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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Feb 22. 2022

재능을 감각하는 조건


이제 막 그림을 시작한 친구에게 재능에 대해 골치 아파본 적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친구의 질문에 깃든 뉘앙스를 살펴보니 나는 재능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을 거라는 느낌이 묻어 나왔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지 한참을 머뭇거리다 마음에 고인 말을 꺼내지 않으면 과거의 나처럼 계속해서 재능에 대해 고민만 하다 속절없이 시간을 보낼 것 같은 친구가 걱정되어 입을 열었다. "책상에 앉기 전에는 적어도 열 번은 고심하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말이야." 친구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 친구를 바라보다가 말을 더했다. "앉는 순간 그냥 쓰는 거야. 재능이 있는지 뜯어볼 시간이 없거든. 어차피 내 마음에 드는 재능은 써야만 검증받을 수 있는 거니까."


재능에 대해 오래 고민하던 때에는 내게 주어진 애매한 재능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재능이라는 거, 차라리 없었으면 욕심조차 부리지 않았을 텐데 글쓰기 대회에 나가면 꼬박꼬박 장려상을 받아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장려의 뜻은 좋은 일에 힘쓰도록 북돋아준다는 얘기고, 면밀하게 뜯어보면 아직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좋은 일이 나오기까지 열심히 노력하라는 의미처럼 들렸다. 진짜배기 재능을 품은 사람은 굳이 나처럼 재능을 고민하랴 작디작은 재능을 키우기 위해 시간을 들이랴 할 필요 없을 텐데 나는 쉴 때면 이 길을 걸어도 되는지 궁리했고 눈물을 흘리며 내 안의 창의성을 뽑아내 글로 펼쳤다. 그렇게 펼쳐진 글이 인정받으면 참 좋으련만 대차게 욕을 먹었다. 절필이라는 단어에 든 뜻을 그대로 물리적으로 펜을 부러뜨리고 이 년간 글을 그만뒀다.


부당해고를 당하고 번아웃에 시달리면서, 쉬고 싶은데 아르바이트라도 하라는 사람들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때부터 글을 썼고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 매번 같은 단어로 문장을 엮는 기분이 들고 더하지 말라는 부사로 문단을 완성하는 느낌이 든다. 사고의 결점은 눈에 띄고 이번 글은 대중의 공감은커녕 비난을 받을 것 같은 확신에 휩싸인다. 그래도 쓴다. 쓰는 쪽이 쓰지 않는 쪽보다 덜 고통스러워서다. 생활에서 발견한 경험을 가공하고 글로 잇는 작업을 꾸준히 하니 재능의 유무를 고민하는 빈도가 확실히 줄었다. 재능을 찾는 쪽보다 글감을 찾는 쪽이 장기적으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골몰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아서일지 모르겠다.


어느 날은 내가 갖고 싶은 재능을 단어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고 세세하게 나열해보았다. 가지고 싶은 재능은 이런 거였다. 하루에도 몇 개의 글감을 채집하는 것,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개의 단어를 유려하게 묶는 것, 소설을 쓰면 예측도 못한 기막힌 반전을 내미는 것, 앉자마자 손가락이 움직여 뇌를 거치지 않고 손이 저절로 글을 완성해내는 것이었다. 막상 내가 갖고 싶은 재능을 떠올려보니 이건 말만 재능이지 거의 초능력과 가까웠다. 세계를 아우르는 유명한 작가들도 내가 읊은 모든 조건을 타고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재능을 많이 곱씹지 않기로 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과거에 함께 글을 쓴 분을 만났다. 그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자마자 나를 앞에 두고 이제까지 글을 못 쓴 이유를 와르르 쏟아냈다. 요즘따라 재능이 없다는 확신이 들어요. 요아 씨는 어린 나이에 책도 내고 상도 받고, 재능이 있으니까 꾸준히 쓸 수 있지만 저는 마땅히 그럴 게 없어서 작은 칭찬이라도 받지 않으면 글이 안 나오더라고요. 친하지 않은 사이였으니 친구에게 했던 말처럼 솔직하게 답하지 못했지만 그때 나는 그런 답을 하고 싶었다. 저는 작가가 되기 전 글을 공부할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어요. 등단 전이라고 엄청나게 부족한 글을 썼다거나 지금이라고 커다랗게 훌륭한 글을 쓰는 건 아니에요. 그냥 씁니다. 댓글이 저조해도 쓰고요, 글을 발행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구독자가 나가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도 하면서 다음 글을 쓰고요, 퇴근하고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씁니다.


이전에는 짧고 굵게 작가라는 한 명의 사람을 관통하는 역작을 쓰면 글을 내려놓으리라고 패기 있게 얘기하고 다녔지만, 나이를 조금 더 먹은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오래 쓰고 싶다. 나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울리고 웃기게 하고 싶다. 이토록 평범한 사람이 당신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고 함께 나이를 들어간다고. 당신이 지닌 불안과 무기력은 내게도 있으며 오늘 아침도 나는 병원에 들러 어젯밤 오랜만에 죽고 싶었다는 얘기를 해놓고 발랄하게 앉아 재능을 감각하는 조건에 관해 얘기를 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내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감각하는 조건을 하나만 얘기하자면, 최대한 재능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조건들은 생각보다 초인적인 능력에 가까우니까. 저 사람은 재능이 있는데 왜 나는 없을까, 하는 마음은 몇십 번의 졸작을 거쳐 걸작을 만들어 내는 평범한 사람이 지은 말미의 결과물을 존경하며 우러나온 생각이다. 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저 하는 수밖에 없다. 글을 쓰고 싶으면 최대한 많은 글을 읽고 쓰고,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 최대한 많은 영화를 보고 만드는 수밖에. 가만히 앉아 한숨만 쉰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뭐, 가끔 나오겠지만 드문 경험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이왕이면 재능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도 함께 만들어지면 좋겠다. 그러면 모두가 가뿐한 마음가짐으로 훌훌 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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