긋지긋하고 무서워서 보지 않는 드라마를 켜고 그들의 대사를 들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암시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 방법을 따라 했으나 영화와 드라마 주인공들은 화면 안의 인물만 상대로 여겨서 그들끼리 대화하니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없어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외로움을 느끼는 나를 귀여워하기 위해 왼손으로 연필을 잡고서 삐뚤빼뚤하게 '난 혼자가 아니야!'라는 문장을 써보기도 했으나 위기를 넘기는 건 그때뿐이었다. 다음 날이면 다시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고 징징대는 글을 올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답이 정해진 위로를 받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술을 마시고 잠에 드는 날이 셀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오늘은 어떨 것 같아?"


따뜻한 볕을 맞으며 빈티지 옷가게부터 조그만 독립 책방까지 촘촘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가 조심스레 물었다. 즐거웠고 다음에 또 행복하게 만나자는 얘기만 해도 충분한데 나는 저무는 해에 맞춰 떠오르는 두려움에 져서 솔직한 속내를 보였다. "있잖아, 낮에 만들어진 즐거운 기억이 오래가서 잠들기 전까지 다다르는 사람이 있느냐 하면 나는 그 괴리에 지는 사람이더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함을 느끼는 크기가 클수록 헤어진 뒤 혼자 남은 헛헛함이 거대하게 느껴져서 밤에 슬퍼하는 이상한 사람이 나였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혹시 외로우면 말해. 같이 갈게." 같이 가준다는 곳이 우리 집이라는 뜻이었겠지만 나는 다른 쪽으로 해석이 되었다. 잠으로. 홀로 들어서야 하는 무섭고 고독한 잠으로. 잤다 하면 악몽을 꾸는 두려운 세계로.


인간의 몸을 가진 탓에 물론 같이 잠까지 걸어가 줄 수는 없겠으나 늦은 밤 막차를 놓치고 집까지 함께 가주겠다는 친구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한 나는 뜬금없이 나의 묘비명을 되짚었다. 이쯤 오면 됐으니 너의 삶을 살라는 차가운 문구는, 사실 오래 같이 있어달라 밝히기 부끄러워 차마 뒤로 숨겨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여기는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라 외롭고 무서우니 내가 좋아하는 네가 나를 잊지 않고 오래도록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감춘 이야기가 아니었나. 영국에 있다는 외로움 장관처럼 나의 외로움을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친구의 말에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답한 뒤 한동안 만날 수 없던 덜 외로운 밤을 맞이했다. 내가 같이 가줄게. 내가 함께 있을게. 말을 새기며 잠에 들었다. 땀에 젖지 않고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에 눈을 뜰만큼 수면을 취했다. 물론 센 척에 쿨한 척하는 버릇은 쉽게 접을 수 없어 아직도 묘비명은 바꿀 뜻이 없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 친한 친구 몇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주 와줘. 그리고 덧붙이는 말. 나도 자주 갈게. 네가 이쯤이면 됐다는 냉기 어린 묘비명을 남긴대도.


술을 줄여야겠다. 술의 힘을 빌려 쓴 문구는 진심의 반에 반밖에 전해지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나는 알코올이 건네는 용기 없이 오글거리는 진심을 전하는 진짜 진짜 멋진 사람이고 싶으니까. 애정으로 북적거려야 할 설 연휴에 가시 돋친 말을 더하는 가족에게 고통받거나 고독하다 느껴지는 밤을 보낼 친구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그러므로. 그러니 내게 닿은 친구의 다정을 빌려 당신에게 그 말을 베푼다.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기분 좋은 꿈으로 같이 가요. 술이요? 안 마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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